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7년 성서와 문화

음을 지배했던 조스캥 데 프레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시대는 천재를 낳는 것일까 아니면 천재가 있어서 한 시대가 새로워지는 것일까? 음악에 있어서도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에는 반드시 천재가 있었다. 고전시대의 끝자락 몸에 안 맞는 옷을 투두둑 찢으며 낭만음악의 모습을 온 몸으로 체현한 베토벤, 여러 양상으로 혼란스러운 바로크의 음악적 정황들을 명쾌한 화법으로 정리해 고전시대로 이행시킨 헨델, 주체할 수 없는 인본주의의 요구를 껴안으며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제시한 몬테베르디 같은 이들이 시대의 전환점에 존재했던 천재들이다. 중세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음악이 여전히 강력한 가운데 세속음악의 부상이 눈부시던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부에 이르는 기간, 르네상스가 그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던 시기), 과거의 모든 기법을 아우름과 동시에 당대에 가능한 최고의 음악어법을 빚어낸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40-1521)도 음악사의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튼 천재 작곡가이다.

 

조스캥 데 프레의 데 프레는 그가 태어난 동리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 또 한 사람의 명장 지오반니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da Palestrina)의 경우도 마찬가지. 중세와 르네상스 많은 작곡가의 이름에는 정식 성 대신 그가 탄생하거나 활동했던 지역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흔했다. 더 나아가 생몰 연도도 불확실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조스캥의 탄생연도도 1440년경으로 추정될 뿐 정확하지는 않다. 그는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접경 지역 에서 태어났지만 보통 프랑스 작곡가로 분류된다. 조스캥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포르자 집안의 음악 책임자로 여러 해 봉사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루이12세 아래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 어간에도 이탈리아를 자주 찾았으며 말년에는 자기가 태어난 벨기에 지방에서 죽음을 맞았다. 평생을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을 끊임없이 오가며 활동한 탓에 조스캥의 작품에는 다양한 지역의 음악 어법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르네상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의 최고 형태를 실현한다.

 

조스캥이 살았던 시대에도 종교 음악은 굳건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교회의 의전에 필요한 미사곡에 대한 수요는 여전했고 조스캥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방법론에 있어서 자유로웠다. 조스캥은 패러디 미사(parody mass)의 대가였다. 패러디라는 용어는 오늘날 어떤 대상을 비틀거나 풍자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지칭한다. 하지만 패러디의 본질은 기존의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형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을 뜻한다. 조스캥은 텍스트와 순서가 정해진 미사곡에 실험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패러디를 택한다. 미사곡의 칸투스 필무스(cantus firmus)‘, 주제를 만들 때 기존의 선율로부터 따오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주로 세속노래, 특히 불어로 된 샹송의 한 구절 혹은 그 노래 전체의 형태를 고스란히 옮겨와 사용했다. 물론 윗세대인 오케겜도 세상에 회자되는 유명한 노래를 미사곡의 근간으로 삼기도 했지만 조스캥에 의해 이 같은 패러디는 더욱 광범위하고 대담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인 미사곡에서 억누를 수 없는 자유와 창의의 기운을 표상하는 조스캥의 어법은 음악에 그때까지는 없던 생동감을 불어넣게 된다.

 

경직된 성격의 미사곡보다 조스캥이 선호했던 것은 텍스트와 전개방식이 훨씬 자유로운 모테트였다. 특히 그가 즐겨 썼던 기법은 이른바 무지카 레제르바타(musica reservata)’, 음악을 가사에 맞추는 방식이다. 그는 성악음악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가사의 의미와 분위기를 음악이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텍스트 선택의 한계를 안고 있던 르네상스 제도권 음악가에게는 분명 용기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조스캥이 남긴 수많은 모테트는 당시로서는 낯선 반음계의 사용, 화성적 다채로움, 빈번한 장식음 사용, 그리고 리듬의 과감한 대비와 같은 파격적인 요소로 충만했다. 모두 텍스트를 음악에 충실히 반영하려는 시도였다. 16세기의 음악평론가 글라리아누스는 조스캥의 음악에는 절제의 미덕이 없고 올바른 교육으로부터 나오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결핍되어있다. 즉 그의 음악은 너무 충동적이고 과격하다라고 말했다. 시대의 천재들이 당대의 기준으로부터 받는 평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글라리아누스가 결국 가장 존경한 작곡가는 바로 조스캥 데 프레였다고 한다. 글라리아누스뿐 아니라 동시대의 종교개혁가이자 음악에 유난히 조예가 깊었던 마르틴 루터는 다른 작곡가들은 음의 지배를 받지만 조스캥, 그는 유일하게 음을 지배하는 작곡가이다라며 그를 높이 추앙했다. 역사의 각 지점, 시대를 앞질러 가는 출중한 천재의 모습은 르네상스의 조스캥 데 프레에게도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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