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예수 탄생 설화의 문화-역사적 배경

 

 

정승우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목, 신약학)

 

 

아마도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일 것이다. 해마다 성탄절 시즌이 되면 이 이야기는 수많은 캐롤송과 크리스마스 상품 광고 이미지 속에서 재현되며, 유통된다. 대중적인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는, 마태와 누가의 이야기를 마구 뒤섞어 낭만적인 동화로 변질된다. 마구간의 아기 예수와 동방박사, 그리고 들판의 목자들의 에피소드가 다분히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면으로 채색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소비하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다분히 자의적이며, 심지어는 마태와 누가가 전하고 있는 예수 탄생이야기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마태와 누가의 예수탄생 설화는 거부된 메시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태에서 아기 예수는 이방인들인 동방박사에 의해 먼저 발견되고, 이 소식을 들은 헤롯대왕은 영아 학살령을 내린다. 누가에서 예수탄생의 의미가 당시 유대사회에서 변방으로 쫓겨난 목자, 여성 등의 시각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 탄생 설화의 의미와 뜻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마태와 누가복음서 기자들이 처해있던 1세기 그레코-로만의 문화-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전한 예수 탄생설화는 역사적으로 입증 가능한 사실성(factuality)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마태와 누가가 전한 예수 탄생 이야기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비유적인 의미와 뜻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독일 학자들은 복음서가 예수에 관한 초대교회의 다양한 구전(oral tradition)의 결집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예수 탄생설화가 비교적 뒤늦게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수난 이야기(Passion story)가 가장 일찍 형성되었고, 다음에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덧붙여지면서, 복음서의 서사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의 탄생 설화가 가장 나중에 첨가되었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와 누가보다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서에 예수의 탄생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마가복음을 토대로 자신들의 복음서를 작성한 마태와 누가는 시중에서 떠도는 예수의 탄생설화를 자신들의 복음서에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마태와 누가는 어디에서 자신들의 탄생 에피소드를 수집하였을까? 우선 마태의 이야기는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의 탄생 이야기와 유사하다. 아기 예수와 모세 둘 다 폭군의 영아학살 명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세와 예수의 탄생은 파라오와 헤롯과 같은 권력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비해, 동방박사와 목자들과 같은 사회적 주변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된다. 누가복음에서 마리아는 예수 탄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누가 1:51-52).

 

마태의 탄생설화는 남성들이 주도권을 지니고 진행된다. 이를 테면, 천사를 통해,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 받아들인다. 동방박사들이 예수 탄생을 별을 보고 알아차리고, 헤롯대왕에게 알린다. 헤롯의 위협을 받은 요셉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한다. 이 과정에서 5차례 걸친 꿈과 예언이 남성들에 의해서 제시된다. 마태복음에서 다섯이란 숫자는 의미심장하게 사용된다. 마태복음은 다섯 개의 예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는데, 1) 산상설교(5-7장), 2) 선교에 관한 가르침 (10-11장), 3) 비유 (13장), 4)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18-19장), 5) 종말에 관한 가르침 (24-25장) 등이다. 산상설교 중에서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6개의 새로운 가르침을 선포 한다 (마태 5:21-48). 이러한 의도 속에서 마태는 예수를 새로운 모세, 아니 모세를 능가하는 메시야로 제시하고자 한다. 마태의 탄생설화도 이러한 모세 유형론에 입각하여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마태의 탄생이야기는 구약적인, 특히 모세오경의 영향 속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누가의 탄생설화는 마태와는 사뭇 다르다. 누가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주도권을 지니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태에는 없는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등장하며, 여성 예언자 안나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누가복음은 전반적으로 다른 복음서보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령, 누가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10:38-42), 나인 성 과부 (7:11-16), 동전을 찾은 여인 (15:4-10),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과부(18:1-8)등과 같은 적극적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누가복음의 특징적인 모습이 탄생설화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누가에만 등장하는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이다. 이 찬가 속에서, 마리아는 예수 탄생의 의미를 세상질서의 전복과 관련해서 노래한다. 즉 보잘 것 없는 것을 높이시고, 권세 있는 것들을 내치시는 하나님의 변혁을,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누가에게 있어 예수의 탄생은 새로운 세상의 개막과 관련이 있다. 한 밤의 추운 들판에서 일하던 목자들이 예수의 탄생을 먼저 고지 받고, 아무런 사회적 권리도 없던 여성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는 세상! 이것이 누가가 설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인 것이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인물은 헬라어에 능통한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예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를 배경으로 서술할 만큼 그레코-로만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당시 그레코-로만의 무수한 영웅들의 탄생설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작성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숭고미학으로 덧칠된 그리스-로마 영웅들의 탄생 이야기를 외면하고, 낮고 천한 곳으로 오신 메시야를 강조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폭력과 권력으로 점철된 그레코-로만의 영웅보다는, 나눔과 섬김의 예수가 새로운 세상의 이정표가 되기를 염원한 누가의 신념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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