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윤동주가 읽은 논어 맹자와 기독교

 

허경진 (연세대 교수, 국문학)

 

윤동주(1917-1945)가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살던 북간도 명동촌에 태어나 명동학교를 졸업하면서 조선어를 잘 배웠으므로 서시를 비롯한 아름다운 한글시를 지을 수 있었다고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윤동주는 중국 용정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와 교토에 유학하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한 시인으로, 그가 조선에 살았던 기간은 4년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10리 떨어진 화룡현 따라즈(大拉子)의 중국인 소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했다. 명동소학교에서도 1915년부터 중국 교육법에 따라 중국어와 일본어를 정규과목으로 배웠는데, 이제부터는 중국어를 일상적으로 쓰며 중국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러한 기억이 뒷날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별 헤는 밤에 나타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小學校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이런 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전문학교 졸업반이 된 윤동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등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보다가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중국 소녀들의 이름에 이르러선 감정이 흘러넘쳐 걷잡을 수 없이 패(), (), () 등의 이름을 산문체로 주워섬겼다. 일본 사무라이 낭인이 세운 광명학원 중학부에서 일본어 교육을 받다가 연희전문학교에 와서 조선어 교육을 받으며 그의 시가 한글투로 바뀌었지만, “, , 이런 異國少女들의 이름에 이르러선 한자어들이 자연스럽게 내뱉어진 것이다.

윤동주가 입학한 연희전문의 교육방침은 동서(東西) 고근(古近)의 화충(和衷)’, 즉 동양과 서양이 하나가 되는 교육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제대로 배우려면 언어 교육이 필수적이다. 전문학교는 3년 과정이었지만, 연희전문의 문과는 언어교육에 많은 시간을 배정했기에 4년 과정이었다. 1921년 학칙을 보면 매학년 영어(讀方, 會話, 解釋, 書取, 暗誦, 作文) 5시간, 영문학(文法, 書取, 作文) 3시간씩 배정하여 매주 8시간씩 4년을 가르쳤다. 한문 3시간도 1-2학년에는 독방(讀方)과 해석, 3학년에는 저술을 가르쳐, 읽고 쓰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총독부에서 1938년부터 조선어 교과과정을 개설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연희전문에서는 학칙을 개정하여 문과에 조선어를 개설하였다. 19384월에 입학한 윤동주가 첫 번째 여름방학에 고향 용정에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 후배인 장덕순에게 연희전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의 기억을 장덕순은 뒷날 이렇게 회상하였다.

 

동주는 나를 데리고 해란강(海蘭江) 가를 거닐면서 문학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문학을 공부하려면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가장 적당하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

당시 만주땅에서는 볼 수 없는 무궁화가 캠퍼스에 만발했고, 도처에 우리 국기의 상징인 태극 마크가 새겨져 있고, 일본말을 쓰지 않고, 강의도 우리말로 하는 조선문학도 있다는 등등 ... 나의 구미를 돋우는 유혹(誘惑)적인 내용의 이야기를 차분히, 그러나 힘주어서 들려주었다.- 윤동주와 나, 나라사랑23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시절에 한문과 중국어 성적이 뛰어났다. 윤동주는 방학마다 외삼촌 김약연 목사에게 한문을 배웠는데, 아우 윤일주는 시전(詩傳)을 끼고 다니던 형의 모습을 기억하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가 졸업을 앞두고 원고지에 써서 후배 정병욱에게 맡겼던 시집 초고에는 제목 없이 머리말처럼 쓴 서시(序詩)가 실려 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즐겨 읽었던 맹자의 한 구절로 시작된다. 맹자』 「진심(盡心)군자삼락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仰不愧於天) 사람을 굽어보아 부끄럽지 않은 것이(俯不?於人) 두 번째 즐거움이다(二樂也)” 하였으니, 이 구절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시전(詩傳)을 배우기 전에 맹자를 읽는 것이 상식이고, 연희전문에서 4년 동안 한문을 배웠으니 이 시를 지을 즈음에는 당연히 맹자를 몇 번은 읽었을 것이다.

윤동주가 보던 예술학(藝術學)표지 오른쪽 하단에 맹자』 「이루(離婁)장의 구절이 친필로 쓰여 있다. ‘反求諸己라는 제목을 썼는데, 남을 사랑해도 가까워지지 않으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뜻이다. ()와 인()을 함께 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독교의 박애정신과 통하는 구절을 유교 경전에서 찾아 쓴 것인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과 절묘하게 이어진다.

윤동주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이유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기 때문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고 가르쳤으며,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완전한 데 나아갈 지니라"(6:2)라고 권면하였다. ‘완전이란 "고정적"인 표준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인의 이상은 이미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추구하는 어떤 것이다.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한동안 기독교에 회의를 느꼈던 윤동주는 이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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