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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서 보는 감사 - 민영진

성서와문화 2016.08.27 20:43 조회 수 : 3927

시편에서 보는 감사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구약신학)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

 

 

?시편?이라는 책

 

우리가 ?시편?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찬양? 혹은 ?찬송?이라고 부른다. 시편은 여려 편의 시를 모아 편집한 시집이 아니다. 시편은 유대교 교인들이 예배에서 부르는 ?찬송가?와 같은 구실을 한다. 과거 성전 예배에서, 성전 붕괴 이후부터는 전 세계 여러 곳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이는 각 지역의 회당 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을 모은 ?찬송가?와 같다. 지금도 유대교 예배에서는 ?시편?이 우리 기독교 예배의 ?찬송가? 구실을 하고 있다.

 

시편의 문학 양식(樣式)

 

시편의 150편에 담긴 시들을 궁켈이라고 하는 학자는 문학형식과 내용에 따라 1) 찬양시(하나님 찬양 일반 8; 19; 29; 33; 65; 67; 68; 96; 98; 100; 103; 104; 105; 111; 113; 114; 117; 135; 136; 139; 145-150; 시온 찬양 46; 48; 76; 84; 87; 122; 왕으로 즉위하시는 하나님 찬양 47; 93; 96:10-13; 97; 99), 2) 불평시(공동체 불평 44; [58]; [60]; 74; 79; 80; 83; [106]; [125]; 개인 불평 일반 3; 5; 6; 7; 13; 17; 22; 25; 26; 27:7-14; 28; 31; 35; 38; 39; 42-43; 54-57; 59; 61; 63; 64; 69; 70; 71; 86; 88; 102; 109; 120; 130; 140; 141; 142; 143; 억울함 호소 5; 7; 17; 26; 죄 고백 51; 130; 하나님 의지 4; 11; 16; 23; 27:1-6; 62; 131), 3) 감사시(개인 감사 18; 30; 32; 34; 40:2-12; 41; 66:1-7; 92; [100]; [107]; 116; 118; 138; 공동체 감사 66:8-12; 67; 124; 129), 4) 제왕시(帝王詩)(2; 18; 20; 21; 45; 72; 101; 110; 132; 144:1-11), 5) 지혜시(1; 37; 49; 73; 91; 112; 127; 128; 133.), 6) 기타시(순례시 122; 전설시 78; 105; 106; 예배의식시 15; 20; 24; 14/53; 66; 81; 82; 85; 95; 107; 115; 118; 121; 126; 132; 134; 혼합시 9-10; 12; 77; 90; 94; 119; 123; 137. 기타 36; 50; 52; 75; 82; 108) 등으로 나눈다.

 

찬양과 감사로 수렴되는 시편

 

탄식시(혹은 불평시)로 분류되는 시가 150편중에서 60편이나 된다는 것은 놀랍다. 여기에 비해 감사시로 분류된 것은 겨우 17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 가지 점에 착안한다. 하나는, 찬양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종인 왕을 위한 제왕시(帝王詩), 인간을 교훈하는 지혜시, 기타 성전 순례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행위를 고백하는 전설시, 예배에서 사용된 의식을 반영하는 예배의식시 등은 모두 다 구원자 하나님을 기리고 그에게 감사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 찬양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편 안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탄식시(혹은 불평시)마저도 비록 하나님을 향한 개인의 불평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불평이 노출된 시들이긴 하지만 탄식시(혹은 불평시) 역시 그 끝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시편 전체의 맥락을 볼 때 시편은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기억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이다.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대표적인 시편이 바로 136편이다.

 

감사의 유혹과 극복

 

?시편?에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께 감사하고, 왜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를 배운다. 무엇보다 먼저, 시편 시인들은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빈 이들이 아니다. 자기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소원이나 비는 이들이 아니다. 그런 소원은 언제나 외면당한다. 시편에서 감사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은 사람의 소원이나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탄식과 불평이 무성해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이 신들을 마음대로 제조하여 성전이나 회당을 온갖 신들로 가득 채운 만신전(萬神殿)을 건설하는 일은 시편에서는 언제나 배제된다. 시편 1361-26절에서 “...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고백이 26회나 반복되는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편 시인들은 하나님의 창조(創造)구원(救援)을 감사하고, 피조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信實)하심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어지심[仁慈]을 감사한다.

 

수확의 계절과 감사의 계절이 겹치는 문화권에서 감사는 늘 유혹이다. “받은 복을 세어보는계산이 감사의 내용과 질을 결정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받은 복을 세어 볼때 무엇이 복이었고 무엇이 저주였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우리의 삶에서 내 뜻이 이루어진 것보다, “당신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해 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가 받았다고 생각한 복이 이웃과 다른 피조물의 희생에 연루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감사는 당연히 참회로 바뀔 수도 있어서, 진정한 감사절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과 생태 파괴에 근거한 편의(便宜)는 창조에 대한 도전이다. 자본이 자기에게 집중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본과 함께 권력까지 주어지는 것을 복 받은 것으로 착각한다면, 축적된 자본과 권력으로 이웃을 이기적 목적 달성 수단으로 삼아버리면서도 그것이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라는 자아도취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이 개인이거나 집단이거나 국가이거나 국가연합이거나를 막론하고,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뜻이루어지기를 거부하고, “자기의 뜻성취를 끝없이 확장하고자 하는, 사탄의 세력에 굴종하는 삶일 뿐이다.

 

감사의 계절을 맞는 나의 다짐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감사하고자 하는 그 하나님이 내가 만들어 낸 우상이 아닌지 확인하자. 내가 받은 복이 내가 빼앗은 복이 아닌지 살피자. 내가 받은 복은 내가 받아 누리라고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상을 가림이 없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구분 없이, 모든 이웃, 곧 사람과 피조물과 함께 나누는 것임을, 나는 다만 그 복을 운반하는 도구임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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