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산상복음과 우리의 기도

유동식 (연세대 퇴임교수, 문화신학)


1. 산상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사건은 모두 산 위에서 일어났다.
  첫째, 성육신과 산상설교(마태 5-7장).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께서 행하신 첫 복된 말씀은 산 위에서 선포하신 그의 설교였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다”로 시작된 팔복이 선포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고 분부하셨다.
  둘째, 십자가와 산상기도(마가 14:32-42).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값인 죽음을 대신 지고 해골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께서는 제자 셋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그것도 모르고 잠자는 제자들을 세 번이나 깨우면서 기도하셨던 것이다.
  셋째, 부활과 산상변모(마가 9:2-8). 복음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중에 변모하여 부활하실 영체의 실상을 형상으로 보여주신 일이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창조예술의 극치였다. 예술이란 영적인 미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한 거장이었던 라파엘이 그의 죽음을 앞두고 3년에 걸쳐 그린 그림은 바로 이 산상변모였다. 거기에서 그는 복음과 예술의 극치를 보았던 것이다.   변모하신 예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곧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파엘은 엘리야의 발치에 해당하는 구석에 붉은 옷을 입은 아합 왕과 검은 옷을 입은 이세벨을 그려 넣었다. 왕비 이세벨은 생산과 소유의 잡신 바알을 신봉하는 이방인이었다. 이세벨은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등 도리에 어긋난 비선 실세였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에 빠진 오늘의 원형인 셈이다.


라파엘, 산상변모


2. 복음적 실존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산상복음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존재 곧 복음적 실존이 된 사람들이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앞에 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4:19,20)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우리가 상호 내재한 하나의 둥근 삼태극도가 된다.


유동식, 삼태극도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나와 이 세상에 대하여는 죽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존재 곧, “복음적 실존”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아바 아버지”가 된 것이며(로마 8:1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 곧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 속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영생의 실상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 11:25-26)


3. 우리의 기도
  그리스도의 산상변모 속에 하늘나라의 기쁨을 맛본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장막 셋을 짓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 순간 구름이 내려와 그들을 덮어버림으로써 변모한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상으로부터 다시 세상 속으로 내려오셨다. 그것은 산상설교에서 가르치셨듯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실현되도록 역사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영이시요(요한 4:24), 빛이시요(요일 1:5), 사랑이시다(요일 4:8).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란, 영적 자유와 빛의 평화, 그리고 사랑의 기쁨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인생의 실현이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실현을 위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세상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세상 현실은 인간의 생, 로, 병, 사와 함께 정치, 경제, 종교, 문화가 서로 얽힌 복합사회이다. 그중에도 눈에 띄는 것은 악령에 사로잡힌 어린이의 모습이었다. 어린이란 분별력이 부족한 미숙한 인격이요, 바알신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각기 자기를 대통령감이라고 내세운다. 이러한 사회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제도나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기원하는 우리들의 기도생활이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하늘나라가 오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인간의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파괴하는 악령과 바알신의 추방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마가 9:29)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는 각기 다르다. 그것은 한 몸의 각 지체와도 같다.(에베 4:7) 따라서 각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와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이 복음적 실존인 그리스도인의 기도요, 신앙이요, 생활이다.

※ 이 글은 연세대학교회 주일 설교문(2017.1.8.)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