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어느 농촌목회자의 자화상

 

정훈영 (단비교회 목사)

 

농촌목회를 시작하면서 마을 노인들의 일손을 돕기 시작한 계기로 농업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300평 농사를 권유받아 시작된 농사가 노인들이 손을 놓는 대로 제 차지가 되어 지금은 동네에서 농사거리를 제일 많이 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당연히 동네에 농사지을 젊은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들녘에 나가 일을 하다보면 쓸쓸하다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기가 드물어졌습니다. 들녘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던 농부들의 모습과 그들이 일을 하면서 서로 부르는 소리와 노래는 더 이상 들판의 메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농번기에는 사람을 대신하여 농기계소리가 벌판을 휘젓고 있을 뿐, 못밥을 들고 나와 서로 나눠먹는 풍경은 고사하고 가장 편리하게 도입된 짜장면 시켜먹는 풍경도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25년 전 이 벌판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만났던 어른들이 모두 떠나고 난 지금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벌판을 지키는 심정이 참담합니다.

 

요즘 가끔 들판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일제에 국토를 빼앗긴 식민지 현실에서도 국권 회복의 희망을 접을 수 없는 애절한 마음을 농촌의 풍경을 소재로 담아 지은 시라고 느껴집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드는 생각은 참혹한 시절의 절망과 희망을 노래한 시가 어찌하여 오늘의 농촌현실을 연상시키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친환경 농업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농약과 비료, 대형기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관행농사에 대해 아무런 반성적 대응을 할 수 없는 농업의 현실 때문입니다. 지금의 농업은 그 안에 기본적으로 담겨야 하는 생명의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단지 산업의 한 파트가 되어 이윤과 손실의 차원에서 먹거리의 가치가 정해집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농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정신이 결합된 먹거리,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먹거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이 저에게는 과민하게도 절망의 이유가 됩니다.

농촌과 농업의 문제를 경제적인 지표를 통해 설명하자면 그 불합리성을 지적할 일이 무수히 많습니다.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난 것은 살림살이를 지탱할 경제적 조건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 으뜸 원인입니다. 이런 면을 무시하고 농촌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농촌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현실과 미래가 없는 상황을 외면하고 교회의 존재이유를 논하면 그 범위는 극히 왜소해집니다.

 

물질적 하부토대가 무너지면 사람은 그 정신까지 건전한 활동을 멈추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일 것입니다. 아등바등 일에 지쳐 시간과 건강이 소진된 상태에서 건강한 정신적 활동을 기대하기 힘든 것처럼, 경제적으로 소진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많은 것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성원의 수가 지나치게 감소하면 그 인원으로는 기본 모임이 불가능해지고 문화와 교육 등의 공동체 활동이 정지되는 지경이 됩니다. 지금의 농촌 현실은 고양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으로 농촌사회가 굴러가기 위한 조건마저 붕괴된 상태에 있습니다.

 

선교 초기에는 농촌선교를 다분히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태도로 바라보았다고 생각됩니다. 젊은이가 가난과 외로움을 감수하고 노인들을 돕고 사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이야기되고 그 그림 속의 저는 꿈을 먹고사는 부러울 것 없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꿈들이 현실을 딛고 있지 못했고 근거가 빈약한 낙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부채에 시달려야하는 부담스런 중년을 보내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농민들이 평균적으로 겪고 있는 대안 없는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신도 수가 줄고 형편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시간으로 지나고 있습니다. 거품이 사라지는 혼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국교회는 예전의 물량적 성장신화를 더 이상 목표로 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마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심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농사와 목회를 초기부터 겸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농사는 저에게 이중직이고 자비량 선교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수익이 보태졌기에 25년간 미자립 상태의 농촌교회를 지키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려움들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3중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겪게 될 고민이 아닐까를 예측해 봅니다.

 

이계준 목사께서 저희 단비교회의 선교의 특징을 성육신 신앙과 창조적 접근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해 주신 뜻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농촌현장의 필요에 응답하여 유기농 선교가 이뤄지고, 자기희생을 통하여 농촌선교를 감당하려는 정신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입니다. 분발하고 도전을 멈추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여전히 새롭습니다. 가슴이 아리게 그 부탁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현실의 짐은 그 꿈에 도전하는 데 장애가 되고, 그 요청에 마음앓이로밖에 응답할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자리가 복음의 자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초기에 결혼반지도 팔아가면서 사역을 지탱했을 때나 지금의 현실이나 여전히 같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복음의 맥락을 찾아왔고 모름지기 가난한 자리에서 발견되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절박한 현실에서 언제나 꽃은 피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가운데서도 사역은 진전되었습니다. 가난한 농부들 속에서 성서를 읽게 되고 그렇게 예수님의 진면목을 찾게 되었습니다. 자칫 성공이라는 로드맵에 맞춰 복음의 길을 걷고자 했던 본능적인 의도가 발가벗겨지는 경험의 자리였습니다. 가난하지 않은 교회가 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교회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목회자의 아주 평범한 소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는 길만이 곧 복음의 길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바위틈에서 핀 꽃이 예쁜 것처럼, 메마른 땅에서도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과정이 곧 복음의 길임을 압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란 주님의 묵시적 경고를 삶으로 받아들여 구원을 완성하는 데까지 이를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끝까지 견딜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겟세마네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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