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한국 근대사의 주역 윤치호

 

 

김소윤 (감독, 윤치호 기념사업회 이사장)

 

 

좌웅(佐翁) 윤치호(尹致昊, 1865-1945)는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에서 해평 윤씨 웅렬(雄烈)의 장남으로 출생, 한국 근대사와 한국 기독교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그만큼 화려하고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그에게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무수히 많다.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 한국 최초의 영어 통역관, 한국 최초의 미국 남감리교회 교인, 최초로 찬송가를 편찬한 한국인, 최초로 자전거를 탄 한국인, 원산 감리 재직 중 한국 최초로 능금 재배를 시작한 인물, YMCA 총무로 재직 중 한국 최초로 실내 체육관을 세운 인물, 이와 같이 그는 늘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학부협판(學部協辦), 외부협판(外部協辦), 독립협회 회장, 대한 자강(自强)회 회장, 한영서원(지금의 송도고등학교) 창설 및 교장, 평양 대성학교 교장, 청년학우회 회장, YMCA 총무 및 회장, 조선 감리회 총리원 이사 및 최초의 재무국장(사무국장), 흥업구락부 부장, 만주동포문제 협의회 회장, 조선체육회 회장, 소년척후단 조선총연맹회 회장 등 그의 주요 이력은 수없이 많다.

 

개화파 무관이었던 그의 부친 윤웅렬의 주선으로 1881년 조선견문단(朝鮮見聞團)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당시 일본 최고의 개화사상가 나카무라 마사나오가 설립한 도진사(同人社)에 입학해 유길준(兪吉濬)과 함께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다.

 

윤치호는 약 2년 동안 나카무라 마사나오로부터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당시 일본 체류 중인 김옥균 등과의 접촉을 통해 개화사상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특히 김옥균의 권유로, 1883년 약 4개월 동안 네덜란드 외교관과 프랑스 건축가로부터 영어를 배웠는데 굉장이 실력이 우수하여 그해 5월 초대 주조선 미공사 푸트(L.H.Foote)장군의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귀국, 조선 정부의 주사로 임명되어, 국내 정치 무대에 서게 된다. 결국 그는 한국 최초로 영어를 구사하는 인물이 되어,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에 깊이 관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순조롭던 윤치호의 인생에 ‘급제동’이 걸렸다. 1884년에 발생한 갑신정변이 그의 삶을 완전히 굴절시키고 만다. 사실 그는 직접 정변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미국 공사의 통역관에다가 김옥균 등과의 친분으로 인해 개화파로 지목되고 있었고, 그의 부친 윤웅렬이 ‘혁명내각’의 병조판서로 내정되어 있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되자, 국내에서는 더 이상 무사하기 힘들었으므로, 결국 1885년 그는 푸트 공사의 추천으로 상하이 주재 미국 영사 스탈(Stahl) 장군을 찾아갔고, 그의 소개로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가 운영하는 중서서원(中西書院)에 입학, 7학기 동안 영어, 수학 등을 교육받았다. 특히 1887년 4월 3일 본넬(W.B. Bonnel) 교수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한국 최초의 미 남감리회 신자가 되는데, 이는 훗날 그가 한국 감리교회의 거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 그를 사용하셨던 것이다.

 

중서서원 알렌(Y.J. Allen)박사의 소개로 1888년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미 남감리회 소속의 밴더빌트 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1891년에는 미국 에모리 대학에 입학하여 인문, 사회 분야의 제반 학문을 두루 공부했다. 그는 서재필, 유길준 등과 함께 한국의 ‘제1세대’ 미국 유학생이 된 것이다.

 

결국 윤치호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는 일본, 중국, 미국 등 3개국에서 총 11년 동안 선진 학문을 수학했다. 영어를 완벽하게 익히고, 신학, 인문학 등 제반 학문을 두루 공부한 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의 최초의 미 남감리회 신자가 된 것도 크나큰 은총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과 미국에서 직접 생활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근대를 체험함으로써 세계사의 흐름인 과학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성장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시대의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체득한 것이 그이 일생을 좌우하는 계기가 되었다.

 

윤치호는 나라를 지키고, 우리나라가 독립 국가로 존립하려면, 교육과 계몽운동을 통하여 힘을 기루어야 한다하여 자강운동(自强運動)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송도고보(지금의 송도학교)를 세웠고, 대성학교 교장도 역임하게 된다. 특히 그의 남감리교회를 통해 세운 학교가 배화학교, 한영서원(지금의 송도학교), 원산 루씨학교, 호수돈 학교, 개성 미리흠 영어학교, 개성 고려여학교, 협성신학교 등 무려 10여개 학교를 세웠다.

 

현재 미 에모리대학내 윤치호 가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윤치호의 일기(日記)는 1883년부터 해방되기 직전까지 장장 60년 동안 거의 매일 기록한 것으로, 이것이 한국 개화기의 근대사를 함축해 놓은 것과 같아서, 한국 역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윤치호는 미국 유학 중 남감리회 선교사를 요청하여 남감리회 선교사가 남녀 125명이나 들어와 선교하여, 윤치호가 세운 남감리교회는 고양교회, 광희문교회, 종교교회, 석교교회, 자교교회, 천안 하늘문교회(전 천안 제일교회), 아산 신항리교회, 수표교회, 천안 하늘중앙교회 등 무려 아홉 개 교회가 된다. 윤치호는 그의 일기장에서 이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기독교 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역설하고 있다.

 

더욱이 윤치호는 애국가(愛國歌)를 작사하여 젊은 청소년들에게 애국충정을 일깨웠으며, 한국 최초의 찬미가를 제작하여 애국가를 찬미가 제14장에 수록하였다. 애국가를 작사하여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의 곡에 맞추어 애창하였다. 이 애국가는 1897년 조선개국 505주년 기념식을 위해 독립협회 서재필 등의 의뢰로 배재학당 학생들의 찬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1904년 영국 군함이 최초로 제물포항에 입항할 때, 양쪽 국가를 군악대가 연주해야 한다하였으나, 당시 조선은 국가(國歌)가 없어 고종황제가 외부협판이었던 윤치호에게 국가를 제정하라는 분부를 내려, 윤치호의 애국가를 스코틀랜드 민요곡에 맞추어 연주하였다. 독립문 준공식에서도 서재필의 요구로 이 애국가를 불렀으며(배제학당 설립자 아펜젤러가 소장한 문서에 수록), 그 후 미주지역이나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이 애국가를 애국 충정을 앙양하기 위해 즐겨 불렀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이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부르게 되었는데, 후에 안익태 의해 지금의 애국가 곡으로 작곡하게 된 것이다.

 

민족지도자들은 대부분 망명 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무렵, 국내에서는 오직 윤치호만이 남아 민족지도자로 고분분투(孤憤奮鬪)하였다. 그의 일기에 의하면 자신이 망명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가 망명하지 않은 이유는 매우 가정적이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망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일기장에 언급하고 있다. 결국 그는 일제에 의해 이용당하여 친일의 수치를 안고 말았지만, 그의 본심은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를 애국가를 통해서나, 그가 한국 최초로 제작한 찬미가를 보면 곳곳에 애국 충정이 넘치고 있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내용보다 애국충정의 노래가 더 많이 언급하였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윤치호는 항상 한국 근대사 격동의 현장 및 기독교 복음의 현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대로 한국 근대사의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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