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일본 기독교 문학 (1)]

엔도 슈사쿠와 함께 읽는 성서 이야기

 

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종교철학)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침묵(沈默, 1966)으로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가톨릭 소설가입니다. 올해 2016년은 엔도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기가 되는 해이고, 그의 대표작인 침묵이 발표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이 작품을 영화화한 마틴 스콜세시 감독의 <Silence>가 올해 말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이런 저런 점에서 올해는 엔도 슈사쿠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 보다 더 높아질 해인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엔도가 평생에 걸쳐서 추구하였던 문제는 거리감의 극복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거리감이란 엔도가 태어나 자란 일본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풍토와 서구로부터 소개된 기독교 사이의 거리감입니다.

엔도는 11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는 슈쿠가와교회(夙川??)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과연 신앙이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은 평생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엔도는 성인이 되어서 신앙적 결단을 거쳐서 세례를 받는 자신의 동료들을 매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거리감을 둘러싼 엔도의 고민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기에 더욱 깊어져갑니다. 다음의 구절이 이러한 엔도의 고뇌를 잘 보여주지요. 그리고 그러한 고뇌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엔도의 삶을 이끈 견인력이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받았던 세례는, 예를 들자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기성복을 받은 셈이었다. 이 양복을 입어 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양복이기 때문에, 일본인인 나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 어떤 곳은 짧고 어떤 곳은 길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벗어버렸지만 그렇게 되면 벌거벗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입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평생에 걸쳐서 의지하면서 살아오셨던 것을 어린 아이인 내가 버린다면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나의 양복을 나에게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나의 소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머니께서 주신 양복을 일본인인 나의 몸에 맞는 일본 옷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나와 소설중에서)

 

엔도가 말하는 거리감은 자신과 성서 사이의 벽이기도 하였습니다. 성서를 읽고 있는 엔도 자신과 성서 사이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큰 거리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서구의 기독교라는 양복자신의 몸에 맞는 일본옷(和服)”으로 만들려는 엔도의 시도에 직결됩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엔도의 글은 이 물음에 대해서 평이하면서도 깊은 대답을 우리들에게도 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일본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혐오감이나 거리감 속에는, 이것은 외국인의 종교가 아닌가, 너무나 서양적이지 않은가, 예수의 얼굴은 일본인들의 얼굴과는 달리 중?근동의 아랍사람의 얼굴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말했던 것이 우리들 일본인의 마음 속에 스며들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겠지요. [중략]/ 이처럼 위화감을 느끼는 분들에게 저는 다음처럼 성서를 읽어보도록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수와 자신 사이에 너무 큰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면, 예수의 주위에 있던 사람, 즉 성서에 나오는 환자,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 혹은 예수에 대해서 우리들처럼 거리감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우리와 그렇게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성서에 나오는 그들은 [중략] 아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는 인간이며, 오랫동안 앓는 병으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이며, 예수의 이야기를 들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극히 평범한 민중들이지요. 그러한 사람들은 일본인인 우리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요. 그들을 자신에게 끌어당겨서 자신의 삶의 여러 경험을 거기에 투영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혈루병으로 괴로워하는 여자의 슬픔을 잘 알 수 있겠지요. 아이나 부모를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아이를 잃은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가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면, 성서에 나오는 탕자이야기를 읽고서 그래, 정말 그래하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서에 나오는 예수 이외의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아내는 일은 일본인인 우리에게도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나의 예수(のイエス)로부터)

 

성서에 등장하는 군중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 놓고서, 그 눈으로 예수를 본다. 이것이 엔도가 성서를 읽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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