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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 오인탁

성서와문화 2016.05.20 20:08 조회 수 : 3156

하브루타

 

오인탁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교육철학)

 

하브루타(havruta)는 우정(fellowship) 또는 교제(company)라는 뜻을 가진 희브리어이다. 이 평범한 언어가 히브리 민족에겐 구약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어떤 역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중심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내년(2017)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위상은 2000년대로 들어와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교회가 권위를 상실하였고 교인들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중심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자문하면서 하브루타를 생각해본다.

하브루타는 둘씩 짝을 이루어 큰 소리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학습하는 형식을 통칭하는 말이다. 히브리 랍비들은 하브루타의 기원을 창세기 1816-33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나님 간의 대화에 두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떠나라, 소돔의 죄가 하늘을 찔러 유황불로 소돔을 멸하겠다고 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이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18:23) 라고 말하며, 만약에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벌하시겠느냐?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대화는 45, 40, 30, 20, 그리고 10명까지 내려간다. 하나님은 의인 10명만 있으면 이 의인 10명으로 인하여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러한 대화에서 히브리 민족은 대화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친히 주시고 보여주신 공부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서 삶의 기본형식으로 삼고 있다.

유대민족은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지 전까지 학교를 만들지 않았다.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부모와 자식 간에 하브루타가 항상 있었다. 구약 시대의 유일한 학교였던 선지자 학교의 공부방법도 하브루타였다. 선생과 제자가, 그리고 학생들이 둘씩 짝을 이루어 큰 소리로 묻고 답하고 반박하고 논쟁한다. 그래서 교실은 항상 시끄러웠다. 그들의 교실은 지금도 시끄럽다. 도서관도 시끄럽다. 조용한 도서관은 이스라엘엔 없다. 랍비들은 말한다. 옆에서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그 소리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둘이 묻고 답하며 앎에 몰입하여 있어야 비로소 하브루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브루타를 설명하는 유명한 예가 있다. 흑인과 백인, 두 굴뚝 청소부가 굴뚝에서 나왔다. 누가 더 더러울까? 누가 손을 씻어야 할까? 이 문제를 가지고 30분 이상 토론할 수 있으면 하브루타를 어느 정도 익혔다 하겠다. 여기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절대적 평등권 인정, 나를 너의 눈으로 보기를 배우기, 하나의 척도는 없으므로 가능한 모든 척도를 동원하여 보기를 시도하기, 보편타당한 정답은 없고, 현재 정답으로 밝혀진 것이 진리에 가장 가까이 가 있으므로 최종적 정답을 열어놓기, 나의 생각과 대립적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기, 부분에 사로잡히지 않고 전체를 함께 보기 등 이해의 기본적 태도가 준동하고 있다.

하브루타의 전제조건은 시험 치지 않는 교육이다. 유대인의 교육에는 시험이 없다. 현재 전 세계에 약 1400만 명이 있다고 추산되는 유대인은 어떤 민족이나 국가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제, 학문, 종교, 예술, 건축 등 각 분야에서 세계최고로 부각되는 인물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성장 세대를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5살이 되면 토라를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다가 죽을 때까지 유대인들은 둘씩 짝을 이루어 서로 큰 소리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논쟁을 즐기는 하브루타 교육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둘은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상상력과 창의력, 자기표현능력과 관찰력을 도야하며 함께 인성과 인격을 키워간다. 교실의 책상과 걸상도 학생들이 둘씩 마주보고 앉도록 배치되어있다. 그래서 유대인의 교실은 항상 시끄럽다. 유대인들은 직장에서도 하브루타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일일수록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경청하고 주장하며 수렴한다.

여기엔 대화가 내용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교육원리와 학습한 것을 삶에 적용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라는 생활원리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나에게 하브루타를 다오. 아니면 죽음을 다오[o havruta o mituta]”라는 경구에 익숙하다. 그들은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형식이므로, 타인에 대한 존경과 둘이 함께 살아가는 형식, 이 둘이 없으면 삶은 무의미해지고 살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를 우리는 오늘날까지 히브리 인들이 만든 세계적 기업들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브루타를 하면서 쌓은 우정과 창의력을 기업의 창업으로 발전시키고 계속 함께 동업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나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그 좋은 예다.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시험 하나만 없애고 그 자리에 하브루타를 놓을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세계를 찬란히 빛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도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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