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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화해의 몸짓 - 송병구

성서와문화 2016.05.20 20:05 조회 수 : 3180

십자가, 화해의 몸짓


송병구 (색동교회 목사)


  십자가는 단순한 모양의 ‘열 십(十) 자’ 형태이나, 그리스도교 역사 2천 년 동안 구체적인 고난과 희망을 보여주는 풍부한 상징이다. 십자가에서 경험하는 대표적인 인상은 아픔과 고통일 것이다. 주목할 것은 예수의 아픔과 고난을 통해 사람마다 자신의 아픔과 고난을 치유 받고 구원받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가 대중 속에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 2세기부터 십자가는 특별한 효험이 있는 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예수가 매달렸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나무 조각을 얻어 몸에 지님으로써 기적을 구했으며, 이는 장신구로 발전하였다. 십자가가 얼마나 유행했던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가 매달리셨다고 주장하는 십자가를 다 모으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을 정도다”라고 탄식하였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을 과거와 현재라는 동시성의 관점으로 바라본 데 기인한다. 16세기 초 독일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enewald)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는 가장 잔혹한 예수상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혔고, 온 몸에는 작은 가시못들이 박혀 있으며, 피부가 온통 검은색 반점으로 가뭇가뭇하다. 검은 반점은 당시 유럽을 풍미하며 번져나가 삼분의 일 이상 생명을 앗아갔던 흑사병의 증험이다. 그 지방 사람들 역시 흑사병의 희생자였다. 
  그뤼네발트는 제단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이사야 53:4). 
  십자가의 신앙적인 모습은 바로 중보성이다. 고난당하신 그리스도가 내 주님이며, 십자가의 아픔은 바로 나를 대신한 고통이라는 고백은 십자가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제외하고, 초월적인 힘만을 강조할 때 십자가는 단지 상징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고백과 행동은 그리스도교를 역사적인 종교로 이해하게 하였다. ‘세 개의 못 십자가’ 운동이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11월, 독일군은 무차별 폭격으로 영국 코벤트리(Coventry)에 있는 대성당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 때 성당 참사회원인 리처드 하워드(Richard Howard)는 파괴된 성가대석 벽에 “Father forgive”를 새겨 넣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인 이 두 낱말은 ‘코벤트리의 속죄기도’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의 사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기도문은 1959년에 공식화하여, 이후 금요일마다 12시에 코벤트리 대성당을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교회에서 기도 드려진다. 기도문은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계층과 계층 사이의 증오를,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소서”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모두 일곱 차례의 “Father forgive”를 반복하면서 인간에게 발생하는 불행에 대해 간구한다.
  ‘세 개의 못 십자가’는 지금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죄책을 담으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영국 폭격기들의 폭탄 세례를 받은 독일 드레스덴 주민들은 영국 코벤트리 주민들과 화해하는 일을 전개해왔다. 새 천년을 맞아 영국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드레스덴의 성모교회(Frauenkirche)를 재건하는 일을 도왔고, 마침내 완공되었다. 이것은 화해를 위한 상징이 되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 심각한 폭력적 도구였다. 행여 십자가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실패하게 마련이다. 브라질 미술가인 귀도 로카(Guido Rocha)의 작품 ‘고통 받는 그리스도’(The tortured Christ)는 그 절규를 실감나게 표현한다. 십자가는 강한 폭력적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폭력에 대한 강한 거부 역시 내포하고 있다.

  폭력은 반드시 대응 폭력을 낳기 마련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의 과거는 서구 역사 내내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 상황을 연출해 왔다. 십자가 처형에서 비롯한 양자의 폭력적 갈등은 역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왔다. 성경이 고발하는 폭력의 현장은 지금도 현실 가까이에 존재해 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화해란 관점으로 인식한 사도 바울의 이해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대속신앙을 고백한다. 십자가는 죄 때문에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한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셨다는 의미이다. 죄인에게 징벌로서 희생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이 희생제물이 됨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대속신앙은 바로 ‘화해’라는 개념 속에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평화로운 관계로 만들었다(골로새서 1:20). 십자가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등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그룹들 사이의 화해를 의미하기도 한다(에베소서 2:13-15). 화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를 시작하고 완성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화해는 회개와 용서의 결과가 아니라 그에 앞서는 조건이다. 이렇듯 화해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교회에 위임되었다(고린도후서 5:11-21). 모든 그리스도인이 화해자로 부름 받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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