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구레네 시몬이 짊어진 십자가

- 예수의 십자가인가? 자기의 십자가인가?


김득중 (감신대 총장, 신약학)

 

마가복음 15:21에 보면,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골고다로 끌고 나가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만나 그를 붙들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처형장인 골고다까지 가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본문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예수가 심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채찍을 맞는 등 많은 고문을 당하여 체력이 거의 다 소진된 상태라서 도저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길에서 구레네 시몬을 붙잡아 그로 하여금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가게 한 것이라고, 그리고 구레네 시몬으로서는 그날 운수가 나빠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신세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9:17에 보면,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의 곳이라는 데로 가셨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날랐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더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예수가 심문 과정에서 많은 고문을 당해 십자가를 끝까지 나를 수 없을 만큼 체력이 소진되었다는 암시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처형장까지 갔다고 기록한 마가복음 저자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마가복음은 주후 64년에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에 의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이후에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수시로 붙잡혀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 처형되던 때에 기록된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마가복음은 그런 박해 상황에서 믿음을 지켜나가던 교인들을 신앙적으로 격려하며 지도하기 위해 기록된 일종의 설교였다. 마가 시대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가 시대 교인들 중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나 밀고자들이 있어서 한두 사람씩 체포되어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가복음 저자로서는 이처럼 함께 숨어 예배를 드리다가 붙잡혀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동료 기독교인들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교인들에게 나름대로 신앙적으로 위로가 될 수 있는 격려의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던 교인들을 위한 설교의 일환으로 기록된 이야기였다. 그들에게 예수를 대신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형장으로 향했던 구레네 시몬은 훌륭한 신앙적 모델로 생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어깨에 들려 있던 십자가는 도대체 예수가 짊어져야할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면, 그 십자가는 마땅히 우리가 짊어져야만 하는 우리의 십자가가 아닌가 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갔던 구레네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이 짊어져야할 자신의 십자가로 짊어진 참다운 신앙인의 모범으로 생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마가의 의도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마가가 막 8:34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to bear his cross) 따르라는 예수의 말씀을 전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참다운 제자가 되기 위한 길이 곧 자기 십자가를 지고예수를 따르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가는 장면에서 마가는 똑같은 문구를 이용하여 구레네 시몬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to bear his cross) 예수를 따라 처형장으로 나갔다고 기록하였다. 15:21의 헬라어 원문은 시몬이 그의(혹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bear his cross) 갔다고 되어 있다. 대부분의 한글 번역 성경은 여기서 그의 십자가”(his cross)란 말을 예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원문과는 달리 예수의 십자가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의 그의 십자가”(his cross)는 분명 자기의 십자가라고도 읽을 수 있는 말이다. 따라서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십자가를 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헬라어 원문의 기록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마가복음 저자의 본래 의도일 수 있다. 마가는 비록 시몬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날랐지만, 그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알고 짊어진 것이란 의미를 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마가의 의도는 박해 중에 체포되어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마가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비록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형장으로 가는 몸이 되었지만, 너희야말로 과거 구레네 시몬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참다운 제자들이라고 말해줌으로써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해주면서, 참다운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이처럼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가 시대의 박해 상황과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예수를 따르는 참 제자가 되는 길은 결국 막 8:34의 말씀 그대로, 그리고 막 15:21에서 그 말씀을 몸소 실천했던 구레네 시몬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예수를 따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 없이는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 없이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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