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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 종교개혁: 기념인가 재해석인가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 교회사)

 

기독교의 세계사: 희랍-로마-독일-영국-미국

종교개혁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기독교의 개혁운동이다. 한데 그것은 단순한 종교의 개혁운동이란 차원을 넘는 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다.

기독교의 세계역사는 그 초기가 500년간의 희랍시대이다.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로 지속되기 위하여서는 기독교의 신학적 체계화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초기 생성기의 기독교를 희랍문화권에 보내신 것이다.

그 다음은 조직과 질서의 천재인 로마인의 세계에 보내신 것이다. 1,000년 동안 그렇게 하신다. 교회를 확고히 하고 거기에 신학을 안기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잘 체계화된 기독교를 조직 곧 교회 안에서 잘 보존하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신학과 교회가 확고하게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내적 풍부함을 통해서 신앙의 세계로 인도하게 하시기 위해서 기독교를 독일에 보내신다. 신학과 교회 그리고 나서 신앙이라는 역사 전개과정이 눈에 뜨인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생활이 그 중심으로 보이는 영국에 기독교를 보내신다. 오랜 신 구교의 갈등과 그 처절한 상쟁(相爭)으로 막대한 손실을 겪은 영국은 그들 공리주의(功利主義) 생리에 맞게 영국인이 다 같이 믿을 수 있는 성공회(聖公會) 곧 앵글리칸 교회를 구성하여 신구 교인이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결합(Unity)에 문제가 있다고 본 순수성(Purity)지향의 청교도들(Puritan)이 이런 교회는 혼합(混合), 잡종으로 보고 스스로 청교도(淸敎徒)라 자칭하고 신대륙 미국으로 떠난다. 한국교회의 정서로는 Unity보다 Purity가 강점으로 보이지만 Unity가 교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우리가 다 하나가 되었을 때, 그 때, 세상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내신 구세주이신 것을 알게 된다는, 그런 구절이 있다.

이렇게 해서 그 다음 역사가 열린다. 곧 미국의 시대인데, 미국에는 과거 역사가 없기 때문에 전통이란 것이 없었고, 따라서 여러 교회들이 그 이후 다들 자유롭게 들어와서 소위 교파교회 왕국을 이룬다. 사실 미국은 합중국(合衆國)인데 합종국(合宗國)이라 불러도 좋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이 역사를 뒤바꾸는 단독 사건이 아니라 전체 세계역사의 한 모멘트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역사의 전환기에는 혁신적 사건이 돌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전 역사 경륜의 한 획()이란 것을 알면 그 사건 하나를 절대시하는 요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의 <성서만이>: 그의 소신인가, 구호인가

루터의 종교개혁에 5대 원리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Sola Scriptura> <성서만이>이다. 성서의 권위만이 압도적이라고 하는 뜻인데, 그것은 성서만 있으면 된다는 뜻보다는 성서의 진리나 권위를 드높이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세 때에는 이단들이 특정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기독교를 왜곡하는 일이 많아서 일반인은 성경을 못 보게 하는 법이 있었다. 그리고 성경은 교회만이, 성직자만이,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법이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루터가 성경만이 절대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한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루터는 <성경만이> 절대적이고 진리라고 소리 높이면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쓰레기, 그렇게 경멸하는 말을 한 것이다. 성경이 절대적이라고 하고서 한 말이기 때문에 우리의 놀라움이 커진다. 그런 루터를 어째서 우리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하여 세계가 엄청난 열기로 기념하고 있는 것인가. 루터가 <야고보서>를 그렇게 악담한 이유가 무엇일까.

 

신앙과 행실은 같은 것: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문제는 루터가 신앙과 행실을 별개의 실체로 본 데에 있었다.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실상 없는 것이라고, 담백한 이치를 말한다. 믿음은 저절로 행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믿음과 행실은 하나인 것이다. 우리 주님도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하신 것은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가 확인한 신앙과 행실의 일체성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과 행실은 루터가 보듯이 그렇게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라는 것이다. 한 실체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한다고 확인하고 있다. Fide Cum Opera!

 

신앙은 Momentum Effect/ Habitus/ 내연-외연(內燃-外延)/ 신앙현상학

야고보에게 있어서 신앙은 살아 움직이는 힘이다. 생동하고 운동하는 에너지다. 따라서 믿음은 속에서 밖으로 스스로 솟는 힘이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것이 형편 따라 다른 현상을 띄우지만 반드시 외연한다. 그런 것을 Momentum Effect라고 하고 또 외연-내연이라 한다. LED와 같은 원리이다. 신앙은 신앙 그대로 머물지 못한다. 밖으로 현상화하고야 만다. 성육화(成肉化)하고야 만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성육화하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것을 habitus 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따라서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것은 없는 것이요,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다면 믿음이란 도도체가 없는 것이다.

 

신앙은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

참 묘한 것은 신앙의인(信仰義認)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루터가 인용한 <로마서>에 그 전형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인데, 야고보서에서도 행함의 상징으로 아브라함이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과 행함의 관계가 쉽게 풀리는 단서가 여기 있다.

신앙은 반드시 행실이나 실체로 나타나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것과 마차가지로 실상(實像)과 증거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요라고 물을 때에 가서 본 것을이야기하라고 하신다. 보이는 것 그것이 증거라는 것이었다. <베드로전서>는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분이라고 하였다. 저 거리에, 저 지하철에, 그리스도인다운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아니한다면 한국에 기독교란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보이는 교회당 건물에 기독교의 메시지가 흐르던가. 교인들이 모인 곳에, 회의진행이나 총회장 선거 때에, 심지어 교회당에서, 기독교 신앙의 향기가 흐르던가.

루터가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긴 <야고보서>의 글귀가 다시 떠오른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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