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진부령 언저리에서(2)

왕곡마을

 

 

이반 (숭실대 명예교수, 극작가)

 

 

진부령에서 동쪽으로 향해 내려가면 고성군청 소재지인 간성읍에 이른다. 간성읍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십여 리 남쪽으로 내려가서 죽왕면 소재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1km쯤 서쪽으로 달리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평화로운 호수가 전개된다. 호수는 갈대와 억새에 둘러싸여있고 길 건너 비탈에는 자작나무들이 서있다. 호수는 석호로 작은 민물고기들이 많아 철새와 텃새들이 모여 산다. 오리, 백로, 두루미, 도요새 등이 자태를 뽐낸다. 시베리아에서 따뜻한 남쪽나라 호주까지 날아가던 새도, 또 호주에서 날아오던 새도 이 호수에서 먹이를 먹거나 쉬다 떠난다. 송지호다. 동해안에서 제일 큰 석호는 대진의 화진포이고 다음이 속초의 영랑호, 강릉의 경포호가 세 번째쯤 되는데 송지호 크기가 경포호와 비슷하다. 호수 상류에 마을이 있다.

 

송지호 주위로 산봉우리 다섯 개가 있어 오봉마을이라고 하는데 북쪽에 있는 제일 높고 큰 봉우리가 두백봉이다. 두백봉이 팔을 넓게 벌려 호수의 상류까지 안고 있는데 산비탈과 평지에 기와집들과 초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전체가 국가 지정 민속 문화재다. 기와집이 서른한 채, 부속 초가가 쉰 채나 된다.

 

오봉리는 왕곡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나라나 관에서 계획하고 이룬 촌락이란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언덕이 비스듬히 내려오다 터를 내어주면 그곳에 집을 짓고 실핏줄 같은 도랑이 흐르면 양쪽으로 돌을 밀어내고 물길을 만들어 주어 사랑이나 광을 앉혔다. 마을 북쪽에서 남쪽 송지호까지 내가 흐르는데 냇바닥 주위에는 바위가 널브러져 있는 곳도 있고 잡초 또한 무성하지만 물은 잡초 사이로 길을 내어 잘도 흐른다. 물은 맑고 청결해 피라미 같은 작은 민물고기가 자라고 다슬기도 붙어있다. 물 흐르는 소리 다감하다. 내 옆으로 길게 마을 안길에 뻗어 있다.

 

왕곡마을은 고려 말에 조선건국을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벼슬길을 외면하고 외부와 차단된 개성 남쪽이 두문동에 들어가 모여 살았는데 두문동 일흔두 현 중의 한 사람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간성지역에 낙향하였고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마을에 정착하면서 왕곡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왕곡마을은 내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함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서쪽은 최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학자들은 이 마을 가옥들을 북방식 한옥 마을이라고 한다. 먼 데서 마을 전체를 조망하면 아름답다. 그러나 마을 안에 들어와 가옥을 세밀히 관찰하면 대갓집의 우아한 자태나 남부나 중부지방 기와집의 멋은 보이지 않는다. 가옥구조는 안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내에 수용되어 있으며 부엌에 외양간이 붙어 있는 겹집구조이며 마당이 마을 안길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문도 턱도 없이 개방되어 있다. 반면에 뒷마당으로 가려면 반드시 부엌을 통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뒷담 길에서 내려다보더라도 지붕만 보여 아낙네들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구조다. 짚과 흙을 이겨서 막돌로 쌓은 돌담이 아름답다.

 

우리 전통한옥은 지붕 양쪽 끝이 하늘로 약간 오르고 있어 이웃 나라 가옥과 구별이 되는데 왕곡마을의 기와집은 덤덤히 내려와 있어 태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마을 가옥들의 크기가 크게 차이 나는 집은 보이지 않는다. 대지는 작으면 2·3백 평, 크면 5·6백 평인데 텃밭 치고 농사짓는데 버겁게 느껴질 터인데 이웃 간에 다툼이 보이지 않고 갈등이 없다고 한다.

 

왕곡마을도 한반도의 한쪽 귀퉁이에 있기는 하지만 조선 땅 안에 있으니 외침과 전란을 다 겪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고성산불 등 온갖 난이 다 스쳐가도 큰 재난에 의한 상처는 받지 않았다.

 

6.25 때 함포사격으로 포탄이 떨어진 적이 있으나 불발탄으로 터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게 자랑이었다. 산비탈의 나무는 감나무와 밤나무, 소나무, 전나무가 주종이고 효자각이 두 개나 있다.

 

송지로 둘레길을 거치지 않고 7번 국도에서 바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동구 밖에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로 동학혁명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에 적혀 있는 역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간다.

 

1887년(포덕 28년) 동학이 이 마을에 전파되었다. 마을 동학접주 김영숙을 중심으로 함희연, 함희용, 함영안 등이 주동이 되어 동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889년(포덕 30년) 2월에 천도교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이곳 왕곡마을 김함도 집에 숨어 살면서 동학을 포교하고 제자들을 교화하였다.

1894년 9월에 해월 선생은 동학혁명 기포령(총동원령)이 내렸을 때 양양·거진 지역의 동지들을 모아 크게 궐기하였다. 동학군들은 왕곡마을 함일순 집에 10여 일 간 머물며 전력을 다듬었다.

 

동학사적기념비 건립위원회에서는 이 마을을 민중의 얼이 서린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술은 이념의 감각현상이다. 왕곡마을 가옥의 앉아있는 자세와 구조와 모양은 이 마을에서 산 선조들의 생각과 시대정신의 감각현상이다.

 

왕곡마을에는 대갓집의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우아한 기와집은 보이지 않는다. 섬세하거나 정교한 장인의 솜씨로 건축된 사대부의 가옥도 보이지 않는다. 기교도 없이 덤덤하게 세워진 투박한 기와집들이다. 기둥도 대들보도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렸다. 사람으로 치면 도포 입고 갓 쓴 양반의 외형은 아니다. 관복을 근엄하게 입고 거들먹거리는 관리도 아니다.

 

왕곡마을에 살면서 집을 지은 사람들이 품성을 생각한다. 눈과 비와 바람을 막으면 된다. 세월을 견디면 된다. 견고하고 튼실하면 그뿐이다. 애써 미에 대하여 시샘할 필요가 없다. 무기교의 기교. 완벽에 대한 무관심. 이조의 들판과 비탈에서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결실을 거두는 민초들의 힘 센 팔뚝과 두꺼운 어깨가 느껴진다. 말을 타고 중원을 달리던 고구려 젊은이들의 기상이 춤춘다. 그래서 왕곡마을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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