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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부엉새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6.05.20 20:08 조회 수 : 3386

피카소의 부엉새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는 피카소 조각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 전시는 흔한 일이었지만 조각을 150점 가량이나 모아 놓는 일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여기저기 책에서 보던 작품들을 죄다 한몫으로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인 일이었다. 철저하게 일구어낸 그의 손맛은 조각가들의 형태 다루는 방법과 너무도 달라서 말로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단지 한 단면에 대해 그 인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림 같은 조각, 조각 같은 그림, 가장 현실적이면서 모두가 비현실적인 형태들, 분명히 이 세상의 형상들을 만들었지만 어떤 딴 세상의 형상들을 옮겨온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딴 세상에 간 것 같고 바깥으로 나오면 또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러면서 흔쾌한 감각. 열정적인 삶의 태도. 사물을 파악하는 진실한 리얼리티가 거기에 있었다. 순간 · 직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번 피카소라는 천재의 눈길이 머무는 곳, 그것이 입체라는 시각적 형태로 응어리져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나의 친구들이 그것들과 눈 맞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카소의 부엉새가 작품대 위에서 금시라도 날듯 앉아 있었다. 저 유명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 서투르게 어색한 모양을 하고 서 있었다. 그뿐인가 반 고흐의 우편배달부 아저씨와 이웃집 아줌마를 그렸다는 그 아줌마는 어쩌면 그렇게도 촌사람답게 앉아 있는가. 피카소의 부엉새는 잘 만들어진 새라기보다 살아있는 새를 만들어서 진짜 새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피카소가 만든 한 뼘 자리 순라(純裸)의 테라코타 여인상은 칠 천 삼백년 전 이집트 사람이 만든 조각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시간차라는 게 그렇게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일까. 예술에 있어서의 개성미라는 것이 절대적인가 하는 점은 고려해 볼일이 아닐까 싶었다. 수수만만의 예술가들이 수만 년에 걸쳐서 조형 활동을 한 것인데 어떻게 수수만개의 개성으로 표출된 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가 아무리 무한정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능력은 무한정한 것이 아닐진대. 보편적 가치가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저 넓은 우주의 어떤 별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존재할는지도 모른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 인류는 99%의 인자들이 같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99%의 같은 점을 제쳐놓고 1%의 다른 점을 굳이 찾는다면 말이 되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옳은 일인가하는 것도 잘 생각해 볼 일이다.

피카소가 만든 부엉새는 진짜로 부엉새와 같았다. 실제의 부엉새와 같았다. 기척을 하면 금방 날아오를 것 같았다. 그 형상 안에는 피가 흐르고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는 99%의 보편인자와 1%의 특수인자가 가감이 없이 공존하고 있는 듯싶었다. 보면서 저것이다! 저것이 예술이다! 하고 나는 탄복하였다. 이른바 예술적 겉치장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앞서 고흐의 그림이 촌스럽게 보인 것은 예술적 겉치장이 안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새 늙은 눈으로 보니 명작이라는 작품들이 모두가 서투르게 그려졌다는 점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진실만이 나타나 있는 것, 겉치장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아닐까.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 진실의 모습이 찬연히 보이는 것이었다. 늙은이한테만 보여 주는 은총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떤 미술관에 갔더니 네덜란드 시대의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또 어떤 미술관엘 갔더니 18세기 19세기의 어두운 그림들을 큰 방에 가득히 걸어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었는데 저것이 유럽의 몰락이었구나! 명명백백한 유럽 미술의 몰락이었다. 저런 속에 진정한 예술가가 있었더라면 본능적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답답해서 저런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앉아 있었을까. 밀레가 있었고 들라크루아가 있었고 앵그르가 있었고 그러다가 마네가 나왔고 모네가 나왔고 그리하여 인상파가 되었다. 암흑의 바다를 뚫고서 빛을 찾는 인상파 천재들이 나온 것이다. 유럽 미술이 몰락한 시점에서 인상파 천재들은 색채를, 원색의 자연을 발견한 것이다. 세상은 화려한 색채의 보석 궁 같은 곳인데 어쩌다가 그림이 시커멓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피카소는 거기까지 다 보고서 만족하지를 못했다. 아프리카 미술을 본 것이다. 유럽 미술하고는 전혀 다른 족보를 가진 참으로 희한한 별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피카소의 독보적인 세계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달밤에서 빠져나와 화창한 대낮을 본 것 같았을 것이다. 유럽의 전통을 벗어나서 새로운 예술 방식을 찾아내서 20세기 미술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피카소의 부엉새는 박제된 그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빚어낸 참 부엉새였다.

사람들이 그림을 하도 많이들 그리다 보니 이제는 그림들을 모델삼아 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그림들은 또다시 박제 그림이 된다. 새를 그렸으되 날지 못하는 새가 되고 풍경을 그렸으되 박제 풍경이 되어 생기 없는 나무가 된다. 아침 해 떠오르는 것을 보라, 저녁 해지는 모습을 보라. 저 매일처럼 새로운, 영원히 새로운 태양을 보라, 박제될 틈새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

MOMA 상설관에서는 앙리 루소의 커다란 그림 두 점이 걸려 있다. 달밤에 사자가 있고 누워있는 사람이 있는 그림. 또 원시림 속에서 노는 동물 그림이 그것이다. 갈 적마다 자리는 달라졌어도 언제나 걸려있었다. 내 눈에는 그 루소의 그림들이 항상 건강하게 보였다. 왜 그랬을까. 지성이라든지 이성이라든지 그런 것이 안보여서일까. 저 시원의 곳 시간조차도 멈춘 영성의 고요한 그런 세계를 만나는 것 같아서였을까.

피카소가 젊을 때 나이 먹은 앙리 루소를 만났다. 루소가 한말 너하고 나하고는 20세기의 대가이고 천재인데 너는 고대적인 의미에서 그렇고 나는 모던한 면에서 그러하다.” 사실 그 시절에는 앙리 루소를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시기였다. 웬 일인지 이 두 사람의 우화는 내 일생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현실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고 역사가 만들어 놓은 법()을 다 초월하고 잔잔한 무법의 천지를 오로지 내 법(我法)으로 어린애와 같이 산 사람들이었다.

기술이 드러나는 그림은 곧 지루해진다. 일시적으로는 사람 눈에 혹하지만 영원한 시간은 견뎌내지 못한다. 큰 수레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어리숙한 것이 높은 것이다. 이기려고 하는 심성은 사람의 얕은 욕심일 뿐이다.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낫다. 모른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의 어머니이다. 누가 한 말이던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말이 있다. 참 그림은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시작일 것 같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병신년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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