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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감사 - 김고광

성서와문화 2016.08.27 20:42 조회 수 : 3319

인생과 감사

 

김고광 목사 (수표교교회 원로목사, 조직신학)

 

주어진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감사가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사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으로 다가온다. 살다보면 감사해야 할 때를 놓치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은 제쳐두고라도 나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으며 살고 또 그렇게 목회를 해 오는 중에 마땅히 해야 할 감사를 놓친 적이 너무 많았다. 핑계가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고 나 살고 일하는 데 급급한 이기적인 마음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말에 제일 걸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그것도 목사라는 인생을 살면서 말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감사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동물적인 인간그리고 이성적인 인간이 구호처럼 내려왔다. 이러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감사는 비교와 만족이라는 계산적인 감사뿐이다. 이런 계산적인 감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감사이다. 이런 감사는 내가 받은 그 무엇에 대한 일종의 보답/보상/답례/인사를 말한다. 이런 일반적인 감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현대인은 많은 경우 자기 인생의 목표와 일에 대한 성취에 얼마나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비교와 만족이라는 계산적인 감사를 한다. 이런 감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진정한 감사가 아니다. 이런 감사는 소위 말하는 주고받기 식으로 전락하는 장사이다.

 

우리는 내가 손해를 보는 일에는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유리하고 이득이 될 것인지 알게 모르게 따지면서 주고받는 감사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더욱 필요한 감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이익에 필요한 만족의 정도에 따라서 감사의 내용과 그 마음도 달라진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인은 감사다운 감사,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본질적인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감사를 잃어버리면 결국 사람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 모두 이 현대적 비교와 만족이라는 계산적인 감사에 너무 친숙해져서 본질적인 감사는 감사가 아니라고 단정하기 쉬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유리할지 아닐지, 어떤 일이 앞으로 나에게 유리할지 아닌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보답을 잘하는 사람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 등등으로 계산을 하면서 점점 본질적인 감사를 잃어버리고, 그러다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고 결국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은 더욱더 계산적이 되고 무엇이든 나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따지면서 비교하고 만족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가거나 끌어들이고, 나아가 더 감사하고 또 그렇게라도 잘 하고, 많이 하는 것을 감사에 감사로 보답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전제하며 삭막하게 살고 있다.

 

이런 식의 감사와 달리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유(Denken)’감사(Danken)’라는 말이 옛 독일어, ‘게당크(Gedanc)’라는 같은 시원적(始原的)인 단어에서 나왔다는 것에 깊이 집중했다. 게당크는 나로 하여금 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본질에 감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서로 주고받은 것에 대한 보답과 보상으로 하는 계산적인 감사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순수한 감사는 우리가 오로지 사유한다는, 요컨대 본래적으로 유일하게 사유되어야 할 것은 사유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이데거는 주장하고 있다(하이데거/권순홍 역, 사유란 무엇인가?, 201). 이런 순수한 생각과 감사는 게당크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인간의 인간다움의 본질로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이다. 오늘의 나의 환경이 아니라 오늘의 나의 존재의 본질을 최고의 선물로 여기는 사람은 진정 감사를 아는 행복한 사람이다. 많은 현대인이 자기 가진 것이나 처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름대로 만족이라는 우위적인 계산이 나오는 감사에 매몰되어서 인간다움의 순수한 마음의 감사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많은 현대인들이 자기를 상실하고 타인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상실한 채 행복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는 은혜/은총감사라는 말이 희랍어로는 같은, “카리스(Charis)”라는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은총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 주시는 것이고, 감사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학자 바르트는 하나님의 은총(charis/grace)과 인간의 감사(charis/gratitude)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고 소통하는 사랑의 길, 즉 하나님의 인간성이라고 통찰하고 있다(Barth, The Humanity of God, 60).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복음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감사와 하나님의 은총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되고, 여기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 즉 구원의 복음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나와 타인이 가진 것과 나의 나됨과 타인의 타인됨을 비교해서는 진정한 감사도 행복도 구원의 복음도 상실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고 보면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준 것에 보답하는 감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상황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 깊이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감사를 저버릴 수 없다. 그리고 머리에서 나오는 감사가 아니라 가슴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 감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나아가 하나님 자신과 만난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넘어서 감사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런 형편에서 무슨 감사가 나오느냐고,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2:9). 이런 형편에서도 감사는 인간의 인간됨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시인 휠덜린은 인간을 재는 척도는 이 땅위에 없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렇다. 이런 형편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한 인간의 결심과 노력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랑의 통로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사랑이 있어 믿음의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감사의 계절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하는 계산적인 감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보답과 보상의 감사 아닌 믿음의 감사, 존재의 감사가 이루어지는 이 감사의 절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감사의 계절 아닌 날이 없겠으나 이 가을에는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고 한이 없는 욕망어린 감사가 아닌 은총과 사랑으로 가득 찬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감사 계절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해야 하리라. 이런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은총으로서의 감사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익 중심으로 돌아가는 오늘의 세상에서 그런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감사, 은총이 깃들고 사랑이 통로가 되는 믿음의 감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은총의 최후 승리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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