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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 (9)

조르즈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1948)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이상범 (칼럼니스트, 신학)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프랑스에서는 F. 모리아크, J. 그린과 같은 가톨릭 작가들이 적잖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주제로 작품들을 발표했다. 1차 세계대전의 비극에 “하나님의 죽음”을 읊은 니체의 철학이 맞물리는가 하면 러시아에서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그리스도교에 많은 문제를 던져 주었던 시절이었다.

 

1888년에 태어난 베르나노스는 악마의 유혹에 맞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신부의 모습을 담은 <악마의 태양 아래>(1926)를 써서 주목을 받는다. 이후 1948년에 생을 다할 때까지 복음에 비춘 정의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썼다. 1936년에 발표한 <어는 시골사제의 일기>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인 드라마를 통해서 당시의 신학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그려낸 작가라는 평을 받았고,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대상을 받았다. 1951년,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손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오늘의 영화 애호가들이 잊지 못해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어는 시골 사제의 일기>는 줄거리를 다듬어 내기가 힘든 작품. 막 신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시골교구를 맡게 된 젊은 사제가 교구민들과 사귀며 일구어낸 신앙사색이 일인칭으로 잔잔하게 그려진다.

 

“나의 교구는 권태에 파 먹히고 있었다. 많은 다른 교구들과 마찬가지로……어제 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마을은 온통 11월의 음울한 하늘에 짓눌린 것처럼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위로 연기처럼 비가 떠돌고 있었고……보잘것없는 마을. 그러나 그 마을은 나의 교구. 그러나 나는 그 마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나는 마을이 어둠 속에 빠지며 사라져가는 것을 슬픈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일기체. 두 뺨이 움푹 파인 병약한 젊은 사제가 제대로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마을에는 없었다. 시골 귀족 앙브리쿠르 백작의 저택을 제외하면 집이라고는 회색빛 짐승같이 을씨년스러운 농가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난에 지친 마을 주민들은 교활하면서도 의심이 많아, 아무도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학문이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 사제가 되기에는 너무나 병약했다. 늘 배앓이와 각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그이 말벗이 되어줄 만한 인물은 성격도 환경도 아주 다른 주임사제 드루시와 무신론자이긴 해도 사회의 불의에 분노한 나머지 절망하고 있는 의사 델방드가 고작. 그는 고독했다.

 

그러나 교구는 교구. 그리스도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걸으셨던 것처럼, 그는 사제로서 이 마을의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죄와 비참과 권태까지도 감당해야만 했다.

 

“오늘 아침 나는, 나의 교구, 나의 불쌍한 교구,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 왜냐면 나는 여기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 이 교구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나의 교구! 감동과 사랑이 없다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가 아닌가!”

그의 교구는 젊은 사제의 기도에 얼굴을 돌리고 냉소할 뿐. 그럼에도 그는 연약한 몸을 추슬러가며 집집을 방문했고, 아이들에게는 교리를 가르치고, 청년들에게는 스포츠 모임을 주선하려 했지만, 아무도 교회를 찾아주지 않았다. 상부 기관에서는 오히려 그를 질책했고.

게다가 의사 델방드가 자살해 버린 것이다. 사제는 가혹한 인간의 운명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의사를 자살로부터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의 신앙마저 잃을 뻔했다.

시련은 계속된다. 그가 도와주려 했던 백작부인이 절망 끝에 자살해버린 것이다. 남편인 백작은 가정부를 정부로 두고 있었고, 딸 생탈은 그러한 아버지에게만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반항했다. 오랜 세월 침묵하던 백작부인이 사제에게 심정을 털어놓는다.

 

“한 시간 전만해도 나의 인생은 잘 정돈되어 있어서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신부님이 모든 것을 쓰러뜨렸어요. 모든 걸.”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드리세요.”

“모두가 아니면 아무것도 드리지 않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생겨먹은 여자들이랍니다.”

“전부를 드리세요.”

“아, 신부님은 모르세요. 제가 벌써 고분고분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게 남아 있는 오만함으로도 신부님을 저주할 수 있어요!”

“그 오만함도 나머지와 함께 드리세요. 모든 것을 드리세요.”

 

그녀가 말을 끝냈을 때, 나는 그녀의 시선에서 알지 못할 어떤 빛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백작 집안사람들과 다른 사제들조차도 그녀의 자살을 그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 눈치. 그녀를 너무 엄격하게 다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병이 깊어진 사제는 마을을 떠나 릴로 가서 비참한 인생살이에 허덕이는 무면허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위암이 선고된다. 불치의 병을 이끌고 이번에는 신학교시절의 친구를 찾아간다. 영 타락해버린 친구는 성직자의 꿈을 접고 패병을 앓으면서 여인과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그가 사는 곳, 걸어 다니는 곳이라고는 온통 슬픔과 고민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도 모든 인생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사제이면서도 병자성사마저 받지 못한 채 여자 친구의 돌봄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숨을 거두면서 그는 한 마디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은총이다” 하고.

 

이상이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의 그나마 줄거리라면 줄거리. 독자들에게는 원작에서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읽어주기를 권하고 싶을 뿐이다.

 

작가 베르나노스는 완전히 실패한 한 사제의 인생에서, 무력과 가난을 견디어가는 사이에 어느 틈엔가 현대의 성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작은 교구는 오늘날 슬픔과 탄식으로 차있는 세계의 축도였다.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말했다. “베르나노스는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에서 기적을 표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그린 가련한 사제는 진정한 성인. 우리가 가장 슬퍼해야할 현상도 그의 붓을 거치면 순화되고야 만다.”

 

베르나노스는 현대 가톨릭문학에서 새로운 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가 <어는 시골사제의 일기>에서 보여주는 바, 다른 작가들이 쓰고 싶어 했지만 쓰지 못했던 성인의 고뇌와 심리를 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의 태양 아래에서>에서 보여주듯, 악마를 단순히 악이나 죄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성자와 악마가 피범벅이 되어 싸우는 현실이야말로 베르나노스 문학의 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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