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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부활- 고난을 극복하는 길

 

손원영 (예술목회연구원장, 기독교교육학)

1. 요즈음 주위를 살펴보면 온통 사람들이 고난’(suffering)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젊은이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다. 필자의 아들이 한 두 해 전인 대학 2학년생이었을 때 한 말이다. “아빠, 2병이라고 알아요?” “글쎄, 모르겠는데....2병이란 말은 들었지만, 2병은 처음 듣는데?” 아들이 답했다. “...2병은 중2병의 정반대예요. 2는 세상이 다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는 나이잖아요. 그래서 김정은도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한다는 말이 있구요. 그런데 대2는 정반대랍니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 나이라고나 할까요? 공부도 자신이 없고, 자격증도 따봤자 크게 쓸모 있을 것 같지 않고, 대학졸업하면 변변한 직장 하나 잡을 것 같지도 않고, 결혼도 못할 것 같고.....등등. 2엔 살아갈 자신이 정말로 하나도 없게 된답니다.” 대학 2학년생인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돌이켜 보니 아들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인 적이 이전에 결코 없었던 것 같다. 요즈음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고난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대2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모두가 하나같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어린양처럼 웃음을 잃은 채 침울하고 기운이 빠져있고, 어깨가 쭉 처져있고, 그래서 마치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처럼 보인다. , 정말 안타까운 세상의 모습이다. 모두가 고난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도 지금 고난을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작년에 필자는 개신교인에 의해 훼손된 불교의 한 사찰을 복구하기 위해 좀 도왔다는 이유로 20년 가까이 봉직했던 한 신학교에서 강제로 해직되어 맘고생을 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 모두가 겪고 있는 이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 고난이란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2. 불교의 법구경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suffering)에는 크게 여덟 가지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일컬어 팔고’(八苦)라고 하는데,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에다가 또 네 가지의 인간사의 고통을 추가한 것이다. 즉 생고(生苦), 로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에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이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만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하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물질·느낌·생각·작용·식별의 오음에서 비롯된 수많은 괴로움인 오음성고’(五陰盛苦)가 그것이다. 아마도 불교만큼 인간의 고통 문제를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사유한 철학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삼 고통에 대한 불교의 이해가 심오하기만 하다.

특히 필자의 해직 경험을 되돌아 볼 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원증회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일종의 즐거움이랄까? 사실 목사이지만 불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박해와 모멸감을 받고 심지어 징계를 받는 한국 신학대학의 현실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정작 파면을 당한 뒤 어느 순간, 나에게 모멸감을 주던 그 사람들의 얼굴을 더 이상 안 봐도 되니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 그렇구나! 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절대적인 고통이 아니라 또 그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고통은 상대적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즉 고통에 대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고통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은 절대적인 고통이 아니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태도로 별 것 아니라고 상대화시키면, 우리는 그 고통으로부터 점차 벗어날 수 있고, 심지어 그 고통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대부분 삼독’(三毒)으로 불리는 인간의 탐심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부터 온다. 이것을 법구경에서는 탐진치’(貪瞋痴)라고 말한다. 이 탐진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불교식의 고난극복법이다. 초기 불교 경전인 아함경에서는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불리는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s)를 통해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사상에 와서는 육바라밀곧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로 불리는 여섯 가지의 최고 실천행을 통해 우리 인류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그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

 

3. 한편, 기독교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사실 기독교는 앞서 설명한 불교만큼 고통에 대해 체계적인 철학적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불교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더 심오한 고난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 고난은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류의 죄를 예수께서 대신 짊어졌다는 의미의 대속적 고난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었지만, 매우 창조적이고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여기서 창조적이라 함은 하나님의 자기비움의 구체화란 측면에서 매우 미학적인 의미요, 비극적이라 함은 상식적 죽음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숭고미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고난은 앞서 서술한 불교의 범주를 넘어선다. 즉 예수의 대속적 고난은 단순히 개별 인간들이 겪게 되는 불교식 팔고의 고통을 넘어서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개입과 그 분의 고통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 공동체 전체가 만들어낸 구조악과 그에 따른 인류 전체의 고통인 인류고’(人類苦)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몸소 짊어지셨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9:23-28)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참 고난의 의미란 대속적 고난의 환대’(hospitality)에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고난은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되는 불가피한 고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고난은 인간의 부정성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가능성 안에서 인류 구원이란 큰 대의를 위해 대속적 고난을 적극적으로 환영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위대한 기독교 숭고미학의 전형을 발견한다. 특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라는 말씀처럼 타자의 고난에 대속적으로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극한 기독교적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우리가 대속적 고난을 환대할 때, 고난은 어느 날 홀연히 찬란한 부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 하나는 참 고난의 의미란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길이란 사실이다. 한 인간이 온 인류의 죄와 고통을 대신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사역으로써만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3:16)라는 말씀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즉 대속적 고난은 신적 사랑의 자기표현이다. 따라서 대속적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oneness)가 된다. 결국 기독교적 고난극복법은 고난의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대속적 고난을 기쁨으로 환대하는 사랑의 실천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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