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고난과 부활- “이사야의 고난의 종의 사회문화적 배경

 

 

민영진 (성서공회 총무, 구약학)

 

 

시인과 사형수(53)

 

바벨론제국이 기울어져 가던 기원전 6세기말, 곧 신흥세력 페르시아가 일어나기 직전, 바빌로니아에 잡혀 가 있던 유다의 포로들 중 한 사람이 바빌로니아 정부 당국에 의해 체포된다. 그의 외모는 초라하다. 볼만한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나이다. 그는 반국가적 행위를 범한 반역죄의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신문(訊問)을 받는다. 웬일인지 그는 말이 없다.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신문하던 이들은 그를 채찍으로 친다. 그들에게 그는 자기의 등을 맡긴다. 그들은 그를 뾰족한 창으로 마구 찌른다. 그들은 그의 수염을 뽑는 고문을 가한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의 뺨을 맡긴다. 온 몸이 이리 찢기고 저리 멍들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고문하는 이들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도 그 수욕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거나 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리고는 산 자의 땅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알 수 없이 죽어간 한 죄인을 두고 유대 포로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로 판단이 갈린다. 소수의 포로들은 수군거린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한 말이란 바빌로니아 제국이 곧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 페르시아가 일어날 것이며 유다의 포로들은 바빌로니아의 멸망과 동시에 유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예견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중에 누군가가 그를 무고하게 바빌로니아 정부 당국에 고발하여 그가 곤욕을 당하게 했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다 포로들은 바빌로니아 사람들 들으라는 듯 크게 외친다. “그 자는 벌 받아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바빌로니아 정부 당국이 우리 유대 포로들을 이렇게 잘 살게 하는데 바빌로니아가 망한다고, 민심을 소란케 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그동안 우리가 이 이국땅에서 애써 쌓아올린 우리의 안전한 생활 터전을 뒤흔든 악질분자이므로 죽여 마땅하다.

말없이 끌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한 유다인 사형수의 죽음은 한 시인의 깊은 통찰의 대상이 된다. 처형 받은 그 사형수에게서 한 시인은 자기 백성, 유다의 포로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대속자(代贖者)를 본다. 그리하여 시인은 감읍(感泣)한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53:5-6).

 

익명(匿名)의 수난자와 이스라엘

 

그 익명의 수난자는 사형언도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그가 받은 고난과 죽음을 그의 생애의 실패로 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위하여대신 당하는 고난으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밖의 모든 만족을 야훼에게로 돌이키기 위한 고난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대담하게 해석한다(52:13-53:12). 그는 자기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죄한 자의 고난과 죽음이 그들로 어떻게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들을 야훼에게로 돌이키는지,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교, 곧 야훼의 세계 구원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고백하게 한다(53:1-11).

한 시인은 한 익명의 수난자가 받는 고난에서 같은 의미를 읽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지닌 세계사적인 사명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까지 고난 받는 종의 생애에 비추어 통찰하고 있다. 한 집단으로서의 야훼의 종인 역사적 이스라엘과 한 개인으로서의 익명의 종 사이에서 그 시인은, 한 공동체는 언제나 개인 속으로 육화(肉化)되고, 거꾸로 한 개인 역시 한 공동체 속으로 구체화되는 현상을 본다. 집단 이스라엘과 한 개인 익명자는 다 같이 야훼에게 택함을 받고(41:8-9; 42:1), 모태로부터 야훼의 종으로 조성된다(44:2; 49:1). 둘 다 야훼로부터 특별한 도움을 받으며(41:10; 42:1), 혜택을 입는다(51:16; 49:2). 이스라엘도 익명의 종도 만방의 빛으로(42:6; 49:6), “법과 공의를 세계에 베풀 자(51:4-8; 42:4), “야훼의 영광을 나타낼 자(44:23; 49:3) 부름 받는다. 이처럼 시인은 집단으로서의 종 이스라엘과 개인으로서의 종 익명자가 불가분의 통일체임을 본다.

 

고난받는 종과 그리스도 (모형론적 해석)

 

어느 집단이든지, 민족공동체이든, 언어공동체이든, 지역공동체이든, 자기 집단의 고난을 세계를 구속(救贖)하기 위한 대속적(代贖的) 고난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가학(加虐) 집단을 구속하기 위한 번제(燔祭 holocaust)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자기이해나, 함석헌이 한국전란에서 우리민족의 역사적 희생이 전 세계를 구속하기 위한 대속적 고난이라고 본 것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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