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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 (4)

우남 이승만, 그는 독재자였을까?

 

강근환 (전 서울신대 총장, 한국교회사)

 

우남의 생애 제3기는 해방 후 조국에 귀국하여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며 대한민국을 세우고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반공투쟁의 시대이다. 우남은 19451016일을 기하여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귀환하였다. 조국은 해방과 함께 뜻하지 않았던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38선 이북은 소련군이 점령하여 김일성을 앞잡이로 공산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갈망하였던 신생 자유 독립국인 대한민국을 세우기에는 그 앞에 벅찬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첫째는 공산주의자들이었고, 둘째는 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장군이었다.

12월에는 신탁통치 문제로 전국이 혼란에 휩쓸리자 김구, 조소앙, 김성수 등과 협력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고, 결국 반공,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남한 단독정부 국가수립을 주장하였다(정읍선언).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을 비롯하여 이를 방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으나 유엔의 승인 하에 1948510일 최초의 국회의원 총선거가 유엔 감시단의 감시 하에 남한에서 실시되었다.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948825일을 기하여 역사적인 대한민국 건국이 선포되었다. 임기 중 이승만 대통령은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국민의 교육수준을 향상시켰고, 유상몰수 유상분배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농노적인 착취를 당했던 농민들로 하여금 어엿한 지주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게 하였다. 또한 동해상에 평화선을 선포하여 국토를 보호하였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의 동의와 지원을 받아 19506?25 남침을 감행하자 이에 맞서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잃었던 폐허의 땅을 되찾고 북진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찰나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였다. 오랜 전투 끝에 이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던 휴전이 1953727일 성립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북진을 계속 주장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와 같은 강력한 반공투쟁 정신을 인정받아 끝내는 한미방위조약(1954.2.)을 미국과 체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를 담보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반공투쟁의 승리인가. 이로써 오늘의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의 기틀을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2년간이란 장기집권 끝에 19603?15?부통령 부정선거로 인한 4?19의거에 의하여 하야하게 되었다. 3?15부정선거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분할 일이다. 그런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왔다고 본다. 하지만 첫째는 이 대통령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하겠으나 그 배후에는 연로한 대통령을 에워 싼 집권당 자유당의 야욕이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를 차단하고 대신 권력행사를 자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 이승만은 결연히 최후의 선언을 하였다. “국민이 원한다면 나는 대통령직을 사직하겠다.”(1960.4.26.)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빈손으로 경무대를 떠났고, 429일 미국 하와이로 부인 프란체스카와 홀연히 떠났다. 5년 동안 호놀룰루에 거처를 옮겨 다니며 가난한 생활 속에서 향수병에 걸려 전전긍긍하다가 끝내는 요양원에서 196571991세의 나이로 쓸쓸히 부인 프란체스카만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신이 되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조국 땅 한국에 이송되어 727일 정동감리교회에서 가족장으로 영결식을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우남 이승만은 독재자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의 평생의 삶 전체를 뒤돌아 볼 때 그는 반()독재자였다. 나는 그의 생애를 위에서 3기로 나누어 보았지만, 1기를 더하여 4기로 본다. 4기는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 자신의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싸운 반독재시대이다. 우남 이승만은 자유당과 이승만 독재정권에 목숨을 내걸고 용감하게 투쟁하였던 학생들과 시민들의 외치는 함성을 들었을 때 독재정권에 휩싸여 갇혀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이에 대하여 자신과 자신이 거느리는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대결하는 반독재적인 고독한 투쟁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종래는 주위의 장막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 참 자아의 소리를 용감하게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나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라고. 거기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고 조건도 없었다. 그는 그 후 곧바로 경무대를 떠났다. 이런 예는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반독재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남 이승만의 삶은 전 생애를 통하여 줄기차게 독재정권에 도전하여 싸운 삶이었다. 1기는 이씨 왕조의 무능한 왕권에 대하여, 2기는 일제 강점기 반일 독립항쟁으로 일제에 대하여, 3기는 광복 후 대한민국 시대에 반공투쟁으로 공산침략에 대하여, 그리고 끝으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시대에 자신의 자유당 독재정권에 대하여 분투하여 승리한 외로운 승리자였다. 일찍이 한성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기독교로 개심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진정한 데모크레틱 휴머니스트’(Democratic Humanist)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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