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고난과 부활Ⅳ - 닫아 걸린 문 너머

김학철 (연세대 교수, 신약학)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는 바로크를 주도한 이탈리아의 화가다. 여러 범죄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고, 탈옥하여 도망하면서도 오늘날까지 감탄을 자아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도덕적 능력과 예술적 천재가 어긋난 사람이고, 사도 바울의 ‘질그릇에 담긴 보화’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경우다. ‘그림 1’(캔버스에 유화, 107cm × 146cm, Sanssouci, Potsdam)은 그가 1601-1602년 사이 그린 <성 도마의 의심>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배경은 잘 알려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고 처형되었을 때 그를 주님으로, 또 스승으로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피신했다. 그의 시신이 수습되고 동굴에 매장된 지 삼일 째 되는 날,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어귀에 놓인 돌이 옮겨져 있고 예수의 몸이 없어진 것을 보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마리아는 마침내 부활한 예수를 만났지만 이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의 시신을 찾고자 했다. 예수가 그의 이름, 곧 ‘마리아야’라고 부르자 그때서야 마리아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예수를 알아보았다. 이후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의 부활을 알렸다.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었을까? 같은 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마리아가 전한 부활 소식을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상황 증거다. 그러나 그 닫아 걸린 불신의 문을 지나 부활한 예수가 나타나 평화의 인사를 전했다.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서야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마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지만 도마는 말한다.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요 20:25).
  여드레 뒤, 이번에는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 역시 문이 잠겨있었고, 그것은 여전히 유대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는 증거다. 이상하지 않는가. 부활을 보기 전에 닫아걸려 있던 문이 부활을 목격한 이후에도 닫아걸려 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보고 기뻐했지만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능력이 무엇인지, 부활 목격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을 또 달리 말해보자.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도마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 중에 누구도 부활과 그 능력, 그것의 함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한 예수는 도마에게 나타나 도마의 말을 들은 듯이 그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고 말한다. 카라바조는 바로 이 장면을 그렸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키아로스쿠로, 곧 빛과 어둠의 인위적 창조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기법을 취한다. 예수의 몸과 도마의 손을 끌어당기는 그의 왼손, 그리고 도마와 주변 인물들의 얼굴에 빛이 내린다. 도마 이마에 진 주름과 그의 부릅뜬 눈은 그가 지금 놀라움과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마는 허리를 굽히고, 왼 팔을 허리춤에 대고 예수의 상처를 마치 검시관처럼 조사하고 있다. 오른 손 검지를 곧게 펴서 예수의 상처에 집어넣는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예수의 표정을 보라. 아우라도 없는 그의 얼굴에 부활을 입증하는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오른 손으로 옷을 열고, 왼 손으로는 상처 안에 들어가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인도한다(두 손에 모두 못 자국!). 상처를 통해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이 장면은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은 가끔 사람을 알아보게 하는 상처를 준다. 그러나 여느 사람은 그 상처에 함부로 손가락을 들이밀어 그가 누군지 확인하지 않는다. 도마의 왼쪽 어깨에 찢어진 옷과 예수의 상처가 같은 위치에서 서로 상응하는데, 옷이 ‘찢겼듯’ 예수의 몸도 ‘찢겼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그림은 사실 요한복음서의 보도와 같지는 않다. 비록 도마가 그렇게 말했고, 도마를 만난 예수가 손가락을 내밀라고 했지만 실제로 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활한 예수를 보는 순간 그는 예수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이 고백에 대해 예수는 답한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떤 학자들은 빈 무덤 등의 역사적 사실 점검을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려고도 애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학적 증명으로 사람들이 납득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부활의 참 의미까지 전달해 주지는 못한다. 그 이전에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자. 우리는 예수의 부활과 부활의 삶과 그 능력을 믿는가? 우리가 믿게 되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또 우리가 어떻게 부활이 진리라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부활의 소식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만약 마리아의 예수 부활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도마가 오기 전에 닫아걸어 두었던 문을 열었다면, 그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부활의 능력과 의미를 실행했다면 어떠했을까? 도마는 아마 보지 않고도 믿었을 것이다.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확인하지 않고도, 그 옆구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지 않고서도 부활과 그 의미에 감격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부활 소식을 우리 자신과 세계에 전하려 한다면 닫아 걸린 문을 열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나가는 길 외에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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