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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와 스크로베니 예배당


박한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미술)


그림 1 스크로베니 예배당 전경


  2015년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오랜만의 이탈리아 여행이라 가보고 싶은 곳이 무척 많았으나, 나는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스크로베니 예배당(Capella degli Scrovegni) 벽화를 꼭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라는 도시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큰돈을 모았던 스크로베니라는 중세 상인이 고리대금업을 하던 아버지의 과오를 속죄하고자 지은 건물이다. (고리대금업은 단테의 <신곡>에도 묘사되어 있듯이 중세 그리스도교적 가치관 아래 최고의 중죄로 여겨지던 행동 중 하나였다.) 스크로베니는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당대의 최고 화가 조토에게 벽화를 의뢰했고, 그는 예수의 생애 연작(24점), 마리아와 안나의 일대기(14점), 그리고 서쪽 벽의 <최후의 심판>을 합쳐 39점으로 구성된 대작을 남겼다. 1306년 완성된 조토의 프레스코 연작은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묘사와 공간배치로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르네상스 예술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림 1 참조)
  그런데 조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는 관람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14세기 초 완성된 이래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여러 차례 지진, 홍수, 폭격 등으로 피해를 입었고, 2002년 큰 규모로 복원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따라서 조토의 프레스코를 보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한 번에 최대 25명이 입장하여 15분 동안만 관람이 허용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조토의 프레스코를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 우리 가족들은 파도바에서 1박을 해가며 두 번에 걸쳐 예배당을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공들여 방문한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 조우한 조토의 프레스코는 기대에 어긋남 없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 찬 영상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보기에 조토의 프레스코는 그저 투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짙푸른 배경 아래 배치된 조토의 벽화 속 인물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그들은 당장 내 옆으로 다가와 눈을 맞추고 그들이 목도한 예수의 삶과 죽음, 수난과 고통에 대해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말해줄 것처럼 보였다. 그중 예수의 생애를 다룬 그림 중 몇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수의 탄생> (그림 2)
마리아는 아기예수의 자리를 보살피고, 요셉은 구석에 잠들어 있다. 소와 나귀는 다정한 눈으로 아기예수를 바라보고, 오른쪽의 두 목동은 조용히 천사를 바라본다. 모든 것이 검소하다. 겸손하다.


<동방박사의 경배> (그림 3)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 왼쪽의 키 큰 단봉(單峯) 낙타는 그들의 여정이 길고 험했음을 상징하고 있다. 도판 상단에는 동방박사들을 인도해온 별이 독특한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1301년 나타난 핼리혜성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조토는 복음서의 이야기에 현재의 사건을 섞어 회화 전체를 친밀하고 익숙한 공간으로 창출해낸다.


<예루살렘 입성> (그림 4)

선한 나귀를 탄 예수는 운명에 맞서듯 우뚝 서 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실 때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실 것이며, 나귀의 작은 것이 나의 새끼라는 말씀처럼(스가랴 9장 9절), 조토는 예수 뒤 군중 가운데 작은 새끼 나귀를 숨기듯 그려놓았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에 비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발걸음이 무겁고 생각이 많아 보인다.


<갈보리로 가는 길> (그림 5)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길을 떠나는 외로운 예수. 무수한 갈등과 고난 끝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결심을 입증하듯,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 끝은 저 하늘 너머를 향해 있다. 예수 뒤에 우르르 몰려든 군중 때문에 마리아는 왼쪽 끝으로 밀려나 있고,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슬프게 일그러져 있다.


  이렇듯 조토의 그림은 경외심을 갖고 거리를 두게 만드는 위압적인 작품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 속에 동참하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결국 조토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부활하시어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다시금 진심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림 2 예수의 탄생

그림 3 동방박사의 경배

그림 4 예루살렘 입성

그림 5 갈보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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