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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 칼뱅의 종교개혁과 자본주의의 형성

-종교개혁은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쳤을까?

 

이오갑 (KC대 교수, 조직신학)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16세기가 지나지 않아 유럽은 남쪽의 로마 가톨릭과 북쪽의 프로테스탄티즘 세계로 나뉘었다. 이후 서양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해 왔는데, 그 속에서 영국이나 네덜란드, 독일 같은 개신교 국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사회의 여러 분야들이 더 발달하고 번영한 국가들도 그런 개신교 나라들이었다.

그런 점에 착안해서, 지난 세기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썼다. 그의 전제는 이렇다.

독일에서 근대 자본가들이나 기업경영자, 고급 기술자나 영업인 등이 두드러지게 개신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현상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디서나 통계로써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나, 어떤 경우든 개신교는 어떤 역사적 원인이나 사회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합리주의라는 특징적인 경향을 가지지만, 가톨릭은 그런 특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전제 위에서 베버는 루터나 칼뱅의 교리들이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자본주의 발전은 무역이나 화폐나 은행 같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요인보다도, 우선, 무엇보다 자본주의 정신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리고 그 자본주의 정신은 루터의 소명-직업론과 그리고 특히 칼뱅의 예정론이나 구원론, 금욕주의 같은 교리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의 설명을 보면, 가령, 칼뱅의 예정론에서 칼뱅주의자들은 깊은 내면적 고립에 빠진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받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이미 결정된 운명의 고독한 길을 더듬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추구했다. 그 결과 신의 소명인 세속적인 직업노동을 엄격히 수행하는 것으로써 구원받았다는 자기확신을 획득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세속에서의 직업적 성공이나 부, 선행 같은 외형이 신의 은혜나 구원의 표시가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거기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또한 베버는 칼뱅의 금욕적 특징을 주목했다. 금욕주의는 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금지하거나 억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근면과 절제, 검약, 철저한 규범적 생활, 부단한 자기검열 같은 삶의 태도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부의 획득과 축재를 유리하게 했다. 그런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인간형이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의 진영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처럼 큰 논란이 된 책도 드물다. 그 책은 20세기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대논쟁을 가져왔다. 학문의 영역으로도 베버 같은 사회학자들만이 아니라 신학자들, 역사학자들, 경제학자들, 철학자들 등 아주 다양한 인문사회학자들이 가담했던 논쟁이었고, 국가적으로도 독일과 영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 학자들이 뛰어들었다. 글로벌(global)이라든지 학제간(interdisciplinary)이라든지 하는 말들이 유행하기도 전에 이미 그런 성격을 보여준 논쟁이었다.

핵심은 결국, 칼뱅주의, 더 나가서 개신교가 정말 자본주의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다. E. 트뢸치나 캠퍼 풀러튼 같은 학자들은 베버를 지지했지만, 에밀 두메르그나 앙드레 비엘레, 스탠포드 라이드 같은 학자들은 극구 반대했다. 칼뱅이 과연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쳤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칼뱅은 당시 제네바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던 상업자본주의의 폐해들을 우려하고, 그것의 발전을 저해하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비엘레는 그 점을 제네바에서 이자율의 인상을 둘러싼 대금업자들과 교회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칼뱅주의는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베버의 논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가 근거했던 예정론이나 금욕주의 같은 교리가 정말 그런 식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봐야 할 것이다.

먼저 예정론을 보면, 칼뱅이 예정론을 주장하면서 함께 가르쳤던 것은 신자 자신이 구원으로 선택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증거나 표시를 찾지 말라는 것이었다. 구원의 증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고, 믿음으로써 그와의 관계 속에 있으면 신의 선택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선택의 확실성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지 않으며, 만일 우리가 성부를 그리스도와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성부 하나님에게서조차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거기서 우리의 선택을 성찰해야 하는 거울과 같다.” 따라서 선택의 증거를 신자들의 행위나 행위의 결과 축적한 부나 성공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칼뱅에게는 불가능하다. 그의 예정론과 자본주의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면관계상 상술하지 못하지만, 칼뱅의 예정론이 그런 것도 아니다. 17세기 이후 어떤 퓨리턴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칼뱅주의라고 하기는 어렵다.

금욕주의도 그렇다. 칼뱅주의자들이 구원이라는 목표와 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기에 근면과 절제, 검약, 규범적 생활, 자기검열 같은 세속내적 금욕주의가 발전했다는 설명은 칼뱅의 사상이나 전통과는 크게 다르다. 칼뱅은 흔히 냉엄하고 인간미 없는 인물로 희화화되지만, 육체를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어리석은 일로 여겼다. 그는 삶을 즐기고 유쾌하게 하는 음악이나 예술들을 예찬했고, 인간의 감각을 만족시킬 것을 권장했다. 또한 물질적인 호사와 사치도 이웃의 가난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허용했다. 그 자신이 친구들과 종종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만찬을 즐겼으며, 어떤 자리에서는 술을 석 잔만 마셔도 어지럽다는 사람을 야유한 적도 있었다. 칼뱅이나 칼뱅 교회가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이다.

베버는 칼뱅의 신학 특히 예정론이나 금욕주의 등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자기 시대에 유포된 통념 정도에 의존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라이드가 던진 질문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베버가, 또한 논쟁에 가담했던 사람들 역시 과연 칼뱅을 진짜로 이해했는가?” 라이드는 칼뱅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흔히 베버 논지에 대한 비판자들마저도 몰랐던 대체가능한 해석을 얻게 되리라고 했다.

베버의 논지는 그가 근거로 제시한 칼뱅주의가 칼뱅 자신의 것과는 다르고 심지어는 반대가 되기도 하다는 점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최소한 16세기의 칼뱅주의로 볼 때 베버의 근거들은 잘못되었다. 따라서 칼뱅주의의 교리들은 자본주의정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버의 논지를 수용할 수 없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칼뱅주의나 개신교가 자본주의의 발달에 기여했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 닫힌 것은 아니다. 칼뱅과 루터, 츠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의 범위는 넓다. 그들의 경제사상이나 경제에 관련된 활동들도 다양하고 폭이 크다. 그리고 해석에 따라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도 있다. 칼뱅과 자본주의와의 관계, 더 넓게 개신교와 자본주의 관계의 최종적인 결론을 위해서는 그런 점들이 좀 더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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