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서양음악의 자존심, 다성 음악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음악의 역사는 본질에 있어서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의 진화이다. 노래의 초기 형태는 성부 하나로 이루어진 모노포니(monophony)였다. 헤테로포니(heterophony)라는 용어도 있다. 두 개 이상의 성부가 진행하는데 동일한 선율이 조금씩 변형되거나 장식이 붙어서 함께 불리는 경우이다. 주로 아랍을 포함한 동양 쪽 민속음악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서양 음악의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음악사의 공식적 시작을 알리는 그레고리안 찬트는 단선율이었다. 오랫동안 그것은 노래의 전범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찬트와 트로프편에서 등장했던 새로운 부분 첨가하기의 욕구는 성부 늘이기에서도 나타난다. 수 세기 동안 모노포니만 불러오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원래의 선율에 또 하나의 성부를 덧붙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은밀하게 시작되어 종내는 관행처럼 공공연히 행해졌을 것이다. 다만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았을 따름. 마침내 9세기경이 되면 폴리포니의 기록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다성 음악은 원곡 밑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성부가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 간격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동일하다. 매우 경직된 형태의 폴리포니(polyphony)였던 셈이다. 덧붙여진 성부는 반드시 원래 성부의 밑에서 진행해야 했다. 오리지널 선율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경의 내지는 확인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오리지널 성부란 주로 단선율 그레고리안 찬트를 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변형이 일어난다. 이제 덧붙여진 성부는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추구한다. 때때로 원래의 성부를 뚫고 그 위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폴리포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등장한 9세기 말 경 이후, 이삼백 년에 걸치는 점진적인 발전이다. 중간 중간 모종의 제재나 간섭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음악을 다루는 이들 속에 내재한 실험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터. 작업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은 언제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폴리포니는 이제 원래의 성부를 형식적으로 밑에 둔 채 새로 만들어진 성부가 그 위에서 훨씬 바쁘게 움직이는 완전한 자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은 이 같은 다성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12세기 노트르담 교회 전속 음악감독이었던 레오냉(Leonin)은 원래의 선율 위에 덧붙인 성부를 복잡하고 정교한 음형으로 진전시킨 장본인이다. 상대적으로 밑에서 받치는 원래의 선율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대체로 한음이 길게 늘어나는 모양새를 보인다. 이것을 tenor(지속하다)라 부른다. 오늘날 남성 목소리의 한 영역을 뜻하는 이 단어는 도중에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음악사의 출발 이후 수세기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져 온 그레고리안 찬트가 새롭게 창작된 파트의 밑으로 숨어들어 밑그림의 역할로 전락한 것이다. 이 같은 과정에서 어떠한 파란이 있었을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변화를 주도하는 이는 음악적 천재들이다. 레오냉에 이어 그 자리를 물려받은 페로탱(Perotin)은 한술 더 떠 두 성부를 세 개와 네 개로까지 확장한다. 일단 단성에서 다성으로 구도가 바뀌니 확장이나 변형은 걷잡을 수 없는 대세가 된다. 이제 교회에서 불리는 성가는 적어도 세 성부를 가진 매우 복잡한 노래가 되었다.

흥미로운 현상이 뒤를 잇는다. 그렇게 세 성부 혹은 네 성부로 불리던 교회 성가 (주로 미사곡) 의 어떤 부분들은 다분히 음악적인 재미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로 대체 가능해진다. 예배의 종류나 행사의 성격에 따라 더욱 걸맞은 분위기의 대체 파트가 무수히 작곡되는 것이다. 트로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 이 성가 속의 대체 가능했던 부분들이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한다. 이제 작곡가들의 작업에는 날개가 달렸다. 교회의 의전용 음악으로부터 마침내 분리 독립한 하나의 장르가 생성되었다. 이제 어떠한 과격한 실험도 가능해졌다. 바로 모테트(Motet)의 탄생이다. 서양음악의 자존심인 폴리포니에 제대로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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