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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무도회: 사랑을 기억하자

 

장기홍 (경북대 명예교수, 지질학)

 

개체(個體)로 살아가는 생물이나 개인(個人)으로 사는 우리는 삶과 죽음이 서로 맞잡고 춤을 추는 꼴이다. 세계라는 무도회에서 우리는 순리(順理)에 따라 스텝을 밟게 마련이지만, 이 글 마지막에 있듯이 순리에 크게 어긋났던 예도 많다. 일본군의 남경(南京)대학살은 그런 예다. 군사(軍事)를 포함하는 정치(政治)에도 사랑의 윤리가 도입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예수의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 곧 그 궁극적 교훈으로 돌아가자.

 

헨델(1685-1759)은 바흐와 더불어 서양음악의 어버이로 추앙받는 분이다. 헨델의 아버지는 이발사요 외과의(外科醫)였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의학의 전문화(專門化)가 덜 되어 이발사가 때로는 수술도 했다 한다. 여하간 그만큼 유능한 부친에게서 태어난 헨델은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법학공부를 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재능에 따라 음악의 길로 나아갔다. 동갑이었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그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독일 이곳저곳의 궁정악사로 지나면서 각각 넉넉한 보수를 받았는데 헨델은 바흐의 열배나 되는 보수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니 헨델은 행운아였다. 그는 독일인이었으나 이태리, 독일, 영국을 오가면서 작곡(주로 오페라, 후에는 오라토리오)을 했고 음악의 흥행과 교육에도 투자하여 성공과 실패를 다 겪고 심지어는 파산한 적도 있었다 한다.

그런 헨델에게 팔이 마비되는 중풍이 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그 때 그는 이미 영국으로 귀화한 후였으나 온천요법을 권유받아 독일로 가야했다. 의사가 하루 두 시간의 목욕을 권했을 때 그는 하루에 12시간을 목욕탕에서 보낸 적도 있었을 만큼 성심을 다하여 결국 회복했다. 이처럼 그는 건강, 음악, 사업 등에서 풍상을 겪은 후 5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시인의 작품을 얻어 감동으로 작곡한 오라토리오가 저 유명한 메시아. 물에 빠졌던 그였기로 구세주의 존재가 통절(痛切)했으리라. ‘메시아중 환희의 합창 할렐루야는 베토벤(1770-1827)9번 교향악 중 환희의 합창에 버금가는 절정(絶頂)적인 성악곡이다.

질병과 파산(破産) 같은 풍상(風霜)을 겪고 나서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듯이 베토벤도 귀가 멀고 인생이 다 되었을 때 그 절망 속에서 9번 교향곡과 환희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귀머거리가 작곡을 하다니, 상상도 못 할 불행이 아닌가! 그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드높은 환희를 맛보았다. 절망에 직면했을 때 환희의 탄성(歎聲)이 나오고 삶의 불꽃은 절정이 된다.

 

독일의 괴테는 이태리 여행 중 베스비우스화산(火山)을 답사하고 화구(火口)에서 뿜어 나오는 독한 화산 가스도 맛보았다. 그가 나폴리 사람들은 자기네가 하느님과 악마 사이에서 헤맨다고 느끼지 않았더라면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라고 기행문(紀行文)에 썼을 때 그 말뜻은 나폴리 사람들의 특이한 성격이 악마 같은 화산 때문이리라는 그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나폴리 사람의 특성이 무언지는 우리 같은 단기(短期) 여행자는 알기 어려우나 아마도 장터의 호객행위 같은 고성(高聲)의 장면을 두고 한 말 같다.

19세기의 비극소설 백경(白鯨)의 저자 허만 멜빌(Herman Melville)은 나폴리 사람들을 향해 내일 죽을지 모르니 실컷 먹고 마시고 즐겨라하고 충고했다 한다.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사람을 '죽음에의 존재라 설파했다. 실로 삶과 죽음은 그토록 서로 밀접하며 서로 연기(緣起)적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고(生者必滅), 죽음이 있음은 삶이 있는 연고(緣故)이다(석가의 깨달음).

이태리 남쪽의 베수비우스(Vesuvius)AD 79년 폼페이(Pompeii)()를 묻어버린 악명 높은 화산(火山)이다. 그러나 그 그늘 아래 있는 나폴리와 캄파니아 일대는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포도와 올리브가 잘 자라고, 일 년에 4모작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유럽에서도 인구밀도가 높기로 유명하다(나폴리만도 2.5백만). 땅이 비옥함은 활화산을 통해 지구내부 물질이 반복해서 공급되었기 때문인데, 로마시대 이후만도 50회나 분출하여 땅을 비옥하게 했다. 폼페이의 발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나 폼페이와 동시에 묻혔던 소()도시 허쿨레니움(Herculaneum)은 폼페이보다 뒤늦게 발견되어 건물들 때문에 발굴이 제대로 되지 못 하고 있다.

폼페이에 가서 발굴된 도시를 구경해 보면 그 중에는 죽기 직전의 모습이 남은 사람화석들이 전시되어있다. 그것들은 텅 빈 사람 형상 안으로 석고(石膏)를 부어 만든 인공화석들이다. 사람들이 화산재와 용암 파편암 아래 묻혀 죽은 후 시체는 지하수에 녹아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는 순간의 그 당황스런 모습이 여러 석고화석에 잘 나타나 있다. 죄가 많아 벌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화산작용은 맹목적이다.

베수비우스 화산과 나폴리 부근 어떤 마을들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씩 지진으로 파괴되는 재해를 겪는데 1944년 제2차대전말의 지진 때는 마침 상륙했던 미군이 촬영하여 그 극적인 방영(放映)장면을 나도 구경했다. 이렇듯 늘 불안하고 잦은 재해를 겪지만 주민들은 용암 위에 다시 집을 짓고 주택지를 조성한다. 그리하여 나폴리와 부근 일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생활에 활기가 넘치기로 유명한 곳이다.

장터에서 외치는 싸구려소리가 드높기로는 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이동성(移動性) 오아시스들도 그렇다. 오아시스 도시들은 형성, 이동, 멸망을 쉬 거듭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기간에는 시장(市場)들이 특별한 활기를 띤다. 침략과 멸망이 언제 닥칠지 몰라서다. 활어를 운반하는 짐차의 어항 속을 보면 천적(天敵)이 섞여 있을 때 비로소 고기들이 활성을 띠고 오래 살게 되는 소위 천적의 현상이 있다. 이태리 고서(古書)에는 죽음의 근접(近接)은 삶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쓰여 있다 한다.

 

위에서 필자는 죽음이 삶을 촉발시킴을 말했지만 지구상에서 반복되어온 대()학살사건들은 너무나 천리(天理)에 어긋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71213, 일본군에 의한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의 제80주년 기념일이다. 1937년의 남경대학살은 중국인들이 원한으로 이를 갈고 치를 떠는 대사건이다. 도시인구 70만 중 30만을 죽였으니 언어도단이다. 학살 당일에는 군인 하나가 중국인 백명 씩을 맡아 목을 치는 시합을 했다 하니 끔찍한 일이다. 남의 나라 땅을 뺏기 위해서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후에 곧 2차 대전 때 독일의 나치스는 유대인만도 600만을 학살했다. 그 밖에도 오스만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발칸반도에서의 인종청소 등 극악무도는 반복되고 있다. 오늘 중국은 대학살 8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우리대통령은 하필 그 날에 국빈으로 중국에 도착했다. 방중(訪中)의 날짜를 그렇게 합의했으면 대통령은 그 기념행사(추도식)에 참석했어야 한다. 추도식과 그 전후의 시간에 대통령은 북경 길거리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사먹어야 했고 거지처럼 서서 먹기도 했다 하니 한심한 광경이다. 남의 묵은 아픔을 외면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상기(想起)시키는 남경대학살! 예수의 사랑을 도입한 정치윤리학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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