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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음유시인들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6.05.20 20:10 조회 수 : 3165

방랑의 음유시인들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의전용 교회음악은 서양음악사의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교회 바깥에도 음악은 분명히 존재했다. 찬트를 비롯한 교회음악에 본격적으로 기보법이 도입되고 보존 전승되기 시작한 시기는 10세기경으로 본다. 하지만 철저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세속음악의 흔적들은 그때까지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제대로 발견되려면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했다.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어둠 속에 묻혀있던 세속노래의 단서를 뚜렷이 보여주는 시가집이 있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보이렌(독일의 지역이름)詩歌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11세기 부근 주로 독일 쪽에 살며 활동했던 수도승 혹은 성직자들이 그들의 언어 라틴으로 기록한 시집이다. 마치 밑 칸에는 악보를 그려 넣어야 할 것처럼 시 한 줄 한 줄이 띄엄띄엄 쓰인 것이나 어떤 시편들에는 초보적 기보 수단인 네움(neume)이 표기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 시들은 노래를 위한 텍스트였음이 틀림없다. 이 시가를 쓴 종교계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종교계를 탈퇴한 사람들을 골리아드(Goliard)라 지칭한다.

골리아드에 대한 해설은 구구하다. 제도권 일탈자들에 대해 역사는 그리 꼼꼼히 기록하지 않지만 그들은 성직자 훈련을 받은 있는 집자제들이었다. 뛰어난 머리와 과잉학습으로 무장된 당대 엘리트들의 능력과 기량을 온전히 수용하기에 교회는 너무 폐쇄된 영역이었다. 게다가 권력의 독선과 부패가 가속화되는 교회의 타락상은 설상가상의 견딜 수 없는 환멸을 안겼다. 그들의 시에 유난히 신랄한 풍자가 많은 이유이다. 마침내 수도원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골리아드들은 세상으로 나온다. 그곳은 억눌렸던 욕구불만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신나는 공간이었다. , 여자, 도박, 게임은 골리아드의 대표 시선집 카르미나 부라나를 현란하게 채우는 주제들이다.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분명 단죄되거나 폐기처분되었어야 마땅할 내용들이 오늘날까지도 오롯이 보존되어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이다. 어떤 이들을 제도권 안쪽 인사들에게도 이 시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 트루바두르(Troubadour)가 있었다. ‘창작자라는 뜻의 프랑스판 명칭이다. 북쪽 프랑스에서는 트루베르라 불렸다. 그들 역시 어느 정도 지체가 있는 집 출신으로 시와 음악에 능했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싱어 송 라이터였던 그들은 왕실의 행사나 여흥에 불려 다니며 총애를 듬뿍 받았다. 다소 급이 떨어지는 집안의 트루바두르가 그 재능을 인정받으면 전격적 신분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제도권 내에서 뚜렷이 자리매김한 합법적 뮤지션들이었던 셈이다. 때마침 한창이던 십자군 전쟁에 대한 독려나 참전 기사들의 무용담으로부터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가사는 다양하다. 다만 내용은 골리아드보다 훨씬 고상했다. 골리아드의 연애시가 육체적 탐닉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면 트루바두르는 정신적인 사랑, 귀부인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짝사랑 등을 주로 노래했다. 트루바두르의 가사는 종종 스토리텔링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캐릭터와 감정상태의 묘사와 더불어 대화형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래의 포맷은 오늘날 발라드라 불리는 대중음악으로까지 그 맥을 장구하게 이어오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런 트루바두르들도 정처 없이 이 곳 저 곳을 떠돌기는 골리아드와 마찬가지였다.

기존질서로부터의 이탈자들인 골리아드들은 의전용 문자였던 라틴어로 현란한 일탈의 시어를 구사한다. 제도의 중심에 들어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인간 본질의 추악함이나 타락상을 적나라한 어조로 풀어놓는다. ‘카르미나 부라나20세기 전반 독일의 작곡가 칼 오르프가 만든 오라토리오의 텍스트로 사용되어 중세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낸 바 있다. 트루바두르의 노래는 지역 언어인 불어로 되어있고 기존 질서를 공고히 하고 현상의 유지에 이바지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두 종류 음유시인들의 사뭇 엇갈리는 행보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역사는 패러독스로 채워지고 음악사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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