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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7): 도스토예프스키 백치

 

이상범 (칼럼니스트, 신학)

 

이 소설의 중심사상은 포지티브하게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는 것아름다움은 궁극적인 이상이 세상에 포지티브하게 아름다운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이다.”(186811)

 

도스토예프스키는 질녀 소피아에게 백치를 증정하면서 보낸 편지에 그렇게 썼다.

 

러시아어 포지티브하게 아름다운 사람이란, 흔히 백치로도 번역되고 있는 유러지비와 함께 센티멘털한 호인이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어, 자칫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표현이다.

 

줄거리: 페테르부르크행 기차에서 쇠락한 청년공작 뮈시킨이 로고진을 만난다. 뮈시킨은 전간(癲癎)과 정신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오래 스위스에 머물다 러시아로 돌아오고 있는 길.

로고진은 장사꾼 아버지 밑에서 하인처럼 일에 시달리느라 세상 물정에는 깜깜한 젊은이. 우연히 나스타샤라는 미녀를 보게 되는 순간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거래처에 지불해야할 대금을 털어 나스타샤에게 고가의 귀걸이를 선물하고는 아버지의 노여움이 두려워 백모 댁에 숨어 있다가, 부친이 급사하자 막대한 유산상속인이 되어 페테르부르크 돌아가는 터였다.

 

백치에서 뮈시킨 못지않게 조명을 받는 여주인공 나스타샤, 독자들 중에는 그녀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했던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우기는 이들도 없지 않는 나스타샤. 귀족 출신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16세에 지주귀족 토츠키의 양녀가 되어 9년 동안 그의 여인으로 살아왔다.

음흉한 토츠키는 자수성가한 에반친 장군의 장녀 알렉산드라와 혼인하기 위해서 주변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나스타샤에게 지참금을 붙여 에반친가의 비서 가냐 이보르긴과 혼인시키려 꾀를 부린다. 입맛에 맞게 길들여 온 미모의 여인을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데한편 에반친 장군도 나스타샤에게 눈독을 들이고

 

사나이들의 속내를 알아차린 나스타샤는 분노한다, 어차피 더렵혀진 여인이요 매물로 내던져진 여인이라 자학하는 한편, 능동적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겠다는 독기를 다진다. 못난 가냐 따위에게 팔려 가느니, 자신에게 목을 매고 있는 무교양한 로고진의 아내가 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노라며.

청년공작 뮈시킨은 에반친 장군의 부인과 척간이어서 그 집 셋째 딸 아글라야를 알게 된다. 좌절을 모르는 이상주의자 아글라야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뮈시킨을 사랑하게 되는데, 뮈시킨도 그녀의 미모와 순수함에 끌린다.

 

뮈시킨이 로고진을 통해서 나스타샤의 신상에 대해서 알게 되자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씨의 여인을 구해주고 싶어진다.

나스타샤의 생일 파티에서, 불청객 뮈시킨이 그녀에게 청혼한다. “나는 무조건 그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순결한 그대를하고 털어놓는다. 나스타샤는 결코 더럽혀진 여인이 아니라는 선언에 놀란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며 감사한다.

그러나 고급 창녀로 소문이 나있는 자신이 뮈시킨과 같은 순진무구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청혼을 물리친다. 경매 판돈인양 10만 루블을 들고 온 로고진과 그 곳을 나서는데... 10만 루블을 불타는 화덕에 던지며, 맨손으로 집어내면 모두 주겠다고 그녀가 제안하지만, 가냐는 실신하고 만다. 그녀가 로고진과 함께 모스크바로 가는 것은 뮈시킨을 청순한 아그라야에게로 보내주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곧 모스크바에서 뮈시킨을 만난 나스타샤는 혼인 직전에 로고진을 버리고 공작에게로 온다. 그러나 공작은 아그라야와 맺어져야 한다면서 다시 로고진에게 돌아간다.

 

뮈시킨 공작은 아그라야와도 결혼하고 싶어 했다. 두 여인과 얼굴을 마주하노라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어하는 위인이 되는 것은, 그가 백치이고 성실했기 때문. 연애보다는 연민에 기울어지기 십상인 그는, 지상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동경하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 쪽으로 기울어지는, 그래서 백치일 수밖에 없는 위인이었다.

뮈시킨을 두고 아그라야와 나스타샤는 경쟁자가 되는데, 아름다운 사냥감이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 두려워진 로고진이 참을 수 없어 마침내 나스타샤를 죽여서 시신을 자신의 집에 감추어둔다.

뮈시킨은 불행한 여인을 구해주겠다던 아름다운 꿈이 깨진 충격 때문에 정신장애가 재발해서 백치로 되돌아간다. 뮈시킨과 로고진은 사랑하는 여인의 시신 곁에서 무릎을 맞대고 하룻밤을 보낸다.

 

피날레는 사랑했던 여인을 죽인 사나이와 그 여인을 구하려 했던 사나이가 서로 위로하며 정신적 교감을 공유하는 장면이 된다. 백모에게서 막대한 유산을 약속받은 청년 공작 뮈시킨은 백치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간다.

 

참고: 도스토예프스키 애독자들은 백치의 주인공 뮈시킨에게서 예수를 읽어내려 애쓰는데, 도스토예프스키가 뮈시킨을 그리고 있을 즈음, 애독했던 작품이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였다는 사실을 알면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악을 알지 못하는 돈키호테가 세상 사람의 눈에는 모자라거나 백치로 비쳤듯이,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려한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인간백치의 이미지가 그리스도와 겹친다는 것을 공감할 수 없어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의 창작노트에서 함께 고통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모든 것이라고 썼다. “백치는 지극히 깊게 그리고 함께 고통 받음으로 과오를 저지른다... 대신 지극히 높은 도덕적 감정을 맛본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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