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성서에서 본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

 

 

김이곤 (한신대 명예교수, 구약학)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Messianism)은, 악과 불행으로 가득 찬, 이 풍진난세를 말끔히 쓸어내고, 그 대신, 공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새 시대의 수립을 담보해 줄 한 ‘구세주(救世主)’가 머지않은 장래에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희망하고 기대하는, 일종의 범(凡)종교적인 ‘종말론적 신앙 및 사상’을 두고서 흔히들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메시아 대망 사상’이라는 것이, 구약의 세계에서도 그렇게 지배적이고 중심적인 종교사상 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메시아’(משיח)라는 그 히브리어 용어조차도, 단지, ‘기름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One: חשמ maŝaḥ → חישמ meŝîaḥ)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에 따라, “기름부음 받아 세운 ‘왕’(王)”을 지칭할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고, 구약의 세계에서 ‘메시아’라는 말은 대체로 ‘정치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신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등장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가리켜 구약에서는 ‘메시아’라고 불렀는데(사 45:1), 이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스라엘의 경우 ‘메시아적 왕’에 대한 그 대망전승(待望傳承)은, 비록 더 고대의 전승들 속에서도 그런 암시들(창 49:8-12; 민 24:15-19)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해도, 이스라엘 왕정사(王政史)에 들어서서는, 유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왕조인 다윗 왕과 그 다윗 왕조의 재래(再來)를 대망하는 전통이 형성되어 그러한 메시아 대망전통(待望傳統)이 가시화 되었다고 하겠다. 더욱이, 메시아의 도래(到來)를 믿으면서, 동시에 그 ‘메시아’가 바로 다름 아닌 ‘예수’라고 믿었던 예수의 제자들이 기록하여 남긴 책인 신약성서(예컨대, 행 8:26-40에는 예수의 제자인 빌립이 에디오피아[구스]의 한 내시[內侍]에게 이사야 53:7-8에 기록된 그 ‘메시아 예언’이 바로 ‘예수’라고 증언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음)에서는, 단지 요한복음의 두 곳(요 1:41; 4:25)에서만 나타나고 있어서, 메시아 대망 사상이란 그렇게 대단하게 민간 신앙세계를 지배한 중심 주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메시아 대망사상이 비록 예수 시대의 중심적 신앙사상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메시아’라는 언급을 신약에서 유일하게 하고 있는 요한복음 1장과 4장에 나타난 바, 그 “세례자 요한의 증언”(요 1: 26-34)이나 “마리아 ‘수가’성(城)의 한 여인의 증언”(요 4:29) 등에 의하면, 그 메시아는, ① ‘진리’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인간]에게 알려주시는 분(요1:18; 4:25)이시고, ② 동시에 세상의 모든 죄를 우리 대신 지심으로 우리 인간들의 모든 죄를 제거해주시는 분(요 1:29)으로서, ③세상의 구세주(요 4:42)이시며, ④ 아버지 품속에 계신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⑤궁극적으로는, 예수 자신이 바로 그 하나님 [자신](요 4:26)이시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면서 하신 말씀인 ‘에고 에이미’(έγώ είμι: I am. / 내가 바로 ‘나’[그이]다.)라는 표현이 출애굽기 3:14의 저 유명한 야훼 하나님의 ‘자기 계시(自己 啓示)’의 표현인 ‘나는 나다’ [‘에흐예 아쉘 에흐예’]라는 표현과 정확히 문자적으로 동의평행(同義平行; synonymous parallel)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여기서의 예수는 자기 자신이 곧 그 사마리아 여인이 믿고 있는 바로 그 장차 올 “메시아 자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자신이 곧 궁극적으로는 그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도 또한 출 3:14와 요 4:26이 문자적 동의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그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이미 그는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인지(認知)하고 계셨으며, 그러므로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당당하게 자신이 곧 오실 ‘그이’(O, He!=‘야훼’라는 말의 어원(語源)으로 볼 수도 있음)라는 것을 계시(啓示)하시고 계셨던 것이라고 하겠다. 즉 ① 신약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바, “내가 바로 그이다”(I am He.[요 4:26])라는 예수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의 말씀과 ② 구약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바, “내가 바로 나다”(I am I./ I am who I am. 출 3:14) 라는 그 야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말씀이, 서로 매우 적확(的確)하게 상응일치(相應一致) 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상의 사실들을 정리해보면, 특히, 신약에서 ‘메시아’라는 용어를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책인 요한복음의 증언을 따라가 보면, 기대된 메시아, 그는, 분명, ‘물’로서가 아니라! [세상질서와는 다르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요 1:33b)이시고 동시에 “인간이 행한 모든 일을 모두 알아맞히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요 4:29)으로 신격화(神格化)되었다고 요약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복음서의 증언을 기초로 하여, 결론적으로 살펴볼 때, 성서의 메시아 대망 사상이란 ①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것을 믿는, 그 성서의 ‘종말론적 메시아 대망 신앙’이 오늘을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 가운데에도’ 뚜렷하게 현존(現存)하고 있다는 그 사실과 그리고 동시에 ② 이러한 현실 속에 나타나서, 그 역사적 예수의 바로 그 메시아적인 ‘인격’을 모시고 숭앙하는 신앙이 오늘 현재의 ‘우리 세계’ 가운데에도 현존케 하여야만 한다는 그 사실을 강력히(종말론적으로!) 촉구(促求)하며 선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진실로, 오늘의 우리 시대는 분명 악과 불행으로 얼룩진 ‘난세’(亂世)로서 ‘메시아의 도래’가 매우절박하게 대망(待望)되는 시대이다. 현실부조리를 탄식하는 ‘아우성’(outcry)은 그러한 현실이 사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공증(公證)해 준다고 하겠다. 문제는 역사적 예수의 그 메시아성(性)을 - 이른바 자신을 비워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예수의 그 메시아성(性)을 - 우리 사회에 재(再)구성하고 재현(再現)하는 그 일을 우리 모두가 얼마나 잘 실천해 나아가야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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