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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저녁시간 - 신옥진

성서와문화 2016.05.20 20:16 조회 수 : 3120

나의 저녁시간

 

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 미술)

 

하루라는 시간 중에서 저녁시간이 언제인가부터 나에게는 절실하고 예민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일과가 끝나는 저녁 무렵이면 모든 직장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온다. 저녁은 하루 시간의 후반부이지만 해방의 시간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엔 주로 술집으로 달려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씩 친인척이나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더러는 능력 확대를 위해 학원 등을 다니며 시간을 쪼개어 뭔가를 배우기도 했었다. 인생을,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골똘히 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지금의 나에겐 꿈결처럼 아득히 멀어져 간 옛이야기일 뿐이다.

눈이 침침해서 책을 읽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고, 글을 쓰는 것도 집중력과 끈기가 떨어져 웬만한 원고는 청탁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처럼 책상에 잠깐 달라붙어 몇 자 끄적거리고 있는 것은 단문이라도 계속 쓰지 않으면 치매가 들이닥친다는 누군가의 공포스러운 얘기에 쫓겨서다. 결국 이것저것 안 되는 게 많다보니 궁리 끝에 저녁시간엔 간단한 식사를 한 뒤 영화를 한편씩 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침 내가 사는 곳이 해운대이고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으로 건립된 영화의 전당에서 거의 매일 흘러간 명화들을 간추려서 상영해주고 있어서 살고 있는 장소상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말년에 미처 예상치 못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대충 20-40년 전 작품들인데 흑백이 많고 필름상태가 다소 불량한 것들도 있지만, 나의 영화 감상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너무 옛날영화라서 다소 속도감이 떨어져 지루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물론 지난 한 시대 대중들의 인기를 휘어잡은 명화들로만 선정해서 상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옛 영화들은 놀랍게도 인간의 본성, 본능을 너무나 격조 있게, 밀도 있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영화와 비교해 봤을 때 과연 영화가 그동안 발전을 하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가끔씩 머리를 스치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전당은 최첨단의 건축기능과 영상기기들로 갖춰진 대단히 전문적인 상영관이지만 갈 때마다 관객들은 듬성듬성 불과 몇 사람밖에 없다. 가끔씩은 지인 같은 사람이 저만치 앉아 있는 것 같아 접근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자주 본 사람이 아닐 때에는 혹시나 다른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로 아는 체를 삼가고 총총히 집으로 돌아온다.

몸도 따라주지 않고 옛날만큼 활동을 하지 않으니 불러주는 자리도 별로 없다. 불려줘도 몸 형편을 감안하면 참석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저녁시간에 간단한 요기를 끝내고 영화관으로 직행하는 행위가 내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운을 붙잡은 건지 아니면 덩그렇게 크고 띄엄띄엄 관람객이 앉아 있는 어두운 영화관 실내로 늙어서 무너져 버린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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