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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와 함께 읽는 성서 이야기 (7) – 만조의 시각

 

 

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종교철학)

 

 

엔도 슈사쿠의 일생은 병마(病魔)와의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평생을 입원과 수술, 요양 등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대학시절 폐를 다쳐서 각혈로부터 시작된 그의 병과의 투쟁은 프랑스 유학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엔도가 1965년에 발표한 <만조의 시각>(満潮の時刻)은 이러한 엔도의 병상 체험이 거의 저자 자신의 등신대의 모습 그대로 저술된 작품입니다.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전중파(戰中派)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아카시(明石)라는 중년의 남자입니다. (전중파란 젊은 시절을 2차 대전의 와중에서 보내야 했던 세대를 총칭하는 이름입니다.) 

그는 중학교 동창회의 자리에서 각혈을 하게 되었을 때, 전쟁 중 늑막염을 앓아 징병이 연기되었고, 그대로 종전을 맞이해서 군대에 가지 않았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다음날, 진찰을 받은 결과 1년 이상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음을 알게 된 그는, 전장에서 죽어간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졌던 빚을 조금은 갚은 듯 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이렇게 병원에 와 보니, 인간의 병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 것 같군요”라고 말하는 아카시는 “도대체 여기서 나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퇴원하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자 합니다. 

그것은 병원에서 맡게 되는 여러 냄새, 즉 환자의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인간의 죽음의 냄새가 그의 영혼에 불러일으키는 파문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기도 하였습니다. 

수술은 두 번으로도 끝나지 않았고, 다시 세 번째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카시의 병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세 번째의 수술은 집도의 조차도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절망에 사로잡힐 때마다 아카시는 병원의 옥상에 올라가서 눈 아래에 펼쳐지는 풍경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려고 합니다. 그 풍경 속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남편의 곁에서 그 손을 잡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창이 있고, 또 태어나면서도부터 항문이 없는 소년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아카시에게는 이러한 풍경들이 참으로 “엄숙한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풍경들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엄숙한” 물음을 아카시에 집요하게 던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카시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지금까지 건강하던 때는 간과해버렸던 것, 보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던 것,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그 풍경과 사물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아카시가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사물과 인간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과 사라져 가는 모든 것, 버림을 받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았던 때의 경험을 어느 환자가 말했을 때 아카시는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낡아버린 몸을 열심히 움직여주었던 그 낡은 차가 마치 나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팔고나서 돌아올 때는 묘하게 마음이 괴롭고 슬프더구만.”

“사물과 과 인간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내가 어느 날 사 온 구관조에 의해서 한층 더 깊어져 갑니다. 아카시도 그 말 못하는 새에게만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새 앞에서만은 아카시도 소리 내서 울 수 있었습니다. 왠지 그 새의 눈은 죽은 주인의 곁을 지니는 개의 눈이나 아카시가 어렸을 때 자기 손바닥 안에서 죽어 간 십자매의 눈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카시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그 눈은 모두 슬픔에 가득 찬 채 허공의 일점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수술은 어렵게 진행되었지만 용케도 성공하였고, 퇴원한 아카시는 나가사키를 방문합니다. 입원 중 그는 꿈에서 왠지 후미에(踏絵)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후미에란 16세기 일본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기리시단(切支丹)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배교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던 도구입니다. 그리스도나 성모의 그림이 새겨진 동판(銅板)을 발로 밟으면 신앙을 버린 것으로 간주해서 살려주었고, 거부하면 처형시키던, 참으로 무서운 장면에 사용되던 도구입니다. 

나가사키에서 아카시는 “기리시단의 감옥”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고, 거기서 아카시는 저 옛날 배교인가 죽음인가를 선택할 것을 강요당하던 사람들과 자신의 관계를 의식하게 됩니다. “병원이 감옥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감옥 안에 갇혀서 밤낮 자신의 죽음, 타인의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던 그들 신도들의 눈에 외계의 사물들은 어떻게 비치었을까”하는 문제에 아카시의 마음이 끌렸던 것입니다. 

이윽고 아카시가 후미에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거기서 그는 자신의 눈이 구관조의 눈이나 개의 눈과 겹치고, 또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는, 후미에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눈과 중첩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눈이 있다. 병원 옥상의 난간에 기대서서 저물어 가는 거리와 입원실의 창을 보고 있던 자신의 눈, 구관조의 눈, 개의 눈, 이 눈들은 지금 후미에 속에 있는 그 눈과 겹쳐져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1966년, 즉 <만조의 시각>이 발표된 다음 해에 출판된 <침묵>은 이러한 아카시의, 아니 엔도 자신의 물음에의 대답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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