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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생각하며 - 최종태

성서와문화 2016.08.27 20:46 조회 수 : 3163

민화를 생각하며

-그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흔적-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

 

조선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민화에 대하여 민화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었다. 20세기 초에 일본의 학자 야나기라는 이가 조선의 미술을 연구하는 중에 민화(民畵)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야나기는 민간미술(民間美術)이랄까 이름 없이 만들어진 것들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갖고 연구를 한 사람이다. 일찍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기 이전에 조선의 민간미술의 미를 발견했다는 것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히 생각할 것은 민화라고 이름이 붙으니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그림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하급(下級)미술이란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고려해야 할 문제일 것 같다.

고급미술이 있고 거기에 상대적으로 하급미술이 있는가. 그런 관념이 생기는데, 그래서 우리 민화가 우리나라 미술에서 낮은 미술로 보일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름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조선시대의 그림은 중국그림을 표본으로 삼아서, 선비그림 양반그림이라할지 이른바 정통그림의 맥을 이루고 있다. 민화는 미술사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았고 미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였다. 민화에 대한 연구는 해방 후 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주로 민간 학자 애호가들에 의해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라고 했는데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하는 말은 조선시대의 그림이 중국그림을 지나치게 숭상한 나머지 거기 따라 가느라고 아예 중국에 예속된 것이 아닌가를 반성해야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보자. 그렇지 않았었다. 삼국시대의 우리미술, 그 불교미술은 단연 중국과 다르고 예술로서도 더 높은 경지를 이룩하고 있었다. 고려의 불화 역시 아시아 불교미술 역사에서 단연 뛰어난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선시대 500년은 중국미술을 따라가느라고 한국적인 성품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민화 민간예술에 대하여 주목해야 하는 의미가 있다. 도자기를 보라. 가구공예를 보라. 그런 선에서 민화를 보라. 양반미술 선비미술에서 없는 우리네 혼이 여기 배어 있다. 민족의 정서가 여기 고스란히 배어 있다. 만약에 민간예술에서마저 중국을 모방하였더라면 조선시대는 조선의 마음, 민족혼의 빈사시대가 될 뻔하였다. 도공의 손으로 도자기가 만들어져서 조선의 마음이 그 형태 안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목공예는 참으로 멋스럽고 아름답다. 그림을 보자. 우리민족의 타고난 모든 것. 가슴에 맥맥히 이어온 것. 그것이 민화라는 마당에서 마음껏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약에 우리민족이 그런 마당을 못 만들었더라면 정말 기를 펴고 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정성을 다하고 기량을 다하고 몸을 다해서 일을 해야 한다. 자유롭게 즐겁게 기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예술이 바로 우리 민화였다. 지금 보면 정말 아름답다. 형식에 있어서도 세계미술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양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민화와 같은 특별난 양식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비슷한 것이 없다.

어찌해서 이렇게 특별난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게 되었을까.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본이 있어서 된 것도 아니었다. 수없는 민간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업이 예술이란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걸작을 만들어서 세상에 이름을 낸다든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 참으로 순수한 무위(無爲)의 흔적이었다. 조선의 민간예술은 무심의 예술이었다. 비움의 예술이었다. 의식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었다. 그저 타고난 성품대로 했을 뿐 다른 욕심의 작용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에서 된 일이었다. 거기야말로 예술이란 세계가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그들은 자기네가 요즘같이 예술가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이름 없는 환치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이름 없는 도공이었다. 그와 같이 명작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만들었다는 근거가 하나도 없다. 국가적 민예박물관 하나 없다. 다행히도 민간인들에 의해서 돌 박물관, 옹기 박물관 등 무슨무슨 박물관들이 세워져 있다. 모두가 그런 데에 애정을 가진 민간인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그것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립민화박물관이 왜 없는가. 국립도자기 박물관이 왜 없는가. 국립가구박물관이 왜 없는가.

민화는 불교, 유교, 도교, 무속이야기 등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정신적인 것의 바탕 역할을 민화가 하고 있었다. 양반미술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조선시대 후기로 올수록 민화가 성했다고 하는데, 임진란壬辰亂 병자호란丙子胡亂등을 거치면서 나라가 피폐했을 때 백성의 위안처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민화에 등장하는 모든 형상들에서는 어두운 그림자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성난 호랑이 그림을 본적이 없다. 슬픈 표정의 그림이 없다. 일본의 야나기가 한국의 미를 슬픔에 있다고 했는데 어림없다. 한국미술 전체를 보라. 슬픔의 흔적, 우울한 흔적이 없다. 한국의 미는 밝음의 미이다. 꽃도 새도 여유만만하다. 조선 사람의 아취가 거기 민화에 뭉텅 살아있다. 한국미술은 전반적으로 볼 때 선()의 아름다움이다. 민화가 특별히 노골적으로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적인 색채의 미가 민화에 후회 없이 표현되었다. 언젠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한국 민화 대전람회를 볼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돼야 민화의 예술적 가치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그림 따라갔고, 일제 식민통치 시절에는 일본그림 따라갔고, 해방 뒤에는 미국그림을 따라갔다. 우리가 지금 민화를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될 것이 있다. 그림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항상 원점에서 생각해야 될 것 같다. 공리를 초월하고 명리를 초월한다. 그리하여 인간 내면에 깊이 가라앉은 때 묻지 않는 을 건져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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