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언제나 있었던 개혁에의 욕구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15세기 중반쯤 수상한 기운이 문화, 예술계 전반에 불어 닥친다. 우리말로 재탄생, 영어로 rebirth, 불어로 renaissance가 곧 그것이다. 중세의 오랜 기간 교회를 장악한 교황의 절대적 지배가 만들어 낸 그늘은 짙었다.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본능적 욕구가 터져 나오려는 긴장으로 충만하고 잠자던 인간 정신은 기지개를 켜며 깊은 침묵으로부터의 각성을 준비했다. 문학과 미술의 영역에서는 옛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광휘를 재현하려는 시도로 들떴다. 인간 능력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위선과 가식을 던져버린 적나라한 인본주의의 깃발은 희망차게 펄럭이기 시작한다. 문학과 미술은 가시적인 자료로 남아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모델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했다. 음악은 좀 달랐다. 사라지는 음을 소재로하는 탓에, 게다가 보존을 목표로 하는 기보법의 뒤늦은 발달로 인해 눈에 보이는 모방의 대상은 부재였다.

 

옛 그리스시대가 음악사에 남겨준 유산은 주로 이론과 용어적 부분에 국한된다.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계산법에 의해 음향학의 토대가 설정되었고 옥타브의 기본이 되는 테트라코드(4음의 뜻, 4음 더하기 4음이 옥타브이다)의 성립도 일찍이 그리스 시대로부터였다. 오늘날 통용되는 많은 음악 용어가 그리스시대로부터 비롯한다. Music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시작하여 symphony, chorus, harmony 등은 모두 그 때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용어들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졌을 때 실질적 모델은 없었어도 돌아볼 음악의 철학적, 이론적 토대는 굳건했다. 바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이다. 르네상스 정신의 본질인 인간 이성과 창조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음악에 있어서도 동일한 관점이었다. 음악적 르네상스란 중세를 지배했던 교회, 엄밀히 말하면 교황청의 음악문화와 관습을 깨뜨리며 나아가는 진정한 자아 찾기의 몸부림이다.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음악 장르는 교회의 의전용 음악인 mass, 즉 미사곡이다. 미사곡의 텍스트와 순서는 영원불변(!)한 것이었다. Kyrie, Gloria, Credo, Sanctus, Agnus dei의 순서대로 진행되며 가사는 일년내내 같았다. 미사를 집전하는 측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안이었지만 창작을 담당하는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모종의 답답함이 극에 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르네상스가 도래할 그 즈음 오케겜 (Johannes Ockeghem 1410/1425 ? 1497) 그렇게 틀에 박힌 미사곡에 실험적 요소를 끌어들였다. 그는 교회의 음악감독 직분에 매우 충실했던 인물로 눈에 띄는 파격적인 시도보다는 작품 내부에서의 기법적인 실험에 집중하였다. 오케겜은 서양음악에서 중요한 작곡개념인 대위법, 그중에서도 모방기법을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여 적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밀려올 르네상스 시대의 기운에 내용적으로 대비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15세기에서처럼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이 사이좋게 서로의 영역을 넘나든 시기도 흔치않다. 중세시대에는 교회음악이 절대적 권위로 군림하는 가운데 변방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세속음악도 번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영역은 상호 침투의 양상을 보이며 피차 자양분을 주고 받는다. 교회음악 쪽이 어쩌면 훨씬 이득이었다. 세속에서 불리고 유행하던 노래들을 미사곡의 모티브로 삼는다든지 그것들을 패러디하여 내용적 다변성을 꾀할 수 있었음은 모두 교회음악이 세속음악에 빚진 바라고 할 수 있다.

 

때마침, 1501년이 되면 이탈리아 베니스의 페트루치가 악보 인쇄를 시작한다. 이는 음악사에 있어서 거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지각변동을 가져온다. 지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통용되었고 그곳을 벗어나 알려지려면 힘든 필사를 통해서나 가능하던 악보 유통의 관행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본격적인 음악적 르네상스의 전개는 악보 인쇄와 더불어 시작된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듯 여러 다양한 문화의 물줄기들이 합류하고 교차하는 그 지점에 음악의 르네상스가 발원하고 있었다. 직전 세대 뒤파이와 오케겜이 마련해 놓은 기법적 실험의 장에 이윽고 등장한 르네상스의 거인 조스캥 데 프레는 미래의 음악을 위한 유용한 구도를 완성해 준다. 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더욱 기억나는 신앙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르네상스의 베토벤이라 불리는 걸출한 작곡가이며 개혁가였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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