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Ⅰ]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과제


유동식 (연세대 퇴임교수, 문화신학)


1. 서구의 종교개혁


 교회사를 통해 본 서구문화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로마의 황제가 가톨릭교회를 지배한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신정정치시대가 그것이다.
 둘째, 중세에 와서는 반대로 교황이 전 유럽 군주들 위에 군림했다. 서구의 정치, 사회, 문화를 교회의 교리 안에 두었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몸 된 가톨릭교회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근대문화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에 이루어졌다.
 종교개혁의 발단이 된 것은 면죄부 판매사건이었다. 교회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수리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영적구원을 돈으로 사게 한 셈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자들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성서에 증언된 하나님의 은총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대속과 그의 부활에 의한 영생의 복음을 믿는 믿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성서만으로,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는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 성직자들만이 읽던 라틴어 성경을 일반 신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 등 자기네 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는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프로테스탄트”로 양분되었다.
 실은 이에 앞서 11세기에 교리문제로 인해 분리되어 나간 동방교회 곧 희랍정교회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크게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와 개신교로 나뉘어 전개되어 왔다.


2. 한국의 기독교 상황


 우리는 가톨릭교회를 천주교라고 부른다.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된 것은 두세기 전의 일이다. 당시의 한국은 배타적인 보수적 유교문화사회였다. 따라서 천주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배척하고 박해했기 때문에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한편 천주교는 엄한 교회법도로 인해 대중에 파고들기가 어려워 그 성장이 더디었다.
 이에 비해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개신교는 급성장하여 지금은 교회당 없는 마을이 없어 기독교 국가를 방불케 한다. 그 신도 수만도 천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개신교의 한국선교는 단순한 교회확장 운동이 아니라, 서구적 교육과 현대문화 도입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의 설립이나 의료기관의 설립, 그리고 성서의 한글번역을 통한 계몽운동 등에 주력했다.
 한편, 인격과 인권의 존엄성을 중추로 한 복음 선교로 말미암아 일제치하에서는 상실된 민족적 주권 회복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우리들의 신앙 대상인 절대자를 불러 ‘천주’라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전통적 개념인 ‘하느님’으로 부른 점이다.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항상 시월에는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온 민족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하느님의 아들이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혼합주의의 위험성이 동반되었다. 고대 집단적인 제천의식이 점차 개인적인 무속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무속의 중심에는 생존적 가치가 자리잡고 있다. 곧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신령님에게 비는 것이 굿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급성장 속에는 이러한 민간신앙과의 혼합현상이 적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게재된 화려한 전면 광고는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듯했다.
 목회자와 신학자 60여명의 컬러사진으로 윤곽을 짠 광고의 주제는 “축복과 기적을 위한 특별집회”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되어 있었다.
 하나는 “신장암 말기 금식기도로 치료 받았습니다.”였고, 또 하나는 “3일 금식 기도로 연 매출 100억 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였다.


 3. 한국 개신교의 과제


 모든 사람들이 구하는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신앙의 목적이거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나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그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차원을 달리한 새로운 존재가 되는 데 있다. 이것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양식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갈 2:19~20)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부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빌 4:11~13) 

 이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
 최후의 만찬 후, 당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너희들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고 너희들이 또한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들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 14:19~20)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 삼태극적 존재 곧 ‘복음적 실존’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제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된 것이다. (롬 8:15)
 하나님 계신 곳이 하늘나라요 천국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의 처지 여하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사는 사람들이다.

                “높은 산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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