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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 (8)]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상범 (칼럼니스트, 신학)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등으로 명성을 얻은 레프 톨스토이(1828-1910)40대 끝자락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익히며 성서연구를 해보지만, 부활, 처녀탄생, 재림과 같은 전통적인 교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고백으로 러시아정교회와 맞서기도 했다. 이후 10년 가까운 몸부림으로 얻어낸 회심 끝에, 일구어낸 작품이 <이반 일리노비치의 죽음>(1886)이라고들 이해하고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법률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판사가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린다. 성공한 관리들이 누릴 수 있는 기분 좋은나날을 만끽하던 주인공이 어쭙잖은 사고로 불치의 병을 앓게 될 줄이야. 육체적 고통 못지않은 집착과 질투가 그를 괴롭히지만, 죽음의 공포와 고독을 견디며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해맑은 달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장례에서 시작된다. 45세로 생을 마친 주인공은 동료 판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그의 부음을 듣고 모여든 조문객 모두가 맨 먼저 생각한 것은 이 사나이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에 대해서였다. 즉 자신의 이동 혹은 진급에 대한 관심이었다.”

부음을 접한 모든 사람 심중에는 죽은 것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라는, 늘 그랬던 것과 같은 안도와 기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는걸.’ 각자는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한사람으로, 고인에게는 여러 모로 신세를 지고 있다고 자인하는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조문을 마치자 그 길로 카드놀이 하러간다. 바로 전에는 고인의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죽었으니 국고에서 많은 돈을 받아낼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 상담을 받았고

 

이어서 이야기는 이반 일리치의 일생을 회고한다. 관리의 차남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영리하고 활력이 넘치며 예의바른 인간이란 평가를 받는다. 법과에 진학한 그에게는 젊어서부터 마치 파리가 빛을 사모하듯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끌려가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졸업 후 지방 관리를 거쳐 예비판사로 승진하면서, 아내를 맞아 행복한 부부 생활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부부갈등도 경험하지만, 그러는 틈에 승진에 열정을 쏟아 그 열매가 그 틈을 채워주었다. 수입이 늘어나고 여유가 생기자 좋은 집에 좋은 가구를 들여놓으려던 참에, 사고가 발생한다. 열정적으로 집수리를 지휘하다가 사닥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 것이다. 곧 낫겠지 여겼던 상처가…….

 

이야기의 중간부분(4)에서는 병고에 시달리다 죽음을 의식하게 되는 주인공이 고독과 싸우는 모습이 신랄하게 묘사된다. 매사에 짜증스러워하는 남편을 못마땅해 하는 부인과의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아내도 자신을 억제하는 법을 익혀 가는데……. “ 그 억제를 자신의 위대한 공적으로 여겼다. 남편의 짜증이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결론은 그녀 자신을 연민하게 했다. 자신이 가엽다고 생각할수록 남편이 미워지는 것을. 남편이 죽어주었으면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곧 깨닫는다. 그것은 봉급이 들어오지 않게 되는 일이었기에.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녀는 미움 때문에 자신을 가눌 수 없어 하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가족도 동료도 자신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애써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면서 고독이 더해갔다. 아픔에 고독이 더해지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된다.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밤은, 일직이 볼 수 없던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나게 했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5-6장에서, 주인공은 병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 대신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이 진정 옳았던가 하고 묻게 되는데……이제는 추구해오던 세속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고 물어본다. 인생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이 뚜렷해질수록 그 물음은 뚜렷해지고 커지는 것이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려오고 있었던 것 같다. 세속적인 시각으로는 오르는 것이었지만, 오른 만큼 발밑으로는 생명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12)에서, 주인공은 숨을 거두지만, 직전에 빛을 본다. 그리고 죽음은 없다하고 깨닫는다.

 

그는 느낀다. 자신을 괴롭히며 몸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던 그 무엇이 갑자기 나가려 하는 것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으로, 한꺼번에 나가려 하고 있다. 아내와 자식이 불쌍하다……. 그들을 이 괴로움에서 구원하면 자신도 괴로움을 면할 수 있는 것을.

아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런데 아픔은? 아픔이 어디로 갔지? 아픔아, 너는 어디에 있지?....., 아픔 따위는 내버려 두려무나

그러면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오래도록 익숙해진 죽음의 공포를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다. “죽음은 어디에? 죽음은 무엇인가? 공포가 없는 것은 죽음이 없기 때문인 것을…….죽음 대신 빛이 있다. 그래 이것이야! , 얼마나 기쁜 일인가! “

 

사흘 동안,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떠밀려, 검은 자루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을 긍정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완전히 죽음의 구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 숨이 끊어지기 두 시간 전, 그의 손이 막 침대로 다가서는 중학생인 장남의 머리에 닿자, 장남은 그 손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한 점의 빛을 본다. 자신의 삶은 잘못되었지만, 다시 돌이킬 수 있다는 사상이 계시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늘 가까이에 있어왔던 죽음의 공포는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전혀 두려움은 없었다. 왜냐하면, 죽음이 없기 때문.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훗날 톨스토이는 그의 명저 <인생론>에서 더 충실하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물간 논의로 밀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절실한 깨달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아울러 읽어 주시기를 권하고 싶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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