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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경제: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정종훈 (연세대 교수, 기독교윤리학)

 

인생역전 인생대박이라는 광고와 함께 로또가 열풍이다. 로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요행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수억 원의 정치자금에 연루된 정치인이나 수십 수백억 원의 비자금에 연루된 기업인의 형량이 몇 백만 원을 절도한 단순절도범의 형량보다 작을 때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수저계급론이 회자되고 있다. 자산 30억원과 연수입 3억원 이상을 다이아수저라 하고, 자산 20억원과 연수입 2억원 이상을 금수저라 하며, 자산 10억원과 연수입 8000만원 이상을 은수저라 한다. 그리고 자산 5억원과 연수입 5500만원 내외를 동수저라 하고, 자산 5000만원과 연수입 2000만원 미만을 흙수저라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아랫단계에서 윗단계로 신분상승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10억원을 얻을 수 있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고등학생들의 수가 201347%에서 201556%로 오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대한 교훈을 많이 남기셨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6:24)라고 말씀하셨다. 돈의 신적인 마력은 돈이 최고라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게 만들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전능성과 함께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사람들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20:35)는 말씀을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받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신의 물질은 물론이고 생명이라도 타인과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하늘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6:33)라는 말씀도 하셨다. 우리의 할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세상의 아버지보다 더 책임져주실 것을 확신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 가운데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6:11)라는 구절이 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누구라도 일용할 양식의 향유로부터 제외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9:24)라는 주님의 말씀을 경구로 삼아서 너무 부자가 되고자 애쓰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재물과 관련한 예수님의 비유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배울 수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16:19~31)는 가난한 나사로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먹을 것을 나누지 않은 부자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죄가 됨을 알려준다. 달란트의 비유(25:14~30)는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관리해야 함을 알려준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20:1~14)는 포도원 주인의 관심이 이윤창출보다 생존의 권리에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임금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창고를 짓겠다고 계획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13~21)는 내일이 우리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삶의 모든 조건을 지금 여기에서 이웃과 더불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무엇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10:29~37)에 주목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삶의 철학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 결단할 필요가 있다. 강도의 철학은 너의 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타인의 수고를 자신의 것으로 강탈하는 사람의 철학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철학은 나의 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기 수고의 결실을 자신만이 배타적으로 누리려는 사람의 철학이다. 사마리아 사람의 철학은 나의 것은 당신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재화를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과 기꺼이 나누려는 사람의 철학이다. 이 비유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난 사람에게 행한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재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12제자들(5:10~11)은 재산도 가족관계도 이해관계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을 볼 수 있다. 동족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세리장 삭개오(19:1~10)는 예수님의 불러주심에 감격하여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약속했음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교인들(2:44~45, 4:32)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그러한 공동체를 구성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11:27~30)은 자신들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흉년이 들어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모()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모아서 바울을 통해 전달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0,12)라는 말씀처럼 재물을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 재물을 축적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땀을 흘리지 않는 불로소득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 30:8-9)라는 말씀처럼 자족의 정신으로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과소비하지 않고, 과대포장하지 않는 가운데 최대한 절약하며 살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라는 말씀처럼 궁핍한 사람이나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해서 자신의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의 행위를 언제나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하는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둘 곳이 없을 만큼 가난하게 사셨고,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안타깝게 여기셨기에 그들의 친구가 되셨다. 사실 발가벗고 세상에 온 우리에게는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생명조차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우리의 복임을 깨닫고, 이제는 가난한 이웃들의 복의 통로로 사는 복의 근원으로서의 복이 우리 최대의 복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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