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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 사랑 7]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의 좋은 친구 아펜젤러

 

강근환 (서울신대 총장, 한국교회사)

 

아펜젤러(Henry G. Apenzeller 1856-1902)185626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수더톤에서 태어나 1882년에 랭케스터에 있는 개혁교회 프랭크린 마샬대학을 나와 드루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을 졸업했다. 188411월에 덧지(Ella J. Dudge)양과 결혼하고, 미국 북감리교 한국선교부의 첫 선교사로 파송받아(1884,12) 센프란시스코에서 마울러 감독에게 안수를 받고 18852월에 센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을 거처 188545일 부활 주일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항에 상륙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파란만장한 우리나라 개화기의 역사 속에서 장장 1,800마일을 두루 다니며 희생적인 선교활동을 하다가 마침내는 1902611일 밤 성서번역위원회 회합의 일로 목포를 향하여 항해하던 중 선박충돌 사고로 삶을 마쳤다. 참으로 그는 생애를 다하여 한국인을 염려하고 도우며 한국인을 사랑하였던 한국의 좋은 친구였다. 하여 그의 개척적인 선교활동과 사업을 통한 눈부신 공헌은 한국 교회사적으로는 물론 현대사적 면에서 높이 평가되기에 족하다고 본다.

 

1. 선교사업

 

1) 목회: 먼저 그의 활동을 보면 목회와 교육 그리고 여타의 문서활동 등이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최초의 선교사로서 세운 선교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국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얻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교육사업을 먼저 착수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유용한 인제는 갈보리에서 돌아가신 주의 피로써 구원받지 않고는 양육될 수 없다고 배재학당의 교육이념에 대하여 1887년 연례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의 바람은 한국에 교회의 초석을 놓는 일에 생명을 기꺼이 바치겠으며 이 나라 전체에 그리스도를 선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만 이 땅의 민족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아펜젤러는 일찍이 1885년 겨울부터 외국인(일본인을 포함)을 중심한 성경공부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점차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시행하였고, 마침내 18971226일 정동제일감리교회를 건축하였다. 그는 위로의 선교사였다. 사람들은 고통과 슬픔을 당하였을 때 그를 찾았고, 한 사람씩, 두세 사람씩 그리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2) 교육: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교육사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일찍이 18858월부터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고, 1897221일에는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培材學堂: Hall for Rearing Useful Men)이라는 교명을 외무대신을 통하여 하사받았다. 1888년에 교사를 완공하고 교장으로 줄곧 봉사하였다. 아펜젤러가 우선적으로 착수한 교육사업의 중요성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그 첫째는 복음전파의 한 방편이었고, 그 둘째는 그 당시 개화기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 육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포교활동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당시의 정황에서 교육사업은 복음전파의 예비적 내지 간접적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와는 다른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성은 개화운동과 관련된 시의적절한 처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종황제가 친히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함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배재학당의 당훈을 慾爲大者 當爲人役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다른 사람의 부림을 받아야 한다로 정하고 구시대의 봉건적 지도자상이 아닌 새 시대의 지도자상을 지향하는 교육을 실시하여 마침내는 새로운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개화사상의 두 핵심은 반봉건(反封建), 반침략(反侵略. 外勢)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화적 민권운동과 반제국주의적, 반식민주의적 자주독립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류에 부응한 새로운 국가의 지도적인 동양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2. 정치적 관심: 한국의 자주독립

 

아펜젤러는 일찍이 한국에 오면서부터 한국의 정치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이 남달리 돋보이는 점이다. 그의 선교활동 저변에는 영적으로는 한국인의 영혼구원과 현실적으로는 한국의 독립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깔려있었다. 그는 비교적 일본인에 친한 편이었지만 한국인의 이해관계에 관한 한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서는 단호하게 한국인의 정당성을 옹호하였다. 그의 한국의 독립에 관한 정치적 관심이 여러 면에서 표출되고 있다.

 

1) 비정치화 문제: 주한 미국공사관에서는 한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시민들에게 한국의 정치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회람을 통하여 엄중히 경고하였고, 장로교를 포함한 주한선교부의 분위기도 비정치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펜젤러는 이에 대하여 소극적인 편이었고 오히려 저항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그로 인해서 주한 미국공사 알렌과도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다.

 

2) 독립신문 및 독립협회와의 관계: 아펜젤러의 한국을 사랑하는 정치적 관심은 그의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와의 관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미국으로부터의 귀국(1896,1,1)과 함께 창간되어(1896,4,7) 민중들에게 계몽과 민족 자주정신을 고취하는데 공헌하였고, 독립협회는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189672일에 창립된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 개화지향적 엘리트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독립신문의 논조가 정부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서재필이 독립신문에서 물러나게 되자 아펜젤러는 윤치호와 함께 편집책임을 맡게 되었다. 선교부와의 마찰을 피해 주필직을 윤치호에게 돌렸을 뿐이다. 그는 독립협회에 대하여서도 매우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그의 1897813일 독립협회 창립 1주년 기념식에 연사로 초대되었음과 함께 한국에 대한 주한 외국인들의 의무라는 제목하의 연설문에서 보게 된다. 또한 그의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나는 독립협회의 훌륭한 사업에 축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제의 칙령으로 협회가 해산되자 곧 이어서 만민공동회가 열렸습니다.”라고 독립협회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 이와 같이 아펜젤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그리고 독립신문 등에 긍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적극 참여하였다.

 

3) 이승만과의 관계: 이승만은 배재학당 시절부터 아펜젤러의 제자로 사제관계였고, 서재필이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 이승만은 또한 그의 제자가 되어 만민공동회에서 활약하다가 만민공동회에 총 검거령이 내려지자 18991월 체포되어 6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렇게 이승만이 옥살이를 할 때에 아펜젤러는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조정에 호소하여 사형에서 무기로, 그리고 무기에서 6년으로 감형되었고, 옥살이를 하는 동안 서책과 의복을 들여보내 주었다. 심지어 이승만의 아버지까지도 도와주었다. 이에 대하여 이승만은 옥중에서 아펜젤러 선생님에게 고마운 편지를 수차례 보냈다. 이와 같은 아펜젤러의 이승만에 대한 도움은 제자에 대한 인도주의적 동정의 발로라고도 보겠으나 이를 넘어 만민공동회의 일원이었던 존재에 대한 그의 한국에 대한 개화 및 자주독립이라는 동지애적 심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아펜젤러는 영혼구원과 현실참여, 영과 육의 통전적 구원의 선교인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을 일찍이 한국에서 구현한 선구적 선교사로서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의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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