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중국과 기독교 (6)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 - 적응주의

 

 

안경덕 (몽골 선교사, 경영학)

 

 

마테오 리치(1552-1610)는 기독교 세계선교의 획을 그었던 위대한 선교사이며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본받아야 할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적응주의가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작금의 선교현실이 너무 암울하고, 특히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에 한국교회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면 우리의 자리가 너무 왜소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회의 동방선교를 시작하였던 사비에르(Xavier, 1506-1552)나 발리냐노(Valignano, 1539-1601)는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중요시했으며, 따라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오랜 고전적 전통을 가진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친화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 포르투갈 선교권 밑에서 일본 선교로 문을 연 예수회의 동방선교는, 일본에서는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승복을 착용하여 종교인의 신분을 밝히려고 하였지만, 중국에서는 결국 유자(儒者)의 옷으로 갈아입고 사인(士人)을 공략하면서 중국의 고유한 상황에 적응하는 “하향식 선교전략”을 구사하였다. 리치는 황제, 관료, 환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였고, 인쇄술이 보편화되었던 중국에서 한문이 가지는 전파력과 설득력에 크게 주목하였다. 또 문민우위 전통의 중국정치제도, 관료제도, 국가재정, 중국의 문물에 대하여 크게 감탄하여, 문화인(르네상스인)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한 것도 적응의 적극적인 일면이었다고 본다.

 

선교의 관점에서 그의 적응주의의 고리는 “상제”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예수회 토미즘을 바탕으로 한 예수회의 선교는 리치의 노력에 의하여 고대유교경전(四書三經)에서 “상제”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찾아내어 이를 선교의 접점으로 삼았다(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기독교의 “하느님”으로 조선 전래의 “한울님”을 받아들인 것과 유사하다). 즉 라틴어 “데우스”가 “상티”로 번역되어 선교기본전략인 “보유역불(補儒易佛)”이 중국(유교)전통과 접합하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하여 “수용”에 따른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야기되기도 하였다(기독교 박해에 관하여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앞서 소개하였던 동방교회(경교)는 기독교의 하느님을, 중국 고유의 종교인 도교의 용어를 불교에서 차용했던 것을 그대로 차용하여, 불타(佛陀), 일신(一神), 아라가(阿羅訶) 등으로 불렀고, 중국에 살던 유대인들은 야훼를 “천(天)”이라고 불렀다. 1583년 중국 선교를 시작한 리치는 “천주”라고 부르다가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여기에서 찾아낸 “상제”를 바로 중국인들이 고대로부터 가지고 있던 유일신이라고 보아 기독교의 하느님과 동일시하였다. 물론 리치가 죽은 뒤 예수회 안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이에 대한 찬반논쟁이 지속되었다. 특히 1631년 예수회의 중국선교 독점권이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는 적응주의에 반대하던 예수회 이외의 수도회에서는 “리치의 원칙”(적응주의)에 반기를 들었고, 때마침 불어 닥친 반교사인(기독교를 반대, 비판하던 선비들)의 적응주의에 대한 공격에 노출되어 “전례논쟁”에 휩쓸리게 되었다(“전례논쟁”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을 이어가겠다).

 

명나라 말기에 불교는 도교보다 우세한 위치에 있었으며 심지어 예수회 선교사들조차도 도교경전인 『도덕경』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중국인들로서는 외래종교인 불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교리가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고 이해하였으므로, 리치 등은 불교를 경쟁상대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명저 『천주실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다분히 당대의 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선교 면에서 불교에 대한 공격으로 효과를 보았고, 여기에 첨가되었던 것이 바로 중국이 필요로 하였던 서양의 과학기술이었다. 하지만 선유(古代儒敎)에서 찾아낸 상제 개념이 후유(明代儒敎)에서 불교의 영향으로 변질되었다는 리치의 주장 때문에 유자들의 반론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적응주의 또 다른 중요한 모습은 역법개정을 필두로 하는 서양의 근대과학기술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지도, 자명종, 천문기구를 소개하면서 중국문명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고 중국의 과학기술의 후진성을 부각시키면서 이 또한 적응주의의 한계를 부각시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적응주의는 선교의 수단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리치는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적 보편성과 선교의 공격성이라는 근본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또 서양의 문명수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므로, 그의 적응주의는 전술적 차원에 머물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리치의 사후에 중국 지식인들의 서양에 대한 편애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선교단 내부에서도 이러한 적응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 1616년 남경교안(南京敎案)을 계기로 반대와 비판세력의 결집이 가속화되었다. 따라서 리치의 적응주의는 동서문화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또 그 방법이 지극히 합리적이어서 현대적 시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선교사로서 문화적응주의를 선교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만은 분명하였으므로, 당시 유럽의 종교상황 등과 관련하여서는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회는 “중국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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