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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6): 월남 이상재의 나라사랑과 기독교

 

강근환 (서울신대 총장, 한국교회사)

 

2. 기독교 입교 이후

월남 이상재는 이완용, 이근택 등의 수구세력의 모략에 의하여 개혁당 국사범으로 둘째 아들과 함께 다시금 수감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옥중생활을 하는 동안 만민공동회 군중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된 이승만, 신흥우 등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함께 기독교에 입신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후 월남의 삶은 변화되어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은 물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기독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월남은 제2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월남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기울어 가던 8월에 석방되자 연동장로교회에 입교하고 새로 창설된 황성기독교청년회(현 서울YMCA)55세의 나이로 가입하였다. 그는 이 단체의 청년운동을 통하여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고종의 간곡한 청으로 의정부 참찬직을 수락하였으나 12월에 YMCA교육부장에 선임되어 이 일에 더욱 힘썼다.

1906년에는 교육위원장으로, 1907년부터는 종교위원장직을 겸하여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이승만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청년간사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2105인 사건 여파로 이승만, 김규식 등이 외국으로 망명하고 질렛(Gillett) 총무마저 추방되자 그 후임으로 월남은 총무가 되어 YMCA를 사수하였다.

서울 중심지에 자리잡은 서울YMCA회관은 한국의 개화, 구국, 그리고 근대화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만남이 광장이요, 교류의 현장이요, 토론의 장소였다. 월남은 YMCA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YMCA정신에 입각하여 충직하게 일했다. 곧 파리 국제YMCA의 기초선언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헌법 서언에 천명하고 있는 회원의 기독교적 품성을 개발하여 경성(서울)에 재한 청년의 신령적, 덕육적, 사교적 행복 증진을위하여 전력하였다. 월남은 무엇보다도 젊은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믿고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기독교 품성을 개발하는 데 우선적인 역점을 두었다. YMCA운동의 사상적 골간을 기독교 신앙에 두게 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부임 초부터 성경반을 중시하였고, 각종 종교집회를 열어 사회를 보았으며, 각종 강연을 통해 일제의 침략으로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할 길은 기독교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역설하였다. 월남은 교육에 있어서도 영육과 함께 지육, 체육에 힘썼다. 특히 체육 교육을 중시하여 근대체육을 육성함으로 YMCA로 하여금 한국의 근대체육의 요람이 되게 하였다. YMCA는 또한 종래의 문()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실용적인 실업교육을 중시하였다. 교육이 양반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직업인을 양성함으로써 자조적인 정신을 함양하였다. 참으로 YMCA는 한국 근대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상재는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6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자 19164월에 그에게 총무직을 물려주고 명예총무로서 뒤에서 도왔다. 그 후 월남은 3.1독립만세 운동에 민족지도자로 깊이 참여하였다. 비록 민족대표 33인 중에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배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각 종교단체 간의 맥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였고, 이 운동의 비폭력성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월남이 3.1운동의 일선에 나서지 않았던 오해에 대하여 함태영은 월남의 추도사에서 운동의 결과 많은 지도자를 잃게 되는 경우 그 뒷수습을 할 지도자로 월남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월남은 국권회복을 위하여 인재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민립대학 설립을 끈질기게 추진하여 이승훈, 김병로, 송진우 등과 함께 민립대학 기성회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1923329일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국 각 주요 도시에 지방부를 조직하고 순회하며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방해하였고, 그 대신 경성제국대학령을 19235월에 공포하여 1924년에 학생을 모집하였다. 결국 민립대학 설립은 좌절되었고, 모금된 자금은 김성수의 보성전문대학교(현 고려대학교)에 전입시켰다.

월남은 19224월에 중국 북경에서 열린 세계기독교학생연맹(WSCF) 대회에 신흥우, 김활란 등 한국대표단의 회장으로 참석하였다. 이때에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임시정부의 일을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국내에서 하여야할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거절하고 귀국하였다. 192433YMCA강당에서 결성된 보이스카웃 조선총연맹 초대 총재로 추대되었고, 물산장려운동, 절제운동, 전도운동, 농촌계몽운동, 청문사(도서출판) 등 각종 민족운동을 선두 지휘하다가 조선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203월에 창간된 조선일보는 원래 경영진이 친일적인 성향의 인물들 이었으나 송진우를 비롯한 민족지도자들은 언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일금 8만원에 매입하였다. 그리고 19249월에 존경받던 월남에게 사장 취임을 요청하였다.

당시 75세인 월남은 고령을 이유로 사양 끝에 동아일보와 합심하여 고난 속에 있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하였다. 사장 취임 이듬해인 192511일 신년호에 본보 혁신 제1년을 맞이하여라는 사설로 조선일보의 주의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언론의 사기를 진작하였다. 월남은 마지막으로 신간회의 회장직을 맡아 민족지도자로서의 섬김을 다하였다. 그 당시 국내의 사정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어 국권회복운동에 막대한 지장이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신간회가 조직되었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그리고 모든 종교와 정파를 초월한 단일 조직체로서의 신간회가 1927120YMCA회관에서 발기총회로 모였고, 이어 215300여 명의 대표가 다시 모여 창립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월남 이상재를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그 때 선생의 나이 78세로 병상에 누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사양을 했으나 주위의 강권으로 수락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수락한지 40일 만에 1927329일 재동에서 운명하였다. 윤치호를 비롯한 각계 지도자 114명이 모여 월남사회장위원회를 구성하여 192747일 나라 잃은 백성들의 사회장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충청도 한산 선산에 안장하였다. 국권이 회복된 후 1957년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적극적인 배려로 장지를 한산 선영에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화리로 옮기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월남 이상재는 애당초에는 한국의 선비로 태어나 북학파의 전통을 이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국운동을 하였고, 구국운동의 희망을 청년에게 두어 청년운동을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다. 월남은 이러한 새로운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만군의 주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축으로 한 여타 만물의 상대성에서 개개인의 독자적 자주와 평등적 민주 사상을 갖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구국운동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 이러한 선생의 고결하고 당당한 삶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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