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악(惡)과 선(善)의 대결과 대화 (4)

 

 

장기홍 (경북대 명예교수, 지질학)

 

 

13. 한 괴한이 라스베가스에 있는 한 호텔 고층에서 그 아래 광장(廣場)음악회의 대중을 향해 자동소총을 난사하여 59명이 즉사하고 수백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사상자를 포함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갑작스런 날벼락에 죽음을 면하려고 몸을 땅바닥에 굴복하던 장면을 우리는 미안하게도 앉아서 시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짜 악(‘pure evil')의 짓”이라 개탄했다. 그러나 총기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미국의 법을 고쳐야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없어서 유감이다.

 

미국은 원주민으로부터 땅을 빼앗은 그 총탄 위에 건국된 나라임이 국민의 총기소유의 자유의 이유이다. 대통령마다 총기 생산업자의 로비에 굴복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미국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난사 사건 때 국민을 위로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하고 찬송가를 선창(先唱)했고 대중은 미소하며 따라 불렀다. 나는 감격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데가 있다 싶었다. 용서하시는 하느님 은혜만 믿고 참 회개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범인은 자살을 하여 범행의 원인을 밝히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은 부유한 사람이었다 하니 가난이나 원한 때문은 아니겠다. 그 엄청난 무차별 살상의 이유를 범인 개인의 사정에서 찾는다는 것은 근시안(近視眼)이다. 그의 아버지가 은행 강도의 경력이 있다 하여 범죄형 인간의 짓으로 돌리는 것도 정답(正答)일 수 없다. 소총 수 십 자루를 두고 자동소총으로 변조하는 등 오래고 치밀한 준비과정이 있었다 하니 순간적 착란증 같지도 않다.

 

여하간 그 범행은 이상(異常)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를 이상인(異常人) 곧 ‘미친 사람’이라 친다면 그의 행위는 “미친 사람이 ‘바른 말’ 한다”는 옛말의 실현(實現) 같다. “지금 이 세상이 잘 못되어 있다! 우리 다 같이 죽자”고 절규한 것 아닌지? 인류의 자살행위의 대열에 앞장서서 대장(隊長)이나 된 듯이 우쭐했던 것 아닌가?

 

그의 행위는 “지금 우리 삶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니 차라리 다 같이 죽자” 하는 강요 같다. 비정상이고 무책임한 괴한에게 그렇게 또렷한 의식이 있었을 리는 없지만 “미친 사람이 바른 말을 한다”는 옛말은 이상한 주파수의 영감(靈感)을 포착하는 엉뚱한 두뇌의 안테나가 있음을 우리에게 귀띔해 준다.

 

범행이 라스 베가스에서 있었음은 하나의 계시이다. 도박, 타락, 환락과 격투, 복싱 등 돈 노름의 현대문명의 타락상(相)이 다 모인 곳이 아니던가! “이대로는 살 가치가 없다, 사는 의미가 없다”는 충동이 그를 동원했을 것이다.

 

총기의 존재 자체가 악한 것이다. 화약은 총기와 폭탄의 출발점이니 화약도 고약한 것이다.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노벨이 제정한 노벨상을 온 세계 지성들이 수상(受賞)을 노려 야단법석이지만 다이나마이트가 환경파괴의 주범이고 보면 어딘가 씁쓸한 데가 있다. 너무 발명을 많이 하고 문명이 지나친 것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문명 자체가 문제이다. 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제국주의와 침략과 노예상업과 원주민 약탈! 아편전쟁과 난징학살도 같은 것이다. 악을 앞세워 문명을 일으켜온 역사 자체가 죄가 많다. 이번 사건은 문명 자체의 미친 아우성 같다.

 

14. 비록 비극이 잇따르더라도 인류의 장대(壯大)한 드라마는 대단하고 오묘하다. 인류가 없었더라면 대우주라는 우리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존재는 비록 그가 존재해도 그를 바라보고 알아볼 우리가 없었을 것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알고 보면 대단한 존재이다.

 

삶이라는 것 이상의 신비는 없다. 이 우주는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우리는 알아내었고 그것이 조립됨에 따라 마침내 삶이 펼쳐졌음을 안다. 그리고 생물이 사는 동안 마침내 사람이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남녀가 있음도 오묘하고 아이가 태어나 자람도 신비롭다. 그 몸은 물질로 되었으니 우리는 물질 속에 신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질처럼 신비로운 것은 없다. 그 안에 모든 장차 펼쳐질 진화가, 진화의 고층 구조가 다 점지되어 있음이다.

 

사랑도 신비롭고 기쁨도 슬픔도 죽음도 오묘하다. 때로는 병들고 참혹함이 있지만 잠시의 건강이라도 건강은 오묘하며 일종의 기적이다. 어찌 물질의 조합(組合)에서 DNA를 거쳐 두뇌의 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두뇌가 우리 어머니요 아버지인 하느님을 깨닫기까지 존재의 불이 밝혀지고 존재의 꽃이 피어서 의식(意識)과 반성과 인식의 신비에 이르렀는지? 우리가 그런 최고봉에 선 것은 감사에 감사할 일이요 오묘함에 탄복할 일이다. 깨달음이 있다는 것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가?

 

물질과 정신과 깨달음은 서로 교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이 모두가 대견하다. 인간을 포함하여 존재 자체가 신비롭다. 그 존재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자연적 우주경영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추진력이다. 불완전하여 진행이 있다. 오류가 있어서 개선이 있지, 완전하다면 그 순간 정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행성 존재를 생명이라 본다면 불완전함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의 하심이 온전치 못함에 대해 불평할 일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우리가 아버지의 못다 하심을 보충하고 치료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할 일(善)을 남겨 놓기 위해 악과 같은 불완전성이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요 윤리이다. 그것이 우리의 효자노릇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가장 첨단에 선 그의 대리자(代理者)이므로 우리는 사명으로서의 효도를 자각해야 한다. 악과 같은 하느님의 불완전성의 행사는 인간에게 사명을 남기기 위해서다. 자식들이 잘 되게 하기 위한 하느님은 짐짓 페인트 모션(faint motion)을 취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그이를 위해 보완(補完)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 사명 있음이 우리의 희망이다.

 

15. 지구상 최첨단 문명국(들)에서 무차별 총격사건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특히 학교교정에서 순진 무고한 학생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참으로 괴이한 범죄가 일어나곤 한다. 이유 없는 범죄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 바닥에 깔린 무의식적 의미 곧 계시가 무엇인가? 죄 없는 초중등학교 아이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볼 때는 “커서 죄 많은 인간들이 되느니 차라리 일찍 죽어 버려라!” 하는 미친 절규 같기도 하고,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 현황이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총기소유를 금하기 어렵다면 우리나 유엔이 나서서 세계의 총기사용을 금해야 한다. 약소국가가 그 일을 지도할 자격이 있다. 세계적 여론을 일으켜 총기사용을 금해야 한다.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는 말할 것도 없이 자제(自制)시켜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먼 이상이다 하고 가벼이 알지 모르나 그런 생각 자체가 걸림돌이다. 현실의 잘못 된 방향을 우리가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 세상은 선악의 싸움터라는 생각은 수천 년 전부터 생겨났다. 그러다가 BC 7세기 경에 조로아스터가 정립(定立)했다. 그들의 직관은 옳았다. 이 세상이 악하므로 인간이 할 일은 선(善)밖에 없다. 악을 당연(當然)으로 알고 니체처럼 부르짖으면 안 된다. 그도 오래 살았더라면 깨닫고 선(善)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사람은 선을 행하고 창조함으로써 하느님께 효자가 된다.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그 가르침이 있기 위해 무고한 학동(學童)들이 교정에서 쓰러지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 좁은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에서냐고 너무 국적만을 묻지 말자. 모두가 나서서 총기를 규제하는 운동을 이끌고 참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너무 하느님 관용과 은혜를 믿고 미루어서는 안 된다.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면 안 된다. 희망은 사람이 창조할 것, 하느님은 그 본능을 주셨다. 2차 대전 때 다 망가진 도시가 지금은 복원되어 있고 더 앞으로 나아갔다. 본능적으로 그 일(희망제조)을 하게 되어 있다. 본능과 본성 속에 희망이 내장(內藏)되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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