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황혼의 고백: 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이

 

 

황태병 (의사, 미국 거주)

 

 

S형이 보내 주신 크리스마스카드를 반갑게 받았습니다. 옛날 일을 많이 쓰셔서 그렇지 않아도 옛 추억에 잠겨 있었는데 다시금 옛 일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받고 보니 인생의 저녁노을이 짙어가는 때여서인지 내 머리에 남아있는 상념을 형과 나누어볼까 하는 심정에서 붓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제가 나가는 미국교회에서 새 찬송가를 구입하였는데 한국 찬송이 5-6 편 들어 있어서 찾아보았더니 “주 음성 외에는” 밖에는 모두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60여 년을 살았지만 영어로 부르는 찬송은 여전히 생소합니다. 한국말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 하면 찬란한 길이 눈앞에 보이고 마음에 쿡 찔리는 게 있는데 영어로는 그런 자극이 없습니다. 모국어의 힘이라고 할까요.

 

저는 요즘 느보산 산상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를 종종 상상해 봅니다. 긴 지팡이를 짚으며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정상에 올라가 긴 숨을 내쉬고 늘어진 머리 가락과 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면서 들어가지 못할 가나안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혹시 슬픔이나 원망 또는 허망의 눈물이 고여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리던 이 땅, 갖은 고난을 겪으며 얻은 이 약속의 땅(promised land)이 눈앞에 있는데 그것을 밟아볼 수 없다니, 모세의 마음은 얼마나 저렸을까요. 둥실둥실 떠도는 흰 구름은 요단강 건너 가나안으로 흘러가고 새들도 활개 치며 날아가는데, 나도 구름이고 새였으면 하고 부러워했으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야훼의 모세에 대한 “입장금지령”은 너무도 무정하고 가혹했습니다. 원치 않는 모세를 강제로 뽑아 이용할 대로 이용하면서 출애굽에서 시작하여 홍해를 건너 사막생활 40년까지 기나긴 고난의 길을 밟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다 된 무렵, 마지막 단계에서 “너는 안 된다.”라고 선언하시니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야훼는 양심도 없으신가요? 하루 종일 일한 종에게 두 시간 일한 보수도 주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같으면 머리를 싸매고 데모를 하고 단식투쟁(hunger strike)을 해도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모세는 실망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정의의 야훼를 의심도 했겠지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앞둔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과 흥정도 해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모세가 가나안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지금까지 방황한 시내의 사막을 돌아본 다음 눈을 감으면 환난으로 가득 찬 생애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을 것입니다. 먼저 자비로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겠지요. 애정에 찬 어머니의 눈동자, 울음을 참고 바구니를 엮고 있는 어머니의 손, 눈물을 흘리며 바구니를 나일강으로 떠내 보내는 어머니, 기적적으로 그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일 등.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추억에 잠겨있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혈기왕성한 모세 자신이 살인하는 광경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사건이 모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나는 죄인이구나. 죽어서 마땅한 죄인이다.”는 자각을 일으킨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러한 죄인이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고 부르심을 받은 다음 노예의 몸으로 담대하게도 대국의 왕과 자웅을 겨루려고 결단하고 승리의 행진으로 출애굽하게 됩니다. 그러나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때 불평에 가득 찬 민중을 이끌려고 하니 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반면에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가르던 상쾌함과 갈라진 바다의 장관 그리고 그 밑바닥을 건너가는 광경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동서남북을 몰라 사막에서 헤맬 때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기적,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고 만나를 나려주신 야훼, 황홀하게도 시내산에서 민족교육에 쓸 교재 십계명을 돌에 새겨 받은 경험 등 허다한 기적의 체험들을 회고할 때 모세의 마음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는 측량할 수 없는 야훼의 섭리에 다시 한 번 감동하여 죄인을 택하여 국부로 삼으신 하느님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심정을 거두고 감사와 찬양의 제단을 쌓았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지금 모세처럼 느보산 정상에 서서 저의 과거를 더듬어 봅니다. 우리들도 “성화(聖化)”라고 하는 신발을 벗어야 할, 부르심 받은 거룩한 동산이 있었지요. 우리들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날마다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일상을 규정하는 십계명도 받은 그 동산 말입니다. 그곳은 우리들이 출애굽한 곳이고 옛 나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새로운 나로 변하게 한 “성화”(평양성화신학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환난과 시련에 찬 시내의 사막이 있었지요. 그것은 어린 나이에 눈물로 부모님과 작별하고 굶주림과 추위를 무릅쓰며 걸어간 피난길이었습니다. 지금도 TV에서 피난 가는 군상을 보면 마음이 저립니다. 내가 그들 중에 하나가 되어 자유를 찾아 헤매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진해가 목적지인 줄도 모르고 남으로 남으로 행군하던 일. 형은 발에 물집이 생겨 따라오느라고 무척 고생이 많았지요. 해병대 신병훈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덤벙 뛰어 들어가 배가 고파 식사당번을 기다리던 일. 이런 시련의 시기가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길러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모세와 함께 서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왜 나를 부르셨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왜 나를 뽑으셨을까요. 많은 전우들이 쓰러지는 데 왜 나를 살려주셨나요.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신 분은 실로 나에게 불과 구름 기둥이셨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그 산 위에서 밧모섬의 요한이 본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리라고 상정해 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가나안 쪽에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요단강 이쪽에도 신천지가 전개된 것을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천국은 주님과 함께 있으면 어디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여기가 하느님 나라인 것을 모르고 지내왔을 뿐입니다. 그때 모세는 지난 슬픔, 원망, 실망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만이 가득 찼으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궁극적 경지, 곧 천국이 아닐까요.

 

우리는 요단강을 먼저 건너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신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화신학교 스승님들, 곧 배덕영 교장님(6.25당시 순교 당하심), 박대선 (전 연세대학교) 총장님, 김학수 장로님(동양화가), 그리고 이승만 목사님 (전 미국장로교 총회장) 등이 “여기는 살 집이 많으니 어서 오라.”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가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 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도 그곳 못지않게 좋으니 어쩝니까! 주님께서 여기 계시고 위로해 주시며 눈물을 닦아주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좀 더 있다가 주님께서 “이젠 강 건너가 함께 살자.”고 하시면 “네, 그럽시다. 꼭 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응답하려고 합니다. 친애하는 S형, 안녕히 계세요.

 

2015년 12월 17일

황태병 씀

 

p.s. 위의 글은 필자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로 <성화동문뉴스지>에 실린 것을 옮긴 것이고 편집자가 일부 수정과 괄호 안 글을 삽입한 것입니다. 필자는 지난 여름 온 가족이 서울에서 “미수 및 자서전 출판 축하회”를 가졌고 지금 의료의 도움 없이 말기 신장병과 투병하고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 독자의 편지: 우간다 에이즈환자 캠프로 떠나면서 - 이희정 성서와문화 2018.03.06 9
76 말에 대하여 - 홍정호 성서와문화 2018.03.06 11
75 종교개혁과 음악개혁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8.03.06 8
74 중국과 기독교(7) - 천주교에 대한 중국의 반응 - 안경덕 성서와문화 2018.03.06 6
73 문학에 비친 복음(10) : 프랑수아 모리아크-<테레즈 데스케루> - 이상범 성서와문화 2018.03.06 10
72 삶과 죽음의 무도회: 사랑을 기억하자 - 장기홍 성서와문화 2018.03.06 0
71 미를 찾는 길가에서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8.03.06 1
70 기독교와 나라사랑(9) - 유관순의 애국정신 - 이종용 성서와문화 2018.03.06 1
69 고난과 부활5 - 한국문학에 나타난 고난과 부활: 김은국의 <순교자>와 박두진의 "묘지송"을 중심으로 - 조신권 성서와문화 2018.03.06 1
68 고난과 부활4 - 닫아 걸린 문 너머 - 김학철 성서와문화 2018.03.06 0
67 고난과 부활3 -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한 예수 - 김득중 성서와문화 2018.03.06 1
66 고난과 부활2 - 고난을 극복하는 길 - 손원영 성서와문화 2018.03.06 0
65 고난과 부활1 - '이사야의 고난의 종'의 사회문화적 배경 - 민영진 성서와문화 2018.03.06 0
64 71호 드리는 말씀 - 이계준 성서와문화 2018.03.06 0
» 황혼의 고백: 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이 - 황태병 성서와문화 2018.02.13 4
62 '가사 그리기'와 마드리갈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8.02.13 0
61 진부령 언저리에서(2) 왕곡마을 - 이반 성서와문화 2018.02.13 2
60 중국과 기독교(6) 마태오 리치의 중국선교2 - 안경덕 성서와문화 2018.02.13 0
59 문학에 비친 복음 (9) 조르즈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 이상범 성서와문화 2018.02.13 1
58 악과 선의 대결과 대화(4) - 장기홍 성서와문화 2018.02.1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