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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 (2)]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이상범 (목사, 칼럼니스트)

 

니코스 카잔차키스(1983-1957)가 말년이 가까운 1951년에 발표한 소설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소설로서보다는, 1988년에 제작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로서의 성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7백여 쪽이나 되는 인쇄물 대비 194분짜리 영상매체에서 오는 우위성뿐만 아니라, 영화의 됨됨이, 특히 예수 역의 빌렘 데포와 유다 역의 하비 키텔의 중후한 연기를 비롯한 여러 영화적 요소들이 원작에 빛을 더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근본주의 기독교 기관들이 기를 쓰고 방해공작을 편 일이 역효과로 작용해준 소득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최후의 유혹의 수난은 작품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좌경화하고 있었던 카잔차키스의 정치행태에 더해서, 그가 그려내는 그리스도상은 그리스정교회가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1945년 그리스 작가연맹이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했을 때에는 정부가 나서서 방해공작을 폈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꾸준히 후보로 등록되어오다가 1957년에는 알베르 카뮈에게 한 표 차이로 밀리고 만다. 훗날 카뮈는 카잔차키스가 100배는 더 노벨상을 받기에 어울리는 작가라고 술회한 바 있었다.

영화를 제작한 스콜세지 감독도 젊어서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 예수가 십자가를 만들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등장하는 유다는 끝까지 예수와 얽히고설키면서 촉매와 시금석의 역할을 연출해 가며 작가의 의도를 엿보게 해 주지만, 지면 관계로 본고에서는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유혹을 받는 장면만을 간추려 본다.

골고다 언덕, 어머니 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예수의 처참한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극심한 고통과 싸우던 예수가 엘리 엘리…… 나의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울부짖는 순간, 수호천사라는 한 소녀가 나타나 십자가에서 그를 풀어준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복수의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나날을 살아간다.

어느 날, 예수는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설교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신이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하나님을 설교한 나사렛의 사나이라면서, 빌라도에게 잡혔었지만 하나님이 구해주셔서 지금은 평범한 사나이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울의 설교는 거짓이라며 나무란다.

바울이 대답한다. “그래서 만족하시나요? 여기 이 사람들, 불행과 고통이 역력한 이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는 희망은 오직 예수뿐이라오. 그대가 누가 되었든 예수는 세상을 구해 주신다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당신을 십자가에 달아서 부활하게 할 것이오…….”

예수는 깊은 충격을 받는다. 시간은 흘러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막 죽어가는 예수의 머리맡에 지난날의 제자들이 모여든다.

예수의 부탁을 받고 예수를 밀고한 유다의 모습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싸우다가 예수께로 온 것이다. 그가 대든다. “당신이 있어야할 곳은 하나님이 정한 십자가가 아니던가요? 당신은 죽음이 무서워 도망쳤어. …… 비겁한 사람! 그대가 나에게 뭐라 했었지? 나를 배신하고 십자가에 달리게 해 달라. 그러면 나는 부활해서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배신한 것이 아닌가. ……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 그래서 배신 한 것이지. …… 왜 십자가에서 도망했소?”

천사를 가리키며 유다는 말한다. “그녀는 천사 따위가 아니라오. 그녀의 정체는 악마라오!”

놀란 예수가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나로 하여금 구세주가 되게 하소서. 어떤 고통도 견디겠나이다.” 바로 그 찰나, 그의 몸이 다시 골고다 십자가 위에 있게 된다.

한 순간 예수는 괴로움에 지쳐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미소를 띤 예수는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이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의 마리아,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 이루었다!” 소리치고 숨을 거둔다.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서 저자들도 미처 상상해볼 수 없었던 순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부르짖음에 이어 십자가에 달린 체 꾸었다는 꿈의 내용이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음미해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품 말고도 그리스인 조르바, 다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아시시의 빈자등 많은 그의 작품이 오늘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카잔차키스가 고국에 돌아온 것은 죽어서였다. 고향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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