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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8.02.13 11:19 조회 수 : 1

하늘나라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

 

 

하늘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것이 늘 궁금하였다. 책도 보고 묻기도 하고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아무도 나에게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옛날 예수님 살아계실 때에도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도 하늘나라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는 대목이 성서에 여러 군데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때마다 비유로 말씀하셨지 저기 있다 이러이러 하다고 그런 설명을 붙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했는데 하늘나라라 하는 데에는 하느님이 늘 계실 것 같았다. 책에 보면 하느님은 있지 않은 데가 없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고 무소부재(無所不在)라 하였다. 아주 옛날 중국 사람들도 도(道)는 있지 않은 데가 없고 똥 속에도 있고 오줌 속에도 있다 하였다. 그 말을 풀어보면 하느님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내 앞에도 있고, 내 안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고, 풀 속에도 있고, 바람 속에도 있어야 옳다. 여기 내 앞에 언제나 계신 하느님을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지 저 우주 한편에 어떤 정신적인 공간이 있어가지고 거기 그런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 같은 것이다.

 

이성(理性)의 눈으로 감각의 눈으로는 안 보이는 하느님, 그러니 이렇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보다도 더 무슨 시늉이 없었다.

 

오래전의 일이었다. 어떤 책에서 본 일인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 속에 요한복음 서두에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라고 쓰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너무도 놀라서 즉시로 성경책을 꺼내서 그 대목을 확인 하였다.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이천 년 전에 하느님을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천 년 후라 해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여전히 없을 것인데 내가 무지해서 남들은 다 보고 있는데 나만 못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남 몰래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고 하늘나라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세도 못 보았고 동서 간에 성현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하늘나라를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었다. 파스칼이 그랬다고 한다. 갔다 온 사람이 없는데 난들 어떻게 알겠는가.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것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사방으로 헤맨 것이다. 이제는 그런 허망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른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고 아무도 하늘나라를 본 사람은 없다.

 

연전에 어떤 친구가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는데 옛날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본 것을 기록한 책이라 하였다. 궁금하던 차에 읽었는데 중간쯤까지 보다가 그만 두었다. 왜 그만 두었느냐하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그 복장하며 이 세상과 너무도 비슷해서 이게 아닐 텐데 하고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천당이란 데는 이 세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생각 되는 것이었다. 쉬운 예로 우리가 무얼 보면서 ‘야! 참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 느낌인데 무슨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내가 1971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아테네에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갔을 때 크게 감격한 일이 있었다. 이천 오백 년 전 만든 돌기둥들이 서 있는데 그게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다. 아름답다 아름답다하면서 그야말로 탄복하면서 그 밑을 걸어 다녔다. 그 느낌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외마디 ‘아름답다’라는 감탄사 하나뿐이다. 인도에 가서 타지마할을 볼 때도 그랬다. 그 희한한 감격, 기쁨, 일종의 황홀함, 그런 게 있는데 그것을 설명할 말이 없는 것이다. 더 쉬운 얘기로 꿈에서 본 것도 말로 하려면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있기는 분명히 있는데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한 번은 UFO 얘기를 텔레비전에서 하는 시간인데 강원도에 산다는 어떤 청년이 나왔다. 자기는 분명히 무언가 보았는데 그것을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려고 하면 자기보고 미쳤다고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은 분명히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본 사람일 것이다 그랬다.

 

좌뇌(左腦)는 이성 활동을 하는 데이고 우뇌(右腦)는 감성. 영성 그런 활동을 한다고 한다. 좌뇌가 하는 일은 우리가 설명이 가능한 것이고 우뇌가 하는 일은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 기분 나쁘다는 것, 이것은 언어로 풀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가 어떤 스님한테 이런 물음을 하였다. 좌선하다가 삼매(三昧)에 든다고 하는데 삼매에 들면 무엇이 보입니까. 그랬더니 그 스님 말씀이 무념무상이다 그랬다. 그러기에 내친 김에 견성(見性)하면 무엇이 보이나요 그랬다. 해탈이지! 하고 얘기는 끝났다. 그 모두가 우뇌에서 일어나는 일일 텐데 우문에 현답이라 할까. 세상에는 분명히 있는데 설명이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일은 우뇌가 하는 일인 것 같다. 예술 활동이란 것이 그런 일인 것이다. 내가 하루 일곱 시간을 서서 일을 하는데 하나도 피로하지 않고 지루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대단히 좋다. 그런데 그 기분이랄까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집중한 곳으로 들어가서 반쯤은 초월하는 것이다. 누가 날 보고 당신 왜 일을 하시오 하고 물으면 그 곳이 좋아서한다 그럴 것이다.

 

하늘나라는 우뇌를 통해서야 보일 것 같다. 좌뇌의 죽음, 그 활동이 중단 되었을 때이다. 하느님은 안 보이는 분이지만 우뇌를 통해서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았어도 꿈속에서 본 것처럼 설명하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시고 그 분은 내 안에도 있고 내가 그 분 안에도 있다. 하느님 계신 데가 하늘나라일 텐데 하느님과 함께라면 여기가 하늘나라 아닌가. 하느님은 아픈 사람과 함께 계시며 전쟁 속에도 있고 산자와 함께하신다면 죽은 자와도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하늘나라 아닌 데가 어디 있으랴. 빛이고 기쁨이며 사랑이며 생명. 그것이 넘치는 곳. 날빛보다 더 밝은 곳. 시간이 초절(超絶)하여 영원만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여기 지금인데 어디를 찾아 헤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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