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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독교문학(5): 엔도 슈사쿠와 함께 읽는 성서이야기

 

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종교철학)

 

엔도 슈사쿠에게 <위대한 바보>(おバカさん)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미 작품의 제목에서도 짐작하시겠습니다만, <위대한 바보>이 세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그리고자 하였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서 발상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사실 엔도는 언젠가 썼던 <도스토예프스키와 나> (1969)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어도 독자의 한 명으로서 압도될 뿐, 그와 유사한 것을 쓰려고 원고지를 펼치지는 못한다. (중략) 20여 년 전에 프랑스의 리옹에 있을 무렵, 무더운 여름방학 중에 나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악령>을 읽은 적이 있다. (중략) 그 때는, 언젠가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소설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직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 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의 이상적 인물을 그린 작품에 <백치>로부터 힌트를 얻은 <위대한 바보>라는 제목을 다는 정도의 일 뿐이었다. “

 

<백치>는 당당한 집안 출신처럼 보이는 뮈시킨이라는 젊은 공작이 병 치료와 요양을 위해 멀리 스위스까지 갔다가 3등칸 기차를 타고 고향 러시아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야심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단순한 바보이거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의 주위에는 그를 이용해서 한몫 잡아보려는 사람들이 곧 몰려들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지요. 그런 그를 향해서 당신은 유로디비 같군요라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로디비”(yurodivy)란 러시아어로 어리석다는 뜻으로서, 예부터 동방교회에서는 세상을 버리고 신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을 유로디비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보가 된 사람들 또는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유로디비”,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보가 된 사람들의 전통은 신약성서 <고린도 전서> 4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현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자이고 여러분은 강자입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멸시만 받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유로디비가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친구"라는 말 그대로, 뮈시킨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여인 나스타샤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줍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뮈시킨이 나스타샤가 쓰러졌을 때 언제까지나 옆에 앉아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가 웃을 때 같이 웃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서는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고 썼습니다만, 엔도가 <위대한 바보>에서 묘사하였던 주인공도 이러한 뮈시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위대한 바보>의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지극히 평범한 일본 청년 타카모리(隆盛)에게 편지가 한 통 배달됩니다. 뜯어보니 자신을 보나파르타 가스통이라고 밝힌 한 프랑스 청년이 일본에 오겠노라고 하는 내용을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혹시 저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후손이 아닐까하고 여겨지는 인물이 멀리 프랑스로부터 온다는 편지를 받고나서부터, 타카모리와 그의 여동생 토모에는 설마 하였지만, 배를 타고 온다기에 요코하마 항구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기에 배에 올라가서 찾아보았더니, 그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행색을 한 채, 배 가장 밑바닥에 있는 4등칸을 타고 왔습니다. 뮈시킨처럼 말입니다.

 

말처럼 길고 얼간이와 같은 얼굴를 가진 그는 언제나 잘 웃었는데, 웃음으로 허물어지는 그 얼굴 모양새란 바로 바보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이사야서 53) 이 청년이 머무는 곳은 토쿄 산야(山谷)의 싸구려 여인숙입니다. 산야는 예전에 처형장이 있던 장소로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역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된 곳입니다.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기르는 사람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늙은 개를 보고 가스통은 자신이 먹을 것을 주면서 오늘부터 너는 내 친구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해득실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늘 이용만 당하면서도, 그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만 한 사람들의 옆을 떠나지 않으면서 그들과 함께 웃고 또 울어 주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누가복음 958)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지만, 가스통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행동이란 것이 피에로 같은 바보짓뿐이어서, 사람들은 자주 가스통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멀리 이곳까지 왔을까?”라고 체념과 조소가 어린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스통은 마침내 그는 원한에서 비롯된 싸움을 말리려고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듭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형이 군대 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을 복수하려는 사나이그의 이름은 작가와 똑같은 이름인 엔도입니다가 휘두른 흉기를 자신의 몸으로 대신 막아내고, 가스통은 피를 흘리면서 산 속의 깊은 늪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유체(遺體)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스통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던 타카모리는 자신이 가스통의 대답을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거예요라고 말입니다.

 

그 때 가스통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은 백로 한 마리가 저 멀리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타카모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가스통은 살아 있어. 가스통은 저 푸른 먼 나라로부터 사람들의 슬픔을 짊어지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던 거야.”

 

가스통은 무엇 하러 멀리 여기 일본까지 왔을까라는 물음은 신은 왜 인간이 되셨을까?” (Cur Deus Homo) 라고 물었던 중세의 신학자 캔터베리의 안셀름의 물음과 같은 것이겠지요. 안셀름은 "우리들의 죄가 용서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만, 엔도 역시 가스통은, 아니 예수는 저 푸른 먼 나라로부터 사람들의 슬픔을 짊어지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엔도는 예수를 영원한 동반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엔도의 <위대한 바보>는 바로 "사람들의 슬픔을 짊어지기 위해서 여기까지" 오신 위대한 바보로서의 예수를 그려내려는 엔도의 신앙고백(credo)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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