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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이르는 길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7.09.21 08:05 조회 수 : 1317

자유에 이르는 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

 

이제는 내가 미술사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미술사가 나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주변 모든 것은 그냥 거기 친구로서 있을 뿐이고 나는 여기 혼자서 자유롭다.

80이 될 때까지 나는 하루에도 수십 바퀴씩 세계의 미술사를 돌고 돌았다. 그때쯤 나는 시내 어떤 화랑에서 전람회를 하고 있었다. 어떤 날 내가 전시장에 앉아 있는데 시골에서 한 제자가 찾아왔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릿속이 요새 조용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랬더니 그가 즉각 하는 말이 구하는 바가 없으면 자유로워진다 합니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번개같이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문제에 대한 답이 온 것이었다. 답은 분명히 왔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를 내가 알 수가 없었다. 그 답을 이해하는 데 또 몇 년이 걸렸다. 바라는 것이 없어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이었다. 불가佛家에서 흔히 하는 말에 바라는 바가 없는 보시普施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라는 바가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아무 바람이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안 그릴 수가 없어서 하는 일이지 무슨 목표 같은 것도 없다. 있다면 하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벌써 옛날 일이 되었지만 미술대학에 재직하고 있었던 어떤 시절에 4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욕심을 버려라. 욕심을 내면 일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일이 잘 된다.” 그 말을 내가 계속해서 며칠이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떤 날 한 학생이 나한테 질문을 한 것이다. “선생님, 좋은 작품 하려고 욕심내는 것도 안 되는 것인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가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차! “내가 지금 그것을 모르겠다. 알게 되면 말 해주겠다.” 그랬다. 그러고서 하루가 지나도 모르겠고 열흘이 지나도 모르겠고 그 학생이 졸업을 하도록 그 답을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가 대학원을 마치고 그랬는데도 그 숙제는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몇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불경을 읽는 중에 어떤 대목에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욕심내라하는 구절을 보았다. 그때서야 옛날 4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좋은 작품을 하려고 욕심내는 것도 안 되는 것입니까했던 그 학생이 생각났다. 다음날 4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좋은 작품 하려고 열심히 욕심내자!” 그랬다. 오래전에 여차여차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너희들한테 가르쳐준다.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니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생사 걸고 열심히 욕심내는 것이라 그랬다.

내가 팔십이 되던 해 전시회를 하고 있을 때 찾아와서 하는 바가 없으면 자유로워진다 합니다.”한 그 제자가 바로 옛날 4학년 교실에서 나한테 던진 질문 좋은 작품하려고 욕심내는 것도 안 되는 것입니까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서 제자가 스승한테 한수 가르쳐준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인연도 있단 말인가.

좋은 작품하려고 열심히 욕심내고 바라는 바 없는 절대 자유를 얻는다. “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법이 없어서도 안 된다하신 추사선생의 말씀은 미술사로부터의 자유를 말한 것이다. 다 소화해서 통달하면 다 없어지는 것인데 그 없음은 다 있음하고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새로운 있음으로 탄생할 때 그곳이 바라는 바 없는 자유일 것이다. 그 경지를 추사선생은 절묘한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었다. 入於有法 出於無法 我用我法누가 그 어려운 이야기를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 속으로 찾아 들어갔는데 다 삭히고 나니 법이 없어져서 자유한 곳으로 나왔다. 나는 오직 이제 내 법으로 그린다.” 책으로 한권을 말해도 어려운 것을 한마디로 정리를 했다. 참으로 통쾌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예술가는 자유에 당도하여 비로소 자기의 그림을 만들 수 있다. 거기로부터 진정한 자기의 예술이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20에 시작해서 80에 알았다면 너무나도 긴 세월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소모한 시간이 60년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나는 하나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없다. 칠흑 같은 밤길을 얼마나 많이 헤매었던가. 절망과 눈물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희망과 회한이 교차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을 살았다. 어쨌거나 이제는 동이 텄다. 아침이 왔다. 그리고 망망한 들판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안개도 걷혔다. 모든 사물이 명료하게 보인다. 바람도 없는 것 같다. 고요하기만 하다. 나날이 새날이다. 아 찬란함이여!

이 세상에서 나는 오로지 혼자로서 있는 것이고 과거 수천 세에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오는 미래에도 있을 수 없다. 나처럼 그때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은 나밖에 없고 친구들과 스승들과 산과 강을 나같이 만난 사람은 나밖에 없고 책을 읽었어도 나처럼 이런저런 책을 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이다. 천상천하에 는 오직 나 하나 뿐인 것이다. 우주 만물이 다 각각인데 모두가 오직 혼자로서 존귀한 존재이다.

내가 집을 짓노라고 마당의 나무를 옮기는데 그때 자나가던 서양사람 아줌마가 이 세상에서 또 나무 한 그루가 없어지는구나하던 탄식의 소리가 잊혀 지지 않는다. 내가 그때 이 나무는 잠시 피난 가는 것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녀의 걱정을 덜어 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모든 개체는 그 나름으로 독자적인 삶이 있다. 예술가는 자기의 정체를 발견하고 작가 눈에 보이는 그것을 기록하여 세상에 남긴다. 내가 자유를 아는데 60년이 걸렸다한 말은 진리를 찾아서 세상을 돌고 돈 시간을 말한 것이고 결국에 그것이 나를 찾아 헤맨 시간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기가 내 집이구나하고 짐을 다 내려놓고서 내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천상天上에 고한다. 그때서야 내가 나와 하나가 된 것을 보는 것이다.

지나간 팔십 평생이 허망한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구석구석 아픈 상처도 말끔히 치유되는 기적이 있다. “나자로야 일어나라!” 죽음마저도 생명으로 복원되는 장관壯觀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긴 여행 끝에 내가 나를 발견하고 나로 돌아와서 비로소 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내 맘대로 그려도 법도法道에 어긋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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