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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두 축(): 십자가와 부활

이계준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기독교는 두 개의 축,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초로 한다. 십자가는 갈보리 언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고 부활은 제자들이 체험한 신앙적 사건이다. 이 둘은 서로 차원을 달리하지만 실체의 양면처럼 불가분리적 관계가 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에 불과하고 부활 없는 십자가는 비극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 없이 기독교는 존재할 의미도 가치도 있을 리 만무하다.

십자가는 본래 기독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정치적 반역자를 처형하는 틀이었다. 예수는 정치인도 아니면서 왜 십자가에 희생되었나? 그는 당시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던 정치적 메시아도 아니었고 막강한 로마권력에 대항할 의지도 힘도 없었다. 그는 다만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자기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로마제국을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가 충만한 하느님 나라로 변환하려고 한 것뿐이다. 이 행태가 로마의 권력에 도전과 충격이 되었고 그는 빌라도에 의해 반역죄로 판정받고 십자가의 종말을 맞은 것이다. 정치적 반역자를 처형하는 틀이 인간구원의 종교적 상징으로 전환되고 승화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로마제국은 하느님 나라 운동을 일소하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막강한 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살아나셨다. 하느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는 십자가 죽음의 통과제의를 거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로 현현(現顯)된 것이다. 이 말씀은 죽음의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힌 추종자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이었고 그들을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하는 역동적 힘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대담한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지상명령인 하느님 나라 선포와 체현을 위해 십자가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추종자들의 부활과 십자가는 기독교 탄생의 산실이다.

기독교는 특히 중세 이후 교회의 제도화와 교권주의는 복음의 두 축을 소원(疏遠)시켰다. 세속권력과의 야합, 이단척결을 빙자한 만행, 신앙을 가장한 전쟁, 서구 식민통치와의 영합과 탈취 및 온 갓 세속주의의 수용 등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가 강도와 죽음의 소굴로 변질된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구교회가 폐업 직전에 이른 것도,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맛 잃은 소금으로 버림당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교회도 일종의 사회기구이므로 교권주의와 세속주의에 경도되기 마련이고 본래적 의미와 사명에 둔감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그 주체 곧 하느님의 백성의 정체성 상실에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16:24)는 주님의 말씀이 마이동풍이 된 것이다. 성전은 십자가 구원을 믿는 교인(churchian)으로 만원사례인데, 거리에서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천(christian)은 희소(稀少)하다. 하느님과 하나 된 예수의 십자가에 동참 없이 부활 생명을 기대하는 것은 고작 자기욕망을 투사한 환영(幻影)으로 대리만족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크리스천의 일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불연속적 연속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이요.”(딤후 2:11) 이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중단 없이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사랑의 구두선이나 장신구, 제단이나 종탑 위에 장식품과는 그 질()을 달리한다. 그것은 생명의 부정과 파괴가 지배하는 세태 속에서 자기 비움과 화해를 통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의 온전함(wholeness)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우리의 유한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탈바꿈시키는 구원의 틀이다. 그것은 미숙한 사람됨이 성숙한 사람됨으로 비상하는 발판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부활하면 장차 저기서도 부활할 것이요, 오늘 하느님의 현존에서 삶의 향연을 만끽하면 내일 그리고 영원히 또한 그러하리라. 기독교의 두 축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원은 오늘 크리스천의 실존적 의미를 되찾고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데 결코 도외시해서는 아니 될 절세절명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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