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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언저리에서 (1) - 이반

성서와문화 2017.09.21 08:07 조회 수 : 1396

진부령 언저리에서 (1)

 

이반 (숭실대 명예교수, 극작가)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예전에는 휴전선 최북단 탓인지 인적이 뜸한 편이었는데,

금년에는 휴전선 턱 밑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텐트를 치고 캠핑카를 세워두고 바다로 뛰어든다.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군은 하나의 군이 휴전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곳이다. 반세기 동안 서로 다가서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는 슬픈 고장이다.

 

무더운 더위 속에서도 풀과 나무들은 무성하게 자란다. 돌담 옆의 해바라기는 높게 치솟아 오르더니 어른 키 두 배만큼 자랐다. 꽃도 대 여섯 개는 피웠는데 튼실하다.

해바라기 옆으로 스쿠터를 탄 배달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마루에 던져 놓고 간다,

 

기독교인들이 발간하는 문학잡지, <창조 문예>가 반갑다. 원로 작가 박정순 선생이 쓰는 연재소설 영원한 삶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소설 무대는 백두대간 가운데 동쪽 지역인 바로 고성군이다. 산으로는 설악산 북쪽이고 금강산 남쪽인데, 서쪽의 안갯속에서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내는 산들의 자태는 무량수전에 기대어서 소백산맥을 바라보는 선경에 뒤지지 않는다. 향로봉이 바로 이곳에 있다.

 

백두대간을 넘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은 옛날에는 대관령 밖에 없었다. 6,25 전쟁이 멈춰 선 다음 진부령 길이 생겼다. 한계령이나 미시령은 군용 비상 도로로 사용될 뿐이었다.

길은 비포장 흙먼지와 자갈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그때 서울에서 속초나 고성에 가려면 급행 버스가 열두 시간씩 걸렸다. 부산이나 해남보다 더 멀게 느껴지던 고장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휴전이 되고 난 후부터다. 진부령 마루에 흘리라는 마을과 관대리라는 화전민촌’, 그리고 향로봉 아래의 농장 이렇게 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기세 좋게 뻗어나가다 마산봉에 이르러 하강하면서 그리 넓지 않은 터전을 마련해 주었는데 하늘이 시도 때도 없이 눈비를 내린다 하여 흘리라고 이름 하였는데, 그곳에 훌륭한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처를 마련하였다. 만산봉 다음 북쪽 봉우리는 향로봉이다. ‘흘리목사님의 기도처 무릎 아래에 해당하는 곳에 관대리라는 화전민촌이 있는데, 그곳에 아이들은 많은데 배움터가 없어 드나들던 이화여대 교수 몇 분이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화전민촌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를 모집하였다. 월급도 없고 신분보장도 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었다고 한다. 화전민촌에 살만한 집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욕 한번 하려면 왕복 하룻길이 되는 속초까지 다녀와야 되는 곳이었다.

 

진부령에서 동북쪽으로 내려가면 넓은 분지가 나오는데, 해발 500미터 지점에 중앙 신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친구들과 더불어 밭을 일구고 통나무집을 지어 집과 축사로 사용하니 보기 좋은 농장이 되었다.

 

함석헌 선생이 이름을 지으니, ‘씨알농장이 탄생하였다. 청년은 베드로가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듯이 이곳이 한국 농촌의 반석이 되어야겠다는 뜻으로 분지 이름을 안반덕이라고 했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이나 철학의 근원지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이곳까지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게 한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가능할까? 전쟁이 멈춰 선지 몇 년이 되지 않은 때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금강산 남쪽 자락에 기도처가 마련되고, 그것에서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을까?

 

진부령은 38선에서 150리를 북상해야 이룰 수 있는 곳이다. 북한 군인들과 중공군들은 금강산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국군과 미군들은 금강산을 점령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전쟁터인데, 그 전쟁터 향로봉 아래 분지에 농장을 세울 용기를 내었을까?

숲속 후미진 곳에 아직 땅속으로 찾아들지 못한 시신들이 엉켜있고 피아간에 묻어놓은 지뢰가 제거되지 않은 터전에 농기계도 제대로 없는 젊은이들이 농장을 꾸밀 생각을 했을까?

사람이 살 통나무집이 지어지고, 가축들이 기거할 축사도 세워졌다.

 

관대바위 아래의 화전민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난민들이 판잣집이나 움막을 짓고 화전을 일구고 있었다. 원산 남쪽 고을 통천이나 북고성에서 화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남한의 포화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 나온 피난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 관대마을인데, 학교에 가지도 다니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이 백 명도 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남자도 아니고 나약한 여성의 몸으로 봉사정신 하나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학원을 차렸다. 소식을 들은 도지사가 교사를 건축하는데 필요한 건축 자재를 기부했다.

이화여대 졸업생들은 학원에 필요한 물품과 학용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부족한 편이었다. 이화여대 졸업생들은 자선바자회도 여러 번 주관했다.

 

이번 여름 무더위 속에서 진부령의 역사가 이뤄진 이 세 곳을 찾아 여러 번 다녀왔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이뤄졌을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물음은 끊이질 않는다. 휴전 후 진부령 일대의 역사는 기독교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 역사의 현장에는 기도처의 돌제단 흔적과 무성한 풀과 촌 노들의 이야기 속에서 흔적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한 시대의 가치가 이야기 속에서만 전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하여 알게 된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타계하고 그들의 진실과 이상만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 그물 속의 물건을 뒤지니, 자유, 민주화, 평화, 믿음, 꿈과 같은 지고한 가치의 구슬이 연결되어 나온다.

 

역사가 힘과 권력에 있다면 문학이나 이야기는 삶의 모습이나 역사 뒤편에서 사라져간 서민들의 생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고 하지만 삶보다 더 진실한 꿈, 이상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부령 언저리의 기독교 이상주의자들의 행적은 몇 번이고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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