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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북한의 민주화와 예술목회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 예술목회연구원장)

 

며칠 전 새해 인사차 나의 멘토이신 이계준 목사님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그가 감동 깊게 읽었다고 하면서 내게 준 책은 다시 강철로 살아: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강철 김영환의 고백(시대정신, 2015)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은 평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의 혁명이야기를 자서전적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나는 같은 시대를 산 자로서 그의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 책을 흥미롭게 읽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나 슬프고 또 결연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시기에 자신의 삶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 그였기에, 나는 어떤 부채의식 같은 묘한 느낌이 느껴지면서 그의 책을 읽었다. 바라기는 이 시대의 남북문제를 곰곰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한번 진지하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저자 김영환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생활을 한 분으로서(서울대 법대 82학번), 대중에게 잘 알려진 대로 소위 '주사파'(소위NL)를 만든 사람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주사파 이론서를 1986년 집필했고, 그 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여 소위 종북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이끈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는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뒤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허구를 깨달음과 동시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인간중심철학'이 아니라 실제로는 철저히 왜곡된 수령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민혁당을 해체한 뒤 1998년 전향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 그는 현재까지 "북한 민주화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등 북한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념적인 전향보다 내게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이후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은 북한의 인권 및 북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상적 전향 여부를 떠나 그의 뜨거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헌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으며, 언젠가 한민족이 통일되었을 때 그의 민주화 및 통일 노력은 분명히 높이 평가되리라 확신한다.

다시 강철로 살아는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저자가 2012년 중국에서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전기고문 등 심한 고문을 받은 뒤 결국 추방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부와 제3부는 대학시절 어떻게 자신이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북한 노동당에 어떻게 입당하였고 또 민혁당을 조직하며 북한 종북주의자로서 살아왔는지를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4장은 1998년 종북주의자에서 어떻게 전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북한 민주화운동가로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북한 민주화운동가들의 수기를 부록으로 수록하고 있다.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갔던 부분이 여럿 있지만 한두 군데를 인용한다면, 주사파의 대부요 민혁당 중앙위원장이었던 그가 어떤 계기로 전향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하는 부분이었고, 또 그 결심한 이후 왜 오랜 머뭇거림이 있었는지에 대한 그의 고백이다. 우선 그가 전향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정작 그가 노동당 가입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고 난 뒤,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을 만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그 때의 심정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 김일성을 만나보니 김일성조차 주체사상을 모르고 있기에 조금 실망을 하였지만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 가장 기대를 걸었던 부분인 만큼 북한에 갔을 때 가장 실망했던 사건은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과의 만남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장시간 토론을 했는데 간단한 걸 물어보아도 그들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 그도 그럴 것이 주체사상이 국교처럼 되어 있는 북한에서는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일절 내세울 수 없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시도조차 금기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북한은 주체사상의 국가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불가능한 국가'라는 '절대사상'의 역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북한의 주체사상연구소는 '연구소'가 아니라 '보급소'에 불과했던 것이다."(51-52)

 

한편, 김영환은 위의 설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주체사상의 전반적 이념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도 왜 금방 전향하지 않았고, 더욱이 1992년에 민혁당까지 만들었는지에 대한 세간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부분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아래와 같이 답하였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 '나 혼자 개별적인 전향을 하기보다는 조직과 함께 나아가는 집단적 전향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 다른 이유도 있다. 이념적 '대안'을 만들고 싶었다. (……) 그 대안적 이념을 '주체사상'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 분명히 밝혀둘 점은 여기서 말하는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말하는 그 주체사상[수령주의]이 아니다. (……) 내가 '이념적 대안'으로 생각하였던 주체사상은 수령론의 거품이 묻어 있지 않는 주체사상, 민족공산주의의 구태가 묻어 있지 않은 주체사상, 계급적 적대주의의 때가 묻어있지 않은 주체사상이었다. 그렇게 수령주의, 민족주의, 계급주의의 이물질을 걷어내면 결국 '철학으로서의 주체사상'이 남는데, 그것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철학적인 도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146-148)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다. 이 분단 문제의 극복이야말로 한민족이 당면한 최고의 숙제이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민족교회로 성장한 한국교회가 이제 통일을 꿈꾸는 한민족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그 무엇보다 남북의 분단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길이라고 본다. 즉 남북의 분단극복과 통일 및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예술목회의 한 차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즉 예술목회운동이란 단순히 교회당이나 교인들의 거실에 예술작품을 걸어놓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로 하여금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의 통일운동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김영환이 일찍이 "[잘못된 독재정권인] 김정일 정권의 타도를 위한 좌우합작을 제안"했던 것처럼(182), 대한민국의 좌파이든 혹은 우파이든 한 개개인의 인간을 존중하고 사회와 국가가 민주화되는데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파를 떠나 공동으로 강력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김영환식 북한 민주화운동에 동의를 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한국교회는 북한의 민주화운동에 더 헌신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북한 민주화운동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으로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 곳 북한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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