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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 (10)

프랑수아 모리아크: <테레즈 데스케루>

 

이상범 (목사, 칼럼니스트)

 

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는 크리스천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그렇다고 호교론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 그의 작품에서 기대하던 하나님을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숨어있어서 은총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귀띔이 고작이다.

그러면서 그 은총이 적잖은 사람들을 자신의 작품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솔직한 고백을 덧붙이는가 하면, 자신의 작품세계를 에워싸고 있는 대기를 무신론 작가들이 호흡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모리아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테레즈 데스케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죽을 더듬거나 어려운 문학이론을 들먹이기 보다는 먼저 작품 속에 들어가 보아야 하리라.

 

남편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테레즈 데스케루가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 변호사와 함께 재판정을 나온다. 풀려난 딸은 본 척도 하지 않는 친정아버지, 변호사를 붙들고 재판결과를 확인하기에만 골몰하는데…….

그녀에게 공소기각이 선고된 것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남편 베르나르와 그 지방의 시장이었던 친정아버지가 힘을 합쳐 재판에 대처한 결과였다. 남편 베르나르는 법정에서 위증했고, 친정아버지는 테레즈를 고발했던 의사를 설득하여 고소를 취하하게 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범한 죄, 많은 사람의 두둔과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판이 무죄로 인정한 죄는, 테레즈의 깊은 곳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부친과 변호사를 작별하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별장을 향해 밤기차에 앉은 테레즈, 그녀는 상념에 시달린다. 쫓기는 짐승처럼 살아왔던 그녀. 푹 패인 뺨, 유난히 넓어진 이마, 끝없는 고독의 형을 선고받은 자신의 몰골을 매만지며 회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남편은 위증으로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녀의 죄의식 아니 물적 증거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남편을 의지할 것인가. 그녀가 그렇게도 끔찍한 일을 저질러버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남편 베르나르는 그녀가 혹 결혼할 수도 있었을 다른 청년들에 비해 세련된 편이었다. 그녀가 그와 결혼하기로 한 것은 어느 정도의 호감에 더해서 2천 핵터에 이르는 그의 토지가 한몫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터. 그들의 결혼은 시골 명문가끼리의 맺어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안느가 시누이가 되어준다는 기쁨이 그녀에게 정서적인 안정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데스케루 내외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시누이 안느가 미친 짓이랄 수밖에 없을 애정 극을 연출한다. 그 때만해도 테레즈는 남편의 집안 편을 들어 시누이를 설득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결혼생활이라는 도피처를 다져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달래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혼인생활이 숨 막히는 감옥이 된 것은 사실인즉 신혼여행 침대에서 코를 고는 남편이 마치 먹이를 파헤치는 돼지처럼 느껴지면서 부터였지만, 그녀의 삶이 진정 힘든 상태가 된 것은 아기를 낳은 후가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외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이렇다 할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는 물론 시댁 가족들과 불편을 경험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테레즈에게는 비극이었다. 헤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테레즈에게는 비극이었다.

그날 남편이 비소가 든 약병을 다루면서 몇 방울 잘못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했을 때, 테레즈로 하여금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무엇이 정량의 2배나 되는 비소를 베르나르가 마시게끔 채비하게 한 것이다. 갑자기 더해진 남편의 병세, 의사의 처치로 일단 회복되는가 싶더니 곧 재발하곤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의사의 조사로 자신의 필적이 아닌 처방전이 발견되었고, 마침내 테레즈는 피고가 된 것이었다.

재판정에 서게 된 부부. 테레즈가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남편이 위증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옹호해준 일이다. 그러나 남편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테레즈가 아니라 베르나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집안의 명예일 뿐이란 것을 그녀는 느낀다.

 

역까지 마중 나와 준 남편. 그러나 그는 체면만을 생각하는 냉혹한 속물 지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정 끝에 별거를 허락받아 파리로 출발하는 그녀를 역에서 전송하는 남편. 그러나 남편은 끝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테레즈가 문득 남편의 얼굴에서 불안의 그림자를 보면서 야릇한 만족감을 느낀다.

 

여기는 파리. 고향 아르주르 솔밭의 웅성거림이 사람의 신음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울렁이게 했듯이, 파리의 떠들썩한 소음은 그녀에게 생기를 준다. 테레즈는 혼자 술을 마시며 연거푸 담배를 피워댄다.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처럼. 혼자 웃는다. 공들여 뺨과 입술을 화장한다. 정처 없이 길을 걷는다.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마감하고 나서야 썼다는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적어도 내가 그대를 버리고 가는 이 보도 위에서, 그대가 결코 고독하지는 않다는 희망을 나는 가지고 있다.”

 

물론 는 작가, ‘그대는 테레즈일 터. 그러나 혹 흥분한 군중들에게 끌려온 음행한 여인과 예수를 떠올리는 독자가 있다면.......

주인공 테레즈 데스케루는 오래토록 모리악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18세 되던 해, 재판정에서 우연히 목격한 독살범. 두 경찰관의 호송을 받고 있는 야윈 여인이 테레즈의 원형이었단다.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은 곧 자신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모리아크에게는 테레즈가 자신의 분신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톨릭 작가 모리아크가 가톨릭에 충실하지 않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작가의 진정이 깃들고 있다는 평가에, 악을 범하면서 선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면서도 악에 끌리는 약하고 모순된 인간, 천사와 야수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그렸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작품이 가톨릭이라는 한정된 틀과 국경을 넘어 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더불어 악녀테레즈가 보여주는 악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의식하고 작가는 말했다. “나의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보다 훨씬 더러운 인물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터이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비밀 속에 어두운 비밀을 포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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