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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독교문학 (6)] 엔도 슈사쿠와 함께 읽는 성서

 

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종교철학)

 

엔도 슈사쿠의 소설 중에 <사무라이>()라고 하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오래 전에 <위대한 몰락>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아마도 번역하신 분이 그 내용에 중점을 두고자 그런 제목을 택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되지만, 그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절판이 되어서 구입할 수 없는데, 어서 본문에 더 충실한 번역본이 출판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소설은 센다이한(仙台藩)의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1636)의 명령을 받아서 유럽에 파견되었던 케이쵸유럽사절[慶長遣歐使節]의 한 사람인 하세쿠라 츠네나가(支倉常長 1571-1622)를 모델로 하면서 작가 엔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츠네나가는 1613, 당시의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건조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서 멕시코를 횡단한 후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중심부인 로마에까지 갔다가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험난한 여행에 나섰던 것은 노베스파니아(지금의 멕시코)나 로마와 직접 통상하기를 바랐던 마사무네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사무네는 당시의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로부터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부하들을 먼 외국에까지 파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마사무네가 가지고 있던 숨은 목적은 대양을 건너는 서구의 항해술을 배우고자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세쿠라라는 사나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상부의 영문도 모를 명령에 의해서 지금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험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본에 다시 돌아 온 것은 1620년이었으니, 하세쿠라는 실로 7년이라는 긴 세월을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받았던 명령이었던 통상 교섭은 실패로 끝났으므로, 그는 큰 실의에 찬 채 고향에 돌아왔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엔도는 이 하세쿠라 쯔네나가의 삶을 모델로 하면서 <사무라이>의 주인공 하세쿠라 로쿠에몬(長谷倉六右衛門)을 탄생시켰습니다.

실제의 모델인 츠네나가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로쿠에몬도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임무를 더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였을 뿐, 그에게 신앙심이 있어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에서 세례를 받을 때의 모습을 엔도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뜻도 모르는 라틴어의 기도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사무라이는 제단 배후의 큰 십자가를 직시하고 그곳에 못 박혀 있는 그 여윈 사나이와 마주보게 되었다.

 

나는 말이야 그대를 예배할 생각은 없어.”

사무라이는 눈을 끔벅거리며 미안한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무엇 때문에 남반인들은 너를 숭앙하는지 나는 그 까닭조차 잘 몰라. 그대는 인간의 죄업을 짊어지고 죽었다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편해졌다고 생각지는 않아.”

 

그런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던 하세쿠라와 로쿠에몬에게서 엔도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읽어내게 됩니다. 사실 엔도가 <사무라이>를 집필하였던 근본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조금씩 하세쿠라의 자료를 찾아보는 가운데, 이것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세쿠라는 바로 나다라고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중략]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어렸을 적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발적인 의지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저에게도 강제로 교회에 가도록 하였으므로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만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형식만이었기 때문에 버리면 그뿐이지만, 버리지 않고 아니, 버리지 않았다기보다 버릴 수 없는 채로 오늘날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형식만의 것이었던 것이, 정말 조그마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형식만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세쿠라도 단지 형식만으로 세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만년의 모습을 보면, 역시 그 세례는 아무래도 형식만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 형식만의 세례를 받았던 로쿠에몬에게서 엔도는 아무런 신앙의 자각 없이 어머니의 말을 따라서 세례를 받았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로쿠에몬이 받았던 세례는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크게 흔들게 됩니다. 그가 다시 일본에 돌아와 보니 일본은 그가 배를 타고 유럽으로 출발할 때와는 정반대로 기독교선교가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그는 영주에게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쿠에몬은 금지된 신앙을 소유한 자라고 지목을 받아 처형을 기다리는 몸이 되고 맙니다. 기묘한 운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삶의 최후의 장면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해왔던 그리스도와 자신이 점점 닮아간다고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옆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고뇌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들과 함께 우시고, 그분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천국에서 웃게 될 것이다.

그분이라는 한 것은, 양손을 벌려 십자가에 달려서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바짝 마른 사나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무라이는 눈을 감고서 매일 밤 스페인의 숙소에서 벽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던 사나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은 왜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슬픈 표정의 이 사나이가 이로리(いろり) 곁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동기에 의한 것일 것입니다. 시간적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역사적 우연성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엔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신은 그러한 우연성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다가오셔서는 절대로 우리들로부터 떠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사무라이>에 등장하는 한 사제의 입을 빌려서 엔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신비는 사람의 의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 만일 어떤 불순한 동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서 주님을 이용하려고 하였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결코 그들을 떠나가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아무런 신앙의 결단도 없이 우연히 받게 되었던 세례로 말미암아 엔도는 평생 번민하였습니. 그러나 그 번민 자체가 곧 신의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니, 위의 사제의 말은 곧 엔도 자신의 크레도(credo)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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