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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와 얼터너티브

 

임중목 (성악가, 가천대 강사)


크로스오버(crossover)와 얼터너티브(alternative)는 현대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음악용어들이다. 크로스오버란 혼합, 융합, 교차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떤 활동이나 스타일이 두 가지 이상 분야에 걸쳐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음악용어로 사용되는 크로스오버는 한 곡이 여러 종류의 차트에 동시에 등장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1980년대 미국의 컨트리 가수들의 곡이 대거 팝 차트에 등장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음악과 현대음악의 장르 조합을 가리키거나, 민속음악과 결합되는 다양한 장르의 조합을 일컫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크로스오버는 1969년 재즈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에 의해 본격화 되었다. 그는 재즈에 록 비트를 첨가한 재즈 록(jazz rock)을 통해 퓨전 재즈(fusion jazz)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크로스오버의 시작은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 실험이 행해지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피아노 대신 신디사이저가 주목받고,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시도하는 음악가들이 출현했다. 거슈인 역시 새로운 음악으로 고전음악계에 도전장을 내게 되고 결국 재즈와 고전음악을 조합시킨 피아노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라는 위대한 곡을 완성하였다.

한편 얼터너티브라는 용어는 록 음악에서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등장한 얼터너티브는 기존 록에서 탈피하여 록의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자는 일종의 대안론으로 등장했다. 음악적 형식을 보자면 얼터너티브는 기존 록의 파형을 왜곡시킨 디스토션 사운드(distortion sound)를 중심으로 반복악절인 리프(riff)를 강조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1991‘R.E.M’이라는 밴드가 문학적 가사를 중심으로 차분하면서 끈적거리며 화려한 질주를 품은 새로운 느낌의 록으로 문을 연 이후에 니르바나(Nirvana), 라디오헤드(Radiohead),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등 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얼터너티브는 이후 브릿 팝(brit pop), 컬리지 록(college rock), 드림 팝(dream pop), 그런지(grunge), 인디 록(indie rock), 노이지 록(noeazy rock) 등의 하위 장르들로 분화되었고, 또 다른 형태의 퓨전 장르인 얼터너티브 메탈(alternative metal), 얼터너티브 댄스(alternative dance),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 매드체스터(medchester) 등 혼합장르들로 출현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헤비 메탈(heavy metal) 성향을 벗어난 모든 록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렇듯 다양한 장르로 분화된 얼터너티브가 록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었다면, 얼터너티브가 추구한 대안이란 무엇이었을까? 태생적으로 록 음악은 저항의 도구로서 사회적 소외계층이 기득권층에 대해 갖는 설움과 울분의 표출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의 도구인 록은 음악적 상품화를 통해 기득권층의 부()를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저항의 상품화를 통한 록 음악의 체제편입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으며, 결국 사회적 약자의 설움을 대변해 온 록 음악이 더 이상 저항의 상징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얼터너티브는 록의 음지(陰地)오늘날 얼터너티브 록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미국 시애틀에서 사회부패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록 정신의 부활을 시도했고, 자신들의 음악을 그런지라 칭하며 하나의 대안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록과 얼터너티브의 차이는 음악적 형식에 있다기보다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attitude)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음악사를 살펴보면 기존 음악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대안적 순환들은 늘 존재해 왔다. 영국의 펑크 록(punk rock) 역시 록의 저항 정신을 거세한 채 연주자의 기교에만 탐닉하고 값싼 감성에 기댄 록발라드(rock ballad)만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음악적 상업성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것이다. 고전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빈틈없는 콜로라투라(coloratura) 발성과 극단의 고음역을 보여주는 카스트라토(castrato)의 기교에 매료되는 순간에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음악사에서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의 기준을 절대화하려는 동시에 절대화된 기준의 상대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는 인류의 문화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해 본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절대기준이 되어 버린 이들을 꾸짖으시며, 사람 본연의 모습을 찾아주시고자 하셨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절대기준으로 삼았던 가치를 되돌아보며 사람됨의 자리로 돌아설 수 있었다. 음악에 있어서 크로스오버와 얼터너티브가 음악적 형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이듯 하느님과 교류하는 데 있어서도 참된 자기를 찾아가는 태도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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