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고난과 부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한 예수

 

김득중 (감신대 총장, 신약학)

 

예수의 반복된 수난 예고들(8:31; 16:21; 9:22; 9:31; 17:21; 10:33-34; 20:18-19; 18:32-33)은 모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로 끝나고 있다. 그래서 예수의 수난 이야기들은 모두, 그리고 모든 복음서들이 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맨 처음 <빈 무덤 이야기>(the empty tomb) 형태로 전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인들이 안식일 후 첫날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는데, 무덤은 비어있었고, 천사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그분은 여기에 없다. 그는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 형태로 말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빈 무덤 이야기>를 넘어서, 점차 <부활 현현 이야기들>(the resurrection appearances)로 확대 발전했다. 즉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었다는,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부활 현현 이야기들>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28:13)는 유대인들의 악의적인 유언비어까지 있던 상황에서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만으로는, 그리고 천사가 예수는 부활했다고 말했다는 여인들의 증언만으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부족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전해지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런 <부활 현현 이야기들>은 예수 부활의 사실성과 확실성을 더 분명히 증거 하려는 의도에서 전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최초로 기록되어 나온 마가복음이 빈 무덤이야기(16:1-8)로만 끝이 나고 있는 반면에(16:9-20은 후대의 첨가 부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후에 나온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및 요한복음들에서는 예외 없이 부활 현현 이야기들이 첨부되어 있는 사실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독특하게도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부활하신 예수가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24:13), 글로바”(24:18)와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이야기가 비교적 길게 전해지고 있다(25:13-35). 물론 글로바와 또 한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를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만나보았다는 이 이야기가 누가복음에서 이 두 사람막달라 마리아보다도 먼저, 그리고 열한 제자들보다도 먼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보았다는 이야기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부활하신 예수가 자신을 누구에게 제일 먼저 나타내 보이셨는가?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나본 사람이 누구인가(who)? 하는 점이 초대교회 안에서는 권위의 순서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cf. 고전 15:4-8). 이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가 부활한 자신의 몸을 나타내 보여주신 곳이 어디인가(where)? 하는 점도 초대 교회의 중심지가 어디였을까?(갈릴리인가? 예루살렘인가?)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복음서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오직 누가복음만이 예수의 제자들(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어떻게”(how)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보게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를 어떻게”(how) 알아보게 되었는지? 그 경과와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 본문에 보면 두 제자는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를 길에서 만나 서로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24:16). 그러나 그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로부터 성경에 관한 말씀(24:25-27)을 듣고 난 후에, 그리고 특히 날이 저물어 함께 머무르며 예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가운데, 드디어 그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24:31)고 전한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의 경우와 달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누가가 사도행전 서두에서 예수가 부활한 이후 승천하기까지 제자들에게 몸소 자기를 보여 자기가 살아 계시다는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를 주시고 또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일들을 말씀 하셨습니다”(1:3)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부활하신 예수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누가가 주후 일 세기 말경에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역사적인 예수를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자기 시대 제자들, 곧 누가복음 독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그를 알아 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 나름의 중요한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누가가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첫째로 우리는 이 이야기 가운데서 누가가 증거 하려는 계시적(啓示的)인 주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예수와 달리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금방 쉽게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분이다. 즉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은 믿음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계시적인 만남이란 말이다. 이런 주제는 마태복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신앙 고백했을 때, 예수는 바요나 시몬아...네게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16:17)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도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계시 때문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볼게 된”(24:31) 것은 특히 부활하신 예수께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성서 전체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주는”(24:27) 말씀을 들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에 이어서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식사하는 가운데 예수가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었을”(24:30) 때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님이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었다”(24:30)는 이 문구가 교회의 성만찬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문구라는 점(cf. 14:22; 26:26; 22:19; 고전 12:23-24)을 고려할 때, 누가는 이 본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만찬을 나누는 일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그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누가만이 전해주고 있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의 이야기>는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를 어떻게만날 수 있으며, “어떻게그들 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육신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말씀성만찬을 통해서 점차적으로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볼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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